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팔자도 양극화? 애견숍에서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애완견
“오늘은 또 뭘 찍으려고 그래요?”
카메라를 들고 건강원 골목에 들어서자 상인들은 대번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다.
중복인 7월30일 동물자유연대 회원 등 20여명이 이곳에서 ‘보신탕은 악습’이라며 시위를 했고, 신문과 방송이 이를 보도한 여파였다.
그러나 모란시장을 ‘국가 망신’이란 한마디 말로 비난하던 예전과 달리 “먹는 사람은 먹고, 키울 사람은 키우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져 상인들이 주눅 든 어깨를 좀 편 듯했다. 또 시위에도 불구하고 중복 대목 재미를 본 데다 예년과 달리 초복보다 중복 판매량이 많아 상인들은 말복에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다.
건강원 골목에서 16년간 식육용 개를 팔아온 해남상회 윤철균 사장은 “여름만 되면 비난하는 소리에 이젠 익숙하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사진 촬영을 허락해주었다. 그의 가게에도 다른 곳처럼 식육용 누렁이 20여 마리와 흑염소들이 철창 안에 있었다.
모란시장 ‘건강원’ 개들.
“개들이 죽고 사는 걸 미리 알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여러 마리가 갇혀 있으니 위축돼 있긴 하죠. 요즘은 도살도 전기 충격으로 하니 소, 돼지 도축하는 것에 비해 야만적이니 어떠니 할 이유가 없어요.”
그는 보신탕 집이 폐쇄 위기에 몰렸던 88올림픽이나 2002월드컵 때도 이곳 모란시장에는 큰 타격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한 ‘마니아’들이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강제한다고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집단 사육을 하지 않아 고기 값이 비싸기 때문에 사람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 시장에 찬바람이 분다고 했다.
복날엔 동물보호단체에서 으레 이곳으로 시위를 나오고,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면 마무리처럼 관에서 위생검사를 나온다. 윤씨는 “털면 먼지 안 나는 곳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상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문제”라며 한숨을 쉬었다. 복날을 두려워하는 쪽은 누렁이들이 아니라 상인들이었다.
윤씨 가게에는 애완용 개도 두 마리 ‘섞여’ 있다. 그중 한 마리는 요크셔테리어로 윤씨가 건강원 골목 끝에 서는 모란시장 애견부에서 무려 55만원을 주고 샀다고 했다. 이 개는 얼마 전 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하고 새끼를 낳았는데, 그 후유증인지 하반신이 마비돼 윤씨가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다. 그는 “내가 버리면 누가 예쁘다고 키우겠냐”고 말했다.
애견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고급화 현상은 극단적으로 심해지고 있다.
모란시장에서 서울로 15분 정도 달려오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개들을 바로 만날 수 있다. 서울 압구정동 ‘쓰리독 베이커리’에 살고 있는 풍산개 ‘장금이’와 골든리트리버 ‘망고’ 같은 운 좋은 개들이다.
‘쓰리독 베이커리’ 매니저 이주리씨가 키우는 이 개들은 에어컨디셔너로 쾌적한 가게에서 주인이 냉장 진열대에 들어 있는 강아지 케이크를 꺼내주길 바라며 살고 있다. 전 세계 체인망을 가진 ‘쓰리독 베이커리’는 고급 애견시장을 대표하는 가게로 유지방이나 설탕, 화학색소나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은 강아지용 케이크를 직접 구워 판매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작은 땅콩맛 비스킷에 저지방 버터밀크와 요구르트로 프로스팅한 제품’은 손가락 두 개쯤 더한 크기에 3000원쯤 한다.
애견을 위한 제과점
애견인구 1000만명을 돌파한 국내 애견산업이 이제 정점을 지났다는 게 통설이지만 고급화로 애견산업 규모는 올해 1조3000억원에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애견패션업체 ‘퍼피아’의 서정호 팀장은 “8000원 정도 하던 강아지 옷이 지금은 1만9000원대로 전반적으로 고급화됐다. 그래서 곧 럭셔리 라인을 런칭한다. ‘이마트’에서 옷을 사던 젊은 애견인들이 돈을 벌면 이 옷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사)한국애견협회는 애견숍을 3000개 정도로, 대한수의사협회는 동물병원 수가 2500개를 넘은 것으로 추산한다. (사)한국애견협회 측은 “분양은 줄어들었지만 강남 중심의 애견산업은 여전히 활황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애견산업 관계자들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TV에서 동물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애견국’ 이미지를 강조한 나머지 투자가 과도하게 몰렸다. 그때 준비한 사람들이 지금 가게를 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애견계도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확실히 사람 팔자 위에 있는 개들이 많다. ‘오마이독’ 등 개를 위한 명품 향수나 사람 것보다 훨씬 비싼 애견용 생리대가 팔리고 버버리, 구찌 숍에선 개를 위한 패션용품이 먼저 팔려나간다. 운동 부족인 개를 위한 도그(DOG) 요가, 도그 댄스 등이 애견인들을 유혹하고 있기도 하다.
패션 잡지 ‘보그엘르’의 명품패션 화보
비행기에는 애완견을 위한 전용 탑승구가 설치됐다. 8월 말 서울에 문을 여는 초특급 호텔에서도 개를 위한 특별실을 설치할 예정이다. 이미 프랑스에서 문을 연 애완호텔은 1박 65만원에 개를 위한 별도의 음식과 미용 세트 등을 제공하는데, 이와 비슷한 컨셉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애견문화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꾸민 마르치스나 미니핀을 안고 다니는 것이 에르메스 백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부와 여유, 덧붙여 ‘감성’을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래서 지난해 중순부터 명품 패션잡지에 개 모델이 등장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이 화보들은 하이힐에 손가방 대신 자그마한 강아지를 들어주는 것도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애견패션 디자이너는 “애견 전통이 긴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애견 기능상품에서 이제야 애견 패션용품으로 관심이 옮아가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애견 패션이 먼저 휩쓸고 난 뒤 애견문화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애견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애견에 비딱한 시선을 보내던 이들의 눈길은 많이 부드러워졌고, 보신탕을 ‘야만’으로 공격하던 애견인들은 시위를 하거나 영업을 방해하는 행위에 매우 신중해졌다. 애견단체로는 가장 큰 한국애견협회는 “개고기를 합법화하는 법률을 만든다면 시위를 하겠지만, 먹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태도다. 애견문화에 시급한 문제는 애견으로 키우다 버려진 유기견들이다(최근 전남대 동물보호소는 올해 7월 말까지의 유기견 수가 지난 한 해 전체에 육박할 만큼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와 가깝게 살아온 데다 국가적 캠페인 차원에서 애견들까지 대량으로 수입돼 이젠 도시 어디에서나 개를 볼 수 있다. 모란시장에서 근당 6000원에 팔리는 식육용 개가 있는가 하면, 가판에서 10만원에 팔리기를 기다리는 강아지들도 있다. 청담동 애견숍에서 수백만원을 넘겨 거래되는 족보 있는 수입견들이 있고, 한때 호화롭게 살다 버려진 떠돌이 개들도 있다. 그들의 삶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 보이는 것은 사람의 눈에만 그럴 터이다. 그런데도 여름만 되면 사람들이 자꾸 개들의 운명에 사람의 그것을 비교하는 것은 찌는 듯한 날씨 탓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