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소더비의 경매 장면. 미술품 가격은 90년대 들어 거품이 빠진 이후 상승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술시장의 거침없는 행진이 지속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60년대 미국에서 주거 대상이던 부동산에 투자 개념이 자리 잡은 것과 비교하며, 감상의 대상이던 미술품에 투자의 개념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프라이빗뱅커들 사이에서 미술품은 포트폴리오 분산을 위한 또 다른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ABN 암로 등 금융회사들이 미술품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 부호들 미술시장 성장 이끌어
미술시장의 매력은 공급은 제한돼 있는 데 비해,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에서 나온다. 모든 미술 작품은 원칙적으로 하나다. 물론 판화나 사진의 경우 같은 작품들이 있지만 이것들 역시 극소수로 제한된다. 반면 경제가 발전해 새로운 수요층이 생기면서 작품에 대한 수요는 많아지고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현대미술품을 중심으로 한 미술시장이 급성장하는 이유로 여러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흥 부호들의 지속적인 출현이다.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 등을 기반으로 하는 신흥 부호의 등장은 컬렉터층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고, 이는 가격 상승을 낳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미술품의 높은 수익률도 시장의 매력을 키우는 요소가 되고 있다. 미술시장의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안전투자 상품인 미 국채와 금 등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고, 주식에 대해서는 비교 시점에 따라 수익률 우위를 보이고 있다. 뉴욕대학 스턴 스쿨의 마이클 모제, 지앙핑 메이 교수의 미술품 수익률 지수인 메이-모제 인덱스에 따르면 과거 50년 동안(1955~2004) 미술시장의 연 수익률은 10.6%를 기록, 같은 기간 주식(S&P 500) 투자의 연 수익률 10.95%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미국 10년짜리 국채 수익률은 6.64%였고, 금 투자에 따른 수익률은 5.17%였다. 영국의 미술품 컨설팅 회사인 아트마켓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과거 5년 동안 현대미술과 근대미술 작품의 수익률은 12.50%와 6.17%를 보였다.
① 국내에서 근·현대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7억1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나무와 사람들’. ② 11월9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50억원에 낙찰된 데이비드 스미스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큐비28’. ③ 11월8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235억원에 낙찰된 마크 로드코의 ‘마티스에 대한 경의’.
가치 변동 가능성 크고 환금성 부족 ‘단점’
미술시장의 매력이 많은 만큼 미술시장에 고유한 리스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미술시장의 위험은 상품 가치에 대한 판단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미술품 가치에 대한 판단은 여러 객관적 기준들을 적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직접적 경험에 의존하는 취미 판단에 속한다.
물론 미술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비평가와 딜러, 큐레이터 등 전문가들의 여러 검증 과정을 거친다는 의미에서 미술품 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은 아니다. 같은 투자 대상을 놓고 극단적으로 다른 가치 평가를 내릴 가능성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미술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이 취미 판단인 이상 그것은 취미 변화에 따라 가치가 바뀐다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오늘 비싸게 산 작품을 나중엔 싼값에 팔아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미술 작품의 환금성 부족도 미술시장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주식은 마음만 먹으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지만, 미술품은 다르다. 보유 작품을 제값에 바로 내다 팔 수 있는 가능성은 주식에 비해 매우 적다. 또 시간에 쫓기면서 작품을 내다 팔아야 할 땐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주식시장엔 공시제도가 있으나 미술시장 정보는 극히 일부에게만 제한돼 있다는 점도 미술 투자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갤러리 딜러 등 전문가들은 특정 작가들에 대한 고급 정보를 갖고 있지만, 일반 컬렉터들은 이들 정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술시장은 정보 불균형에 의해 왜곡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미술시장은 높은 수익률 못지않게 많은 위험이 따르는 상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투자 대상으로서의 미술 작품은 ‘고위험·고수익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시장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가 미술품의 가격대가 너무 비싸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프랑스 미술시장 전문 업체인 아트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전체 미술시장에서 거래된 작품 가운데 999유로(약 120만원) 이하 작품이 43.8%, 1000~9999(약 1210만원)유로 사이의 작품이 42.2%로 1만 유로 미만의 작품들이 전체 거래 작품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10만 유로(약 1억2100만원) 이상의 작품은 전체의 1.6%에 그치고 있다.
나아가 미술 작품 가격대와 수익률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을 보면 중저가 작품이 고가의 작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이-모제 인덱스의 97년부터 2002년까지 가격대별 수익률을 보면 고가와 중·저가 작품들은 각각 4.22%, 7.10%, 5.45%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고가 작품은 표본 내 상위 33%의 작품들을 말하며, 저가는 하위 33%, 중가는 나머지 34%의 작품들을 의미한다.
미술시장을 이해하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국내 갤러리들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고 경매회사도 타깃을 다양하게 설정해놓고 있어 컬렉터들은 자신들의 취미와 가격대에 맞는 미술시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