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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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또 누구 노릴까

야신·란티시 등 하마스 지도자 잇단 암살 … 강경·온건파 구분 없이 ‘걸리면 친다’?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4-04-29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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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또 누구 노릴까

    마흐무드 알 자하르, 이스마일 하니야 (왼쪽부터).

    3월22일 아흐메드 야신이 암살당한 후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옹립됐던 압델 아지즈 란티시는 야신의 조문기간 중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만일 ‘아파치’와 ‘심장박동 정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아파치를 택할 것이다.” 아파치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보유하고 있는 공격용 헬기의 이름. 란티시의 말은 침상에 누운 채 심장이 멎어 자연사하는 것보다 끝까지 투쟁하다 아파치 헬기의 미사일에 맞아 죽는 쪽을 택하겠다는 대(對)이스라엘 투쟁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4월17일 밤 9시경 이스라엘 공군(IAF)의 아파치 헬기가 가자 시내를 달리는 한 차에 미사일 공격을 가하면서 란티시의 말은 현실로 나타났다. 하마스의 새 지도자로 옹립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란티시는 야신과 같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그가 암살당한 현장은 야신의 무덤에서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하마스, 새 지도자 이름 비공개 방침

    란티시의 장례식 광경 또한 야신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만명의 인파가 모여 슬픔과 분노를 나타내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주변 아랍국들은 앞다퉈 비난성명을 발표했고 반(反)이스라엘 항의시위가 이어졌다. 미국을 제외한 서방세계도 ‘사려 깊지 못한 처사’라며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이하 팔 자치정부)는 국민 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아라파트 의장은 라말라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에 조문소를 설치했다. 팔레스타인의 지도급 인사가 암살당하면 으레 벌어지는 풍경이 이번에도 재연됐다.



    1947년에 태어난 란티시는 가자지구 내 난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많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그러하듯 열악한 난민촌의 생활환경은 일찍부터 반(反)이스라엘 감정이 싹트는 계기가 됐다. 이집트에서 의학을 공부한 란티시는 70년대 가자지구 내 종합병원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일하다 야신이 이끌던 하마스의 전신인 무슬림형제단에 참여하면서 대이스라엘 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83년 이스라엘에 세금납부 거부운동을 펼치다 처음으로 체포된 이후 수차례에 걸친 구속과 석방을 거듭했고, 92년에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소속 조직원 400여명과 함께 레바논으로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건은 란티시를 팔레스타인의 영웅으로 만들어주었다. 야신 암살사건 직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란티시는 아라파트에 이어 유력 지도자 2위를 차지했다.

    가자지구 내 하마스 지휘부 중 가장 강경파로 알려진 란티시는 이미 이스라엘의 표적암살 목록 1위에 올라 있었다. 로드맵 협상과정에서 후드나(하마스-팔 자치정부 간 정전협정)를 끝까지 거부하던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은 그를 죽이기 위해 3대의 아파치 헬기를 동원해 그가 탄 차에 7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그는 가벼운 부상만을 입은 채 가까스로 피신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때 란티시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셈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사건으로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기 전 하마스를 완전히 무력화하기 위한 표적암살을 계속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하마스는 란티시의 사망으로 그를 대체할 지도자의 선출 외에 지휘부의 보호라는 과제를 하나 더 안게 됐다. 시리아에 거주하는 하마스 정치국장 할레드 마샬은 란티시 암살 직후 란티시의 후임자를 선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선출과정과 선출된 지도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도록 요구했다. 새 지휘부가 이스라엘의 암살표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하마스에는 야신 생전에 이미 하마스 4인방으로 불리던 인물들이 있다. 란티시를 비롯해 이스마일 하니야, 마흐무드 알 자하르, 이스마일 아부 샤나브가 그들이다. 하마스의 창립멤버로 1세대에 속하는 이들은 사실상 실무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4인방 중 란티시와 샤나브는 이미 이스라엘의 표적암살로 희생됐다. 따라서 하마스의 최고지도자는 남은 둘 중 하나가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 이중 알 자하르는 작년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암살 시도로 아들을 잃고 자신도 부상한 뒤 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자신은 최고지도자 직을 맡을 뜻이 없음을 최근 정치국장 마샬에게 밝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야신의 비서실장 출신이자 하마스 내 최고 행정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이스마일 하니야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다. 이밖에 아흐메드 바하르나, 사이드 알 시얌 등도 거론되는 후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목적으로 선출될 지도자와 지휘부를 비밀에 부칠 방침이지만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표적암살 목록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보안사항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추측이 가능하다. 야신 암살사건 이후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아레츠’의 국방부 출입기자는 그동안의 정보를 토대로 표적암살(추정) 목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목록을 보면 앞서 언급한 하마스의 지도자 후보군 모두가 암살 대상에 포함돼 있다.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취임 여부에 상관없이 이들은 언제라도 이스라엘의 손에 암살당할 수 있는 운명에 처해 있는 셈이다. 더욱이 샤론 내각이 들어선 이후 표적암살 정책을 살펴보면 일관된 원칙을 발견할 수 없다. ‘걸리면 친다’는 식이다. 하마스 4인 방 중 가장 먼저 제거된 아부 샤나브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하마스 지휘부 내에서 가장 온건파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투쟁보다 협상을 선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샤론의 표적암살 정책은 강경파와 온건파를 구별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암살대상을 정할 때 테러에 직접 관여한 자를 우선 순위에 올리거나, 암살 실행 뒤 일반 시민들에게 미칠 파장을 고려하는 등의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러나 샤론의 정책에는 이러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하마스에 속해 있는 한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스라엘 보복공격 우려 경계 강화

    야신 사후 하마스의 내부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는 게 없는 실정이다. 하마스는 야신의 죽음에 대해 대대적인 복수를 다짐했지만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또 다른 지도자를 잃고 말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4월 초, 약 2주간 이어진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 유월절 휴가기간에 하마스의 보복공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경계태세를 강화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었다.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하마스의 테러 수행능력이 무력화된 게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레 나오는 배경이다. 야신 사후 이틀 뒤 란티시가 후계자로 지목되었을 때 정치국장 마샬은 “란티시는 가자 내의 지도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지도력의 중심은 본인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이와 함께 하마스는 웨스트 뱅크를 관할하는 지도자도 함께 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신은 생전에 가자, 웨스트 뱅크, 해외의 하마스 지도력을 총괄하는 지도자였다. 따라서 야신 사후 하마스 지휘부가 분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가자지구 내에서는 온건파의 입지가 강화되리라는 전망이다.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는 마흐무드 알 자하르, 이스마일 하니야 모두 온건파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란티시와 달리 팔 자치정부와의 협상에도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마스가 지금까지의 노선을 버리고 어떤 식으로든 팔 자치정부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선변경이 하마스의 생존을 보장해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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