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화랑부대 예하 질풍부대 대원들과 기자가 K1A1 전차 위에서 지도를 보며 방어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네?”
“장갑차 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아세요? 민간인의 탑승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단 말이죠. 보험증서가 없으면 안 태워줄 겁니다.”
군대의 ‘군’자도 모르는 기자의 장갑차 시승은 이렇듯 처음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멋지게 전투장갑차를 타겠다는 호기는 육군본부 관계자의 으름장(?)에 한풀 꺾이고, “장갑차가 옆길로 굴러 떨어지면 모두 죽는다”는 기갑부대 출신 선배의 위협에 심장은 콩알만해졌다. 하지만 “장갑차를 타보지 않겠느냐”는 데스크의 매력적인 제안은 이런 두려움을 이기기에 충분했다. 이라크에 파병될 자이툰 부대를 지켜줄 한국산 장갑차 K-200을 타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결전부대의 군사훈련 현장을 찾았다.
3월16일 오전 따스한 봄 날씨의 경기 포천군 창수면 오가리의 한 공터. 결전화랑부대 예하 질풍부대 대원들이 맹호부대 대원들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방어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질풍부대 대원들이 지도를 보며 진지 탐색에 여념이 없었다.
“어, 여기자가 올 줄 몰랐는데.”
중대장인 임봉래 대위(28)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장갑차나 전차를 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일부 여군이 전차부대에 근무하긴 했으나, 전투병이 아닌 지원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다. 금녀(禁女)의 공간에 들어섰다는 묘한 기분에 기자는 여러 대의 장갑차와 전차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전차인가요, 장갑차인가요?”
눈앞의 장갑차(사실은 전차)를 가리키며 임대위에게 물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그 차는 바로 고장난 전차를 견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난 전차’라고 했다.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남자들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란 말이 있는 것처럼 기자는 장갑차와 전차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진짜 ‘군맹(軍盲)’이었다. 사단과 여단은 뭐고, 대위와 소령 중 대체 누가 더 높은가. 기자가 쏟아지는 군대 용어에 ‘두통’을 호소하자, 임대위는 “병력을 원하는 위치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것이 장갑차고, ‘전투 수행’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전차”라며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좁은 공간 뜨거운 열기 훅훅
K1A1 전차에 달린 기관총을 조준하고 있는 전차장 김중위(왼쪽). 김중위의 도움을 받아 K1A1 전차의 기관총을 조준하고 있는 기자.
“K1A1 전차는 K1 전차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포가 더 커졌습니다. 이 포는 2.5km 이내의 고정표적과 이동표적을 모두 명중할 만큼 성능이 뛰어나죠.”
한 대가 50억원에 이른다는 K1A1 전차의 내부로 들어가자 공간은 여자의 몸으로도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좁았다. 맨 앞은 조종수가, 뒤편은 탄약수 포수 전차장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구조였다. 탄약을 싣는 공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작 사람은 많이 탈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운전석에 앉아보니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뒤편 오른쪽에 앉아 있는 전차장이 조종수가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전투시에는 전차 내부에 앉은 전차장이 잠망경을 통해 외부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돼 있다.
K1A1 전차 앞에는 바로 자이툰 부대와 함께 이라크에 가게 될 K-200 장갑차가 있었다. 최대 12명이 탈 수 있다는 장갑차에는 소총수, 탄약병, 의무병, 통신병 등이 탄다고 했다. 장갑차 내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벤치형의 의자들과 잔뜩 쌓인 짐들. 밀폐된 공간에서 작은 창을 열면 밖으로 소총 공격이 가능했다. 최신식 무기라는 장갑차의 냉방과 난방은 얼마나 잘 이뤄질까. 난방은 뛰어나지만, 여름이면 뜨거운 열기의 장갑차 속에서 진땀을 빼야 한다고 했다. 이라크 파병 장병들이 더운 사막에서 ‘난로(?) 장갑차’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전차와 장갑차에 대한 설명을 듣던 중 어느덧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알고 보니 전차와 장갑차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군인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요리기구였다. 시동을 걸어 따뜻해진 엔진의 열기로 전투식량과 물을 데우기 때문. 2주간 야외훈련을 나온 이들에게 전차 엔진은 ‘야외용 전자레인지’ 역할을 해주었다. 군인들이 먹는 음식은 주로 레토르트 식품인 김치볶음밥과 멸치볶음, 고기완자 등의 반찬이었다. 허기짐 때문일까, 꽤 괜찮은 맛 때문일까. 기자는 밥 한 봉지를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점심식사가 끝날 무렵 임대위에게 ‘작전상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편의 힘을 빼기 위한 후퇴 전략이라고 했다. 드디어 기자는 움직이는 전차를 타볼 기회를 잡았다. “이왕 탈 거면 장갑차보다 전차를 타보는 게 좋지 않냐”는 임대위의 제안에 K1A1 전차의 탄약수석에 섰다.
‘보험증서가 없는’ 기자를 위해 전차장인 김모 중위는 안전을 위해 헬멧을 건넸다. 무거운 헬멧을 머리에 쓴 순간 이어폰으로 임대위의 지시사항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2km 후방인, 영로교 쪽으로 이동한다. 기자분 태웠으니 특히 안전에 유의하고. 뒤에 사고뭉치들, 잘 따라와!”
3월15일 부산항에서 이라크로 출항하기 위해 늘어선 K-200 장갑차들.
2002년 이후 ‘장갑차’는 한국 사람들에게 아픔의 기억이 됐다. 2002년 6월 여중생 효순이, 미선이가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후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한국의 전차병 역시 늘 전차 사고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경호빈 중위는 전차병이 겪는 애환을 들려주었다.
“도로교통법상 자동차는 작전 중인 전차나 장갑차를 추월하지 못하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전차가 워낙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작전 중인 전차 사이로 끼어들거나 추월하는 자동차 운전자가 꼭 있어요. 정말 위험한 일인데, 그러다 보니 항상 군사훈련보다는 민간인 안전에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안전에 노심초사해하는 전차병의 눈빛이 유난히 든든해 보였다. 적어도 이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은 위안이었다.
전차를 타고 영로교 근처의 진지에 도착하자, 한탄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는 적들의 공격에 대비한 여러 개의 참호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전차를 타고 ‘신나게’ 달려온 기자는 그제야 피부로 다가오는 전쟁의 상흔에 가슴이 찡했다. “무기나 전차가 없어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다”고 외쳐온 기자의 눈앞에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무거운 현실이 있었다.
한국산 K1A1 전차와 K-200 장갑차의 공로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단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려웠던 전차 시승을 무사히 마치며 기자는 그토록 군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결전부대 대원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