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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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단 외우기가 수학 망친다

“19단 열풍 시대 흐름 역행하는 일” … 통찰력과 창의력 키워줘야 수학 강국 가능

  •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pobye2002@yahoo.co.kr

    입력2005-03-24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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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단 외우기가 수학 망친다
    19단으로 수학 강국을 만든다고? 요즘 수학자들은 불편하다. 수학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나, 이것이 ‘19단 외우기’라는 이상한 열풍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이자, 와이즈(WISE, Women Into Science & Engineering) 거점센터 소장인 이혜숙 교수는 “도대체 19단을 외워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빠른 계산이 필요하면 계산기를 두드리면 된다. 어린 학생들에게 단순한 암기교육을 강요해 시간을 낭비케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시간에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진짜 수학교육을 하라”고 19단 교육 열풍을 꼬집었다.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이 교수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19단 외우기 열풍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2004년 젊은 과학자상을 받은 포항공대 변재형 교수는 “19단 외우기에 매달리는 것은 수학을 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학을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 수학은 ‘이것이다’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분야마다 성격이 다르다. 수학의 본질적 성격과 동떨어진 연산기술을 암기하는 19단 공부로 어떻게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한다.

    “도대체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결국 19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암산을 빨리 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21세기 컴퓨터 시대에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19단을 암기하면 소인수분해와 같은 연산능력이 향상된다는 옹호론자들의 설명에 대해, 변 교수는 “도대체 소인수분해를 좀 빨리 한다고, 수학 공부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그건 컴퓨터가 없던 19세기에나 통하는 이야기다”며 19단 열풍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수학자들은 ‘인도=수학강국=19단’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다. 변 교수는 “인도가 19단을 배울 만큼 수학에 열의가 있어 정보기술(IT)이 발전했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19단을 배우면 수학을 잘하고, IT가 발전된다는 식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억지논리다”고 비판했다. 이혜숙 교수 역시 “인도에서 걸출한 수학자가 배출됐고, 전통적으로 수리에 강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19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인도가 IT 강국이 된 비결이 19단에 있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한다. 결국 수학자들이 보는 19단은 구구단의 확장된 개념에 지나지 않으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단순 기술일 뿐이다.

    이 같은 이상현상에 대해 수학자들은 수학을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고 진단한다. 산수와 수학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잘못된 시선이 문제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수는 단어 뜻 그대로 덧셈, 곱셈, 나눗셈 같은 계산법으로 수학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수학은 수학기초론, 수리논리학, 집합론, 대수학, 군론, 정수론, 기하학, 미분기하학, 대수기하학, 토폴로지(위상기하학), 해석학, 복수함수론, 함수해석학, 함수방정식론, 특수함수, 수치해석, 확률론, 그래프이론, 조합이론, 통계수학, 계획수학 등 수많은 분야를 포함한 넓은 학문이다. 게다가 수학은 전혀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산수 능력을 배양해 수학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발상은 잘 만들어진 기와 한 장으로 99칸짜리 집을 짓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수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수학(數學)이란 학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수학자들은 ‘패턴을 찾아내는 학문’ 또는 ‘개념을 만드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에 수학의 관심 영역은 더욱 복잡하다. 단순한 수식 계산으로는 접근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직경이 20만분의 1m에 그치는 세포핵에는 길이 1m에 달하는 DNA 사슬이 들어가 있다.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 DNA 사슬은 단순하게 세포핵 안에 오밀조밀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분열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순식간에 두 가닥으로 갈라진다.

    “단순 문제 푸는 행위 아닌 개념을 만드는 학문”

    수학은 바로 1m 길이의 DNA가 세포핵 안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기에 최소의 체적을 차지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꼬여 있기에(매듭이론) 유사시에 효율적으로 갈라지는지 계산해내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수학은 결코 단순한 연산능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오히려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요구한다.

    미국의 월가에 수많은 금융수학자들이 포진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연산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 패턴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그들이 뛰어난 수학자를 영입해 끊임없이 방법론을 개발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의 유일한 한국인 연구원이자 풀커슨상을 받은 김정한 박사는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가장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서울대의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수학은 단순히 문제를 푸는 행위가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학문이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은 문제에 공식을 대입해 푸는 것이 수학이라고만 알고 있다. 답이 없는 문제나, 해결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 학생들은 모두 당황하기 일쑤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최고학부의 학생이라면 이런 문제 해결에 능숙하다”고 설명했다.

    즉 주입식, 암기식 교육법 때문에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학에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김정한 박사는 지적한다. 결국 한국 수학의 문제는 19단의 문제가 아니라, 창의성 계발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19단 외우기가 자칫 역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루하게 반복하는 암기식 학습법이 아이들의 학습 성취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선입관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수학자들의 우려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수학이 정녕 필요한 학문이라면, 19단 대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 전념하라고 수학자들은 충고하고 있다. 19단 열풍은 능력 없는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의 학습진도를 체크하기 위해 만든 훈련표일 뿐이라는 게 수학자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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