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제주도가 발표한 ‘2003년 제주 인구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80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이 20.42%로 4년째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 통계를 보고 나니 불현듯 노인성(老人星) 얘기가 생각난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제주 사람이 장수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제주 사람들은 노인성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옛 천문도를 보면 하나같이 남반구 하늘에 비교적 큼직하게 노인성이 그려져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를 남극노인(南極老人), 또는 수성(壽星)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이 별을 보는 사람은 장수를 누리고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왔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의 글을 모은 성호사설에는 ‘노인성’이란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는 자기 당숙이 제주에서 열었던 노인잔치를 소개하고 있다. ‘노인잔치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140세였고, 100세 이상이 아주 많았다’는 기록이다. 지금 제주의 최장수 노인이 140세일 리 없으니, 아마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장수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이 별을 카노푸스(Canopus)라 부르는데, 밝기가 -0.7등급으로 시리우스 다음으로 광채를 낸다. 비록 1등성 항성 가운데 두 번째로 밝은 별이지만, 남극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어 북반구에서는 지평선 바로 위에 간혹 나타날 뿐이다. 이론적으로 노인성을 볼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북위 37.8。라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그런대로 볼 수 있지만 38。가 살짝 넘어가는 개성 이북부터는 관측 자체가 아예 가능하지 않다. 이미 우리 역사에는 서기 934년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8년에 처음으로 노인성을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 때는 6차례나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때 노인성의 관측은 축제의 기회가 됐다. 1120년(예종 15년) 9월 노인성이 지평선 위에 떠오르자 임금은 장낙전에서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손수 이 노인성의 빛남을 찬탄하는 시를 지어 악공에게 이를 노래하게 했다. 1170년(의종 24년) 4월의 노인성 관측이 이보다 더 요란한 축제 기회가 됐던 사실을 ‘고려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종 때까지도 노인성을 위한 제단을 세워 제사 지낸 기록이 남아 있지만, 노인성 숭배사상이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 같은 풍습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입춘 때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대련 가운데 노인성을 예찬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 노인성 숭배는 여전히 고고한 전통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북당훤초록 남극수성명(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북쪽 집에는 상서로운 풀이 푸르고, 남극에는 노인성이 밝구나!).’
또 설날 도화서에서는 여러 가지 세화(歲畵)를 그려 임금에게 바치고, 임금은 그 그림을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대표적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노인성이었다. 김홍도의 작품 가운데 여러 노인성도가 남아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노인성 때문에 제주 사람들이 장수한다고 믿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깨끗한 환경과 생활력이 강하며 해산물이 풍부한 식생활 덕택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만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제주 사람이 장수한다’라는 말을 들었다면 “제주 사람들은 노인성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을지도 모른다. 옛 천문도를 보면 하나같이 남반구 하늘에 비교적 큼직하게 노인성이 그려져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를 남극노인(南極老人), 또는 수성(壽星)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이 별을 보는 사람은 장수를 누리고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왔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의 글을 모은 성호사설에는 ‘노인성’이란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여기서 그는 자기 당숙이 제주에서 열었던 노인잔치를 소개하고 있다. ‘노인잔치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140세였고, 100세 이상이 아주 많았다’는 기록이다. 지금 제주의 최장수 노인이 140세일 리 없으니, 아마 옛날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장수했는지도 모르겠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이 별을 카노푸스(Canopus)라 부르는데, 밝기가 -0.7등급으로 시리우스 다음으로 광채를 낸다. 비록 1등성 항성 가운데 두 번째로 밝은 별이지만, 남극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어 북반구에서는 지평선 바로 위에 간혹 나타날 뿐이다. 이론적으로 노인성을 볼 수 있는 북방한계선은 북위 37.8。라고 알려졌다. 그렇다면 서울에서는 그런대로 볼 수 있지만 38。가 살짝 넘어가는 개성 이북부터는 관측 자체가 아예 가능하지 않다. 이미 우리 역사에는 서기 934년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8년에 처음으로 노인성을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고, 고려 때는 6차례나 관측한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 때 노인성의 관측은 축제의 기회가 됐다. 1120년(예종 15년) 9월 노인성이 지평선 위에 떠오르자 임금은 장낙전에서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손수 이 노인성의 빛남을 찬탄하는 시를 지어 악공에게 이를 노래하게 했다. 1170년(의종 24년) 4월의 노인성 관측이 이보다 더 요란한 축제 기회가 됐던 사실을 ‘고려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세종 때까지도 노인성을 위한 제단을 세워 제사 지낸 기록이 남아 있지만, 노인성 숭배사상이 슬그머니 사라지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 같은 풍습은 사라지고 만다. 그렇지만 입춘 때 대문이나 기둥에 붙이는 대련 가운데 노인성을 예찬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 노인성 숭배는 여전히 고고한 전통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북당훤초록 남극수성명(北堂萱草綠 南極壽星明·북쪽 집에는 상서로운 풀이 푸르고, 남극에는 노인성이 밝구나!).’
또 설날 도화서에서는 여러 가지 세화(歲畵)를 그려 임금에게 바치고, 임금은 그 그림을 신하들에게 나눠주었는데 그 대표적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노인성이었다. 김홍도의 작품 가운데 여러 노인성도가 남아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노인성 때문에 제주 사람들이 장수한다고 믿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깨끗한 환경과 생활력이 강하며 해산물이 풍부한 식생활 덕택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만 늘어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