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탑골공원에서 소일하고 있는 노인들.
이화여대 철학과 김혜숙 교수는 “법안에는 지방자치단체별로 ‘효자효부상 선정위원회’를 설치해 수상자에게 1000만원에 이르는 상금을 지급하고, 이들이 공원·문화공연 등을 이용할 때 할인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국가가 ‘효’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강화하면서 노인 복지의 부담을 가족에게 떠넘기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1998년 현재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가운데 노인복지서비스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0.08%. 스웨덴 2.49%, 덴마크 1.82%, 영국 0.50%, 일본 0.27% 등에 크게 못 미치는 상태다. 이 때문에 2002년 현재 65살 이상 고령자 가운데 49%는 자녀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가정에 노인문제를 떠넘기기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복지의무에 대한 방기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나라당이 정말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를 고민한다면, ‘효’가 아니라 ‘국가 복지’의 차원에서 이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 가운데 38%가 언어·신체·정서·경제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이며 중층적인 학대 경험이 있는 이도 11.6%에 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노인 가운데 8.2%가 자녀 및 가족에게서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응답자 가운데 77.9%가 “학대를 당하더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참겠다”고 답했다는 점. 각종 조사에서 자녀를 둔 60살 이상 노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이구경숙 정책부장은 “경제적 인센티브와 법적 강제를 통해 노인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가족 내에서 노인 학대가 얼마나 폭넓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지금 정치권이 할 일은 혈연에 기초한 ‘효’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다양한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