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지붕의 중세 건축물들이 모여 있는 두브로브니크 전경.
이후 권삼윤 선생의 유럽문화 탐방기 ‘두브로브니크는 그날도 눈부셨다’가 크로아티아의 고도(古都)를 노래했다는 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만든 92년작 ‘붉은 돼지’가 크로아티아의 앞바다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게다가 90년대 언론은 연일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나라들(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간의 끔찍한 내전 소식을 전했다. 여러 추억을 되새기며 나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불가리아 다음 행선지로 정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남쪽 끝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두브로브니크가 크로아티아 본토와는 좀 떨어져 있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땅 안의 섬처럼 자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여행 가이드북들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두브로브니크로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가이드북의 제안과 달리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정반대 루트를 택했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출발했는데,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에는 이 루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국제선 버스회사 몇 군데에 문의했더니 “세르비아의 니히까지 간 후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고 알려줬다. 나는 하루 세 차례 출발하는 버스 대신,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니히로 향했다.
플라차 반대쪽 끝의 출구에 있는 시계탑.
하지만 곧 몬테네그로의 부드바까지 가면 두브로브니크행 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지도를 살펴보니 부드바는 두브로브니크 밑의 남쪽 해안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야간버스를 타고 다시 한 번 국경을 넘었다. 다음 날 새벽 세르비아로부터 불과 5개월 전에 독립한 몬테네그로의 부드바에 도착했다. 이후 세 번 버스를 갈아타고 발칸반도를 가로질러 꼬박 28시간 만에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했다.
크로아티아의 분위기는 그 사이 거쳐온 불가리아, 세르비아와는 사뭇 달랐다. 다른 나라들은 관료주의적 분위기를 풍겼으나 크로아티아는 여느 자본주의 서유럽 국가들처럼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두브로브니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관광객들을 서로 자신의 민박집에 데려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이를 보니 92년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크로아티아를 지배하는 것은 경쟁의 법칙이 아닌가 싶었다.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와 달마시안 해변이 최고 명소
야간버스표를 예매하던 나를 끝까지 따라와 “자신의 집에 머물라”고 권유한 아주머니의 민박집을 숙소로 결정했다. 경험상 이런 곳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삐끼’가 아니라 진짜 집주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브로브니크는 화려한 휴양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호텔과 레스토랑, 거리를 메운 자동차와 관광버스, 부두에 정박한 요트와 화려한 크루즈 유람선…. 도로는 잘 닦여 있고 붉은 지붕의 집들은 깔끔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수도 자그레브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해서인지 이곳의 물가는 서유럽 못지않게 비싸다. 민박집 앞에서 구시가까지 가는 시내버스 요금은 우리 돈으로 1000원이 넘는다.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3000달러라고 하니, 한국 실정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셈이다.
두브로브니크에는 꼭 둘러봐야 할 두 곳의 명소가 있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와 짙고 푸른 물결의 아드리아해 달마시안 해변이다. 이 때문에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기도 한다.
구시가지 앞까지 가는 버스에서 내려 작은 다리를 건넜다. 그러자 성곽으로 둘러싸인 500년 넘은 중세 마을이 나타났다. 입구인 필레(Pile) 게이트 한쪽에 붙은 동판에는 92년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할 당시 유고 군대에 공격당한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이곳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야 했고, 이때 파괴된 도시는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지금은 대부분 복원됐다.
15세기 마을 전체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오노프리오 분수대.
분수대 앞은 구시가지의 중심가인 스트라둔(Stradun)의 출발점이자 광장이다. 스트라둔은 플라차(Placa)라고도 불리는데, 300m에 이르는 석회암 길이 구시가를 좌우로 가른다. 이 길의 왼쪽과 오른쪽에 구시가지의 주요 건축물과 상가, 집들이 들어서 있다. 광장에서는 천사와 피에로 복장을 한 거리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성곽투어를 하는 것이다. 구시가는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지만, 성곽투어를 하려면 약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관광객들은 구시가지를 빙 둘러싼 25m 높이의 성곽을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다.
성곽에 오르자 안쪽으로는 아기자기한 중세 건축물들이, 밖으로는 넘실대는 아드리아해의 파도와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화 속 배경 같은 붉은 톤의 중세마을과 푸른 아드리아해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부자들의 10일간의 휴식처’라는 두브로브니크의 별칭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닌 듯했다.
플라차 반대편 끝의 출구로 나오자 선착장이 나타났다. 선착장에서 여러 노선의 배표를 팔고 있었는데, 나는 건너편에 보이는 록럭 섬에 페리를 타고 건너갔다. 이 섬은 두브로브니크의 전초기지 같은 곳으로 섬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요새가 있었다.
섬을 걸어서 일주하는 데는 2시간 정도 걸린다. 흥미로운 점은 10월 중순인데도 섬 주변 해안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늦가을까지 섬 주변 해안에 난류가 흐르기 때문이다. 섬 일주를 마치고 구시가의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페리에서 잠시 지친 몸을 쉬었다. 배 안에서 바라본 고풍스러운 구시가의 모습은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때는 베네치아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두브로브니크. 이제는 동유럽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됐다. 한겨울만 아니라면 그곳에 꼭 수영복을 가져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