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그리스와 포르투갈의 우승 다툼’. 얼마 전에 끝난 유로2004의 결승전은 축구 전력에선 강국과 다크호스의 싸움이었지만, 지리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나 유럽의 대표적인 ‘변방 국가’인 두 나라가 유럽의 ‘패권’을 놓고 맞붙었다는 점에서 축구 경기 외적인 흥미를 끌었다.
한때는 유럽을 호령했던 강자들이었으나 이제는 변두리의 후진국으로 밀려난 두 나라의 운명적 조우. 그 장면이 보여준 역사의 성쇠(盛衰)와 유전(流轉)이야말로 이번 유로2004가 선사해준 숨은 ‘빅 카드’였는지 모른다.
그리스야 말할 것도 없이 고대 지중해 제국의 영광을 떠올릴 수 있지만 포르투갈도 16세기엔 유럽의 초강국이었다. ‘해양왕 엔리케 왕자’ 등이 신항로 개척에 나서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수도 리스본에는 유럽의 부가 집중됐다. 그러나 그리스는 지중해의 패권이 로마로 넘어간 이후, 그리고 포르투갈은 17세기 이후 역사책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신구 세력 간의 각축이 치열한 유럽의 근대사에서도 두 나라는 소외돼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제대로 된 ‘근대’를 맞이하지 못했다. 이른바 이중혁명(에릭 홉스봄이 그의 저서 ‘혁명의 시대’에서 이것을 분석하여 체계화함)이라고 불리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번번이 외침을 받아야 했다.
이들이 역사책에 이름이 오른 것은 주체가 아닌 역사의 에피소드 속의 한 대상으로서였을 뿐이다.
예를 들어 16세기 아시아 무역을 거의 독점하면서 유럽의 중심도시로 군림했던 리스본의 이름을 17세기 이후 모처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755년 이 도시를 강타한 대지진 때였다.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대참사는 그러나 대지진 자체보다 볼테르와 루소의 설전을 통해 더욱 알려진 면이 크다.
이 재난에 대해 당시 가톨릭에서는 “그들의 죄값”이라고 했고, 루소는 “문명화의 대가”라고 말했다. 종교적 미신에 대한 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볼테르는 종교계와 루소의 반문명주의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캉디드’라는 풍자 우화소설을 썼다.
20세기 들어서도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독재정권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나라의 현실은 몇몇 영화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포르투갈의 민주화는 1974년에야 이뤄지는데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됐던 ‘4월의 젊은 장교들’이라는 영화가 바로 이 민주화를 연 74년 4월의 군사쿠데타를 그리고 있다. 위관들이 주축이 된 이들 청년 장교단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학살에 가담하느니 독재정권을 뒤엎겠다”며 혁명을 일으켰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있다.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가 새로운 군사독재로 이어지지 않고 민주화로 결실 맺은 것이 우리나라나 대부분의 나라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스의 현대 정치사는 영화에서 더욱 선명한 증언으로 남아 있다. 그건 특히 이 나라 출신의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영화 ‘제트(사진)’는 조국 그리스의 정치테러를 다룬 작품이다. 오랜 정치적 망명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온 Z가 평화시위 도중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정부는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은폐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Z의 죽음이 정부 관료가 꾸민 음모에 의한 살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은 재판으로 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1967년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관련자들은 독재체제 아래서 복권된다.
남미 군사정권하의 의문사를 다룬 ‘실종’이라든가 ‘뮤직박스’ ‘계엄령’ 등의 정치성 짙은 영화로 알려진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들은 그리스의 정치 현실에서 출발했다.
타르코프스키 이후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리스 출신 테오도르 앙겔로풀로스의 초기 작품이 최근 ‘안개 속의 풍경’ 같은 탈정치화된 영화와 달리 다소 좌파적 시선의 사회 고발적 내용들이었다는 것도 이 같은 그리스의 굴절된 현대사의 반영이었다.
한때는 유럽을 호령했던 강자들이었으나 이제는 변두리의 후진국으로 밀려난 두 나라의 운명적 조우. 그 장면이 보여준 역사의 성쇠(盛衰)와 유전(流轉)이야말로 이번 유로2004가 선사해준 숨은 ‘빅 카드’였는지 모른다.
그리스야 말할 것도 없이 고대 지중해 제국의 영광을 떠올릴 수 있지만 포르투갈도 16세기엔 유럽의 초강국이었다. ‘해양왕 엔리케 왕자’ 등이 신항로 개척에 나서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고, 수도 리스본에는 유럽의 부가 집중됐다. 그러나 그리스는 지중해의 패권이 로마로 넘어간 이후, 그리고 포르투갈은 17세기 이후 역사책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신구 세력 간의 각축이 치열한 유럽의 근대사에서도 두 나라는 소외돼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제대로 된 ‘근대’를 맞이하지 못했다. 이른바 이중혁명(에릭 홉스봄이 그의 저서 ‘혁명의 시대’에서 이것을 분석하여 체계화함)이라고 불리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주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번번이 외침을 받아야 했다.
이들이 역사책에 이름이 오른 것은 주체가 아닌 역사의 에피소드 속의 한 대상으로서였을 뿐이다.
예를 들어 16세기 아시아 무역을 거의 독점하면서 유럽의 중심도시로 군림했던 리스본의 이름을 17세기 이후 모처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755년 이 도시를 강타한 대지진 때였다.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대참사는 그러나 대지진 자체보다 볼테르와 루소의 설전을 통해 더욱 알려진 면이 크다.
이 재난에 대해 당시 가톨릭에서는 “그들의 죄값”이라고 했고, 루소는 “문명화의 대가”라고 말했다. 종교적 미신에 대한 투쟁에 일생을 바쳤던 볼테르는 종교계와 루소의 반문명주의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캉디드’라는 풍자 우화소설을 썼다.
20세기 들어서도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독재정권의 통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나라의 현실은 몇몇 영화들에서도 읽을 수 있다.
포르투갈의 민주화는 1974년에야 이뤄지는데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됐던 ‘4월의 젊은 장교들’이라는 영화가 바로 이 민주화를 연 74년 4월의 군사쿠데타를 그리고 있다. 위관들이 주축이 된 이들 청년 장교단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학살에 가담하느니 독재정권을 뒤엎겠다”며 혁명을 일으켰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있다.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가 새로운 군사독재로 이어지지 않고 민주화로 결실 맺은 것이 우리나라나 대부분의 나라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스의 현대 정치사는 영화에서 더욱 선명한 증언으로 남아 있다. 그건 특히 이 나라 출신의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영화 ‘제트(사진)’는 조국 그리스의 정치테러를 다룬 작품이다. 오랜 정치적 망명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온 Z가 평화시위 도중 정체불명의 집단으로부터 테러를 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정부는 사건을 적당한 선에서 은폐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Z의 죽음이 정부 관료가 꾸민 음모에 의한 살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관련자들은 재판으로 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1967년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관련자들은 독재체제 아래서 복권된다.
남미 군사정권하의 의문사를 다룬 ‘실종’이라든가 ‘뮤직박스’ ‘계엄령’ 등의 정치성 짙은 영화로 알려진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들은 그리스의 정치 현실에서 출발했다.
타르코프스키 이후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리스 출신 테오도르 앙겔로풀로스의 초기 작품이 최근 ‘안개 속의 풍경’ 같은 탈정치화된 영화와 달리 다소 좌파적 시선의 사회 고발적 내용들이었다는 것도 이 같은 그리스의 굴절된 현대사의 반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