주간동아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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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우량 기업 뺨치는 ‘흑자 드리블’

블루칩 구단 이익창출 타의 추종 불허 … 선수와 전 세계 뭉칫돈 계속 유입

  • 박문성 축구평론가 mspark13@naver.com

    입력2007-03-05 0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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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우량 기업 뺨치는 ‘흑자 드리블’

    삼성은 5년간 첼시 유니폼에 자사 로고를 새기는 대가로 1000억원을 지불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시장은 블루오션이다. 바야흐로 스포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거대 자본이 몰리면서 가파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는 것. 메이저리그와 슈퍼볼로 상징되는 단일국가 차원의 시장인 미국을 제외하고 글로벌 측면에서 살피면 축구는 블루오션 중에서도 블루칩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유엔 가입국보다 더 많은 가맹국을 거느리고 있으며,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천문학적인 돈을 쓸어담으며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축구산업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축구의 본고장 영국.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라는 ‘브랜드’로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영국의 축구산업은 부의 창출 규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004~2005 시즌 팀당 1200억원 수입

    프리미어리그의 시장규모는 몇몇 수치를 통해 파악해볼 수 있다. 딜로이트사에 따르면 프리미어리그 20개 팀은 2004~2005 시즌 동안 13억 파운드(약 2조4000억원)를 벌어들였다. 팀당 1년 수입이 12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이는 K리그 14팀의 한 해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규모다. 프리미어리그의 수입은 영국만큼 축구에 열광적인 나라인 이탈리아의 세리에A보다 40%나 많다.

    놀라운 수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프리미어리그의 중계권료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지구촌 전역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프리미어리그가 중계 대가로 벌어들일 돈은 27억 파운드. 5조원이라는 거금을 세계시장에서 주워담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선수의 연봉 인상률도 가파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67만6000파운드(13억원)로 2000년 조사 때와 비교해 65%가 올랐다.



    축구클럽이 돈을 벌어들이는 항목은 크게 둘로 나뉜다. 관중 수입, TV 중계권, 상품화 사업 등의 ‘경상이익’과 선수 장사를 통한 ‘특별이익’이다.

    초우량 기업 뺨치는 ‘흑자 드리블’

    프리미어리거의 가장 큰 자산은 충성도 높은 관중이다(위).<br>서울에서도 인기리에 팔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프리미어리그가 공룡으로 성장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경상이익을 살펴봐야 한다. 경상이익의 세 부문 중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관중 수입. 충성도 높은 팬층의 확보는 경기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한 수입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경기를 많이 타는 마케팅과 TV 중계권료에 의존하게 되면 불황 시 수입구조가 불안정해져 재정이 악화된다. 이런 이유로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TV 중계권료 수입보다는 팬 발굴에 더욱 적극적이었으며 그런 노력이 오늘날의 프리미어리그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축구클럽 중 최고의 자산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관중 수입이 전체 수입의 40%를 차지한다. 팬과 관중이 많이 찾는 클럽과 리그엔 스폰서, 방송국들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게 마련이다. 맨유 유니폼에 회사 로고를 새기기 위해선 4년간 6000만 파운드(1000억원)를 내야 한다. 나머지 구단들의 수입구조도 맨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맨유의 사례를 통해 좀더 자세히 프리미어리그 팀들의 경영 기법에 대해 알아보자. 맨유의 운영은 흡사 기업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맨유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요소를 강조한다. 바로 비용절감과 차별화다. 이를 위해 맨유는 △고효율 △고품질 △고도의 혁신 △고도의 고객 반응을 구단의 운영원리로 삼는다.

    ‘고효율’은 마케팅 중에서도 상품화 사업인 머천다이징(Merchandising)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로고 박힌 유니폼과 모자 등을 팔아서 얻는 머천다이징은 구단 전체 수입의 10%에 불과함에도 맨유는 머천다이징을 중요시한다. 머천다이징 사업을 통해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새로운 ‘팬 베이스’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품질’은 경기력을 키워 상품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상품의 질을 높여야 수익이 높아진다. 맨유는 유소년 클럽을 통해 프랜차이즈 스타를 배출하고, 국적을 불문하고 최고 기량을 지닌 선수를 영입해 팬들에게 최상의 경기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맨유가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받고 레알 마드리드에 넘겼던 데이비드 베컴은 맨유 유소년 클럽 출신이다.

    외국자본의 프리미어 잠식 이어져

    ‘고도의 혁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을 가리킨다. 맨유는 다른 팀들이 ‘우리가 장사꾼은 아니지 않느냐’며 머뭇거릴 때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적극적으로 혁신했다. 축구클럽 최초로 자체 방송국 MUTV를 개설하는가 하면 미국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야구팀인 뉴욕양키스와 제휴를 맺었고, 아시아 투어를 통해 미지의 시장에 도전했다. 또한 시장 확대를 위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유망주들을 전략적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박지성은 한국시장을 겨냥한 맞춤형 상품이기도 한 것이다.

    ‘고도의 고객’ 반응은 팬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작업이다. 맨유는 리서치 회사에 적지 않은 돈을 주고 팬들의 성향과 니즈(Needs)를 파악해 구단 운영에 반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상품을 팔든 서비스를 팔든, 고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마케팅의 ABC다. 이렇듯 맨유는 단순한 축구구단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다.

    물론 프리미어리그의 성장 이면에는 그림자 또한 존재한다. 돈 버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한 ‘수상한 돈’이 몰리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프리미어리그가 돈이 되다 보니 외국자본의 프리미어리그 잠식도 이어지고 있다.

    2003년 러시아의 석유부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전격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의 언론재벌 말콤 글레이저가 맨유를 손에 쥐었고, 북미풋볼리그(NFL) 구단주 출신의 랜디 러너가 아스턴 빌라,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몬트리올 캐나디언스의 구단주 조지 질레트가 리버풀을 인수했다. 웨스트햄의 구단주는 아이슬란드의 갑부 에게르트 마그누손이고, 포츠머스의 주인은 프랑스 국적의 러시아 사업가 알렉산드로 가이다막이다.

    자본의 국적이 다양해진다는 이유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이상징후가 나타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헤지펀드(hedge funds)처럼 치고 빠지는 수법으로 돈만 챙기는 자본이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 일부 맨유 팬들이 말콤 글레이저의 구단 인수를 반대하면서 하위 리그에 유나이티드 오프 맨체스터라는 클럽을 따로 만든 것도 이런 우려에서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동전의 양면처럼 자본의 명암을 동시에 안게 된 프리미어리그가 앞으로도 팬 중심 경영이라는 지혜로운 길을 유지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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