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으로 국민들이 때아닌 헌법 지식 테스트를 받고 있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헌법재판소라는 기관이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권한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규정한 헌법 제65조 조항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국민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이후 들여다볼 일이 없었던 헌법 조문이 이렇게 갑자기 우리의 일상 속에 들어온 것이다. 비록 좋은 계기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헌법의 문장 한두 줄이 그만큼 위력을 갖는다는 것을 확실히 깨칠 기회가 됐다면 이번 사태가 전혀 무익하지만은 않은 셈이다.
한국에 비해 서구 사회에선 헌법을 인용하는 일이 흔한 편이다. 톰 행크스가 에이즈 환자로 열연해 오스카상을 받았던 영화 ‘필라델피아’. 동성애자인 앤드루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다. 그러나 회사에서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한 그는 이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다. 질병으로 인한 해고는 차별이며 위법임을 입증하는 그가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내세우는 게 미국의 헌법 제1조다. 그는 “미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돼 있지, 모든 ‘이성애자’는 법 앞에 평등하다고 씌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헌법 정신이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대목이다.
이 같은 헌법 정신의 대중화는 어제 오늘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 헌법의 기원에 그 뿌리가 있다. 1770년대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패트리어트’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독립전쟁 기간 중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주인공 벤자민을 비롯한 미국 독립군은 영국군과 싸우면서 한편으론 자신들이 새로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담은 조문을 설계한다. 수많은 토론과 논의 끝에 완성된 조문이 바로 오늘날 미국 헌법의 모태가 된 것이다. 국민들의 투쟁과 피의 결과가 바로 헌법인 셈이다. 이후 헌법은 미국 사회의 변화에 맞춰 계속 수정, 추가돼왔다. 하지만 건국 과정에서 피와 희생으로 얻어낸 성취물이라는 점이 갖는 절대가치는 변함이 없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고 ‘긴급명령’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영화의 원제는 ‘명백하고 긴급한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었다. 군사용어쯤으로 들리지만 이 제목은 다름아닌 미국의 사법사에 큰 획을 그은 홈즈 대법관의 판례에 나오는 말이다. ‘명백하고 긴급한 위험’이 우려되는 경우에만 공공질서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 말은 이제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이면서 끊임없이 권리의식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주문(呪文)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몇 년 전부터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이에즈’의 가사를 순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가사 내용이 너무 섬뜩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압제자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더러운 적의 피로써 이 강토를 적시자.’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당시 ‘해방 프랑스’가 주변 외국군에 침략당할 때 나라와 자유를 지키러 나선 병사들이 불렀던 이 노래에는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러니 개사하자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번 탄핵사태가 확인시켜준 우리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다르게 권력자와 몇몇 학자들 손에서 주물러져 온 헌법의 역사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영화가 나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조문을 빌려 매매춘 여성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제목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나 문제의식의 깊이와는 별개로 ‘헌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싶다. 좀더 깊이 이 영화 제목에 담긴 뜻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문 규정 자체가 국민 주권을 현실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헌법은 그런 의미에서 당위이자 이념이지, 현실이 아닌 것이다. 이 당위를 현실로 바꾸는 출발점은 헌법 조문 한 글자, 한 글자가 갖고 있는 엄청난 위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다.
한국에 비해 서구 사회에선 헌법을 인용하는 일이 흔한 편이다. 톰 행크스가 에이즈 환자로 열연해 오스카상을 받았던 영화 ‘필라델피아’. 동성애자인 앤드루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다. 그러나 회사에서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한 그는 이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다. 질병으로 인한 해고는 차별이며 위법임을 입증하는 그가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내세우는 게 미국의 헌법 제1조다. 그는 “미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돼 있지, 모든 ‘이성애자’는 법 앞에 평등하다고 씌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헌법 정신이 미국인들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 대목이다.
이 같은 헌법 정신의 대중화는 어제 오늘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 헌법의 기원에 그 뿌리가 있다. 1770년대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영화 ‘패트리어트’에서 그 일단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독립전쟁 기간 중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주인공 벤자민을 비롯한 미국 독립군은 영국군과 싸우면서 한편으론 자신들이 새로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담은 조문을 설계한다. 수많은 토론과 논의 끝에 완성된 조문이 바로 오늘날 미국 헌법의 모태가 된 것이다. 국민들의 투쟁과 피의 결과가 바로 헌법인 셈이다. 이후 헌법은 미국 사회의 변화에 맞춰 계속 수정, 추가돼왔다. 하지만 건국 과정에서 피와 희생으로 얻어낸 성취물이라는 점이 갖는 절대가치는 변함이 없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을 맡고 ‘긴급명령’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된 영화의 원제는 ‘명백하고 긴급한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었다. 군사용어쯤으로 들리지만 이 제목은 다름아닌 미국의 사법사에 큰 획을 그은 홈즈 대법관의 판례에 나오는 말이다. ‘명백하고 긴급한 위험’이 우려되는 경우에만 공공질서를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이 말은 이제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이면서 끊임없이 권리의식을 환기시키는 일종의 주문(呪文)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몇 년 전부터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이에즈’의 가사를 순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가사 내용이 너무 섬뜩하다는 것이다.
‘시민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압제자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더러운 적의 피로써 이 강토를 적시자.’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당시 ‘해방 프랑스’가 주변 외국군에 침략당할 때 나라와 자유를 지키러 나선 병사들이 불렀던 이 노래에는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러니 개사하자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번 탄핵사태가 확인시켜준 우리 헌법에 대한 국민들의 무지와 무관심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다르게 권력자와 몇몇 학자들 손에서 주물러져 온 헌법의 역사를 감안하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년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영화가 나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조문을 빌려 매매춘 여성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제목이었다. 영화의 완성도나 문제의식의 깊이와는 별개로 ‘헌법’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준 것만으로도 이 영화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싶다. 좀더 깊이 이 영화 제목에 담긴 뜻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조문 규정 자체가 국민 주권을 현실로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헌법은 그런 의미에서 당위이자 이념이지, 현실이 아닌 것이다. 이 당위를 현실로 바꾸는 출발점은 헌법 조문 한 글자, 한 글자가 갖고 있는 엄청난 위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