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

한국 책 “한류 열풍 이젠 내 차례”

지난해 저작물 중국 진출 본격화 … 기본 정보·전략 수립, 전문가 양성 시급한 과제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2-05 13: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 책 “한류 열풍 이젠 내 차례”
    ”공식 집계된 것만 200만부이니 실제로는 1000만부 이상 팔렸을지도 모른다.”

    소설 ‘상도’의 중국 내 판매 실적에 대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의 말이다. ‘정본’보다 해적판이 5~10배씩 더 팔리는 중국 출판시장 현황을 감안할 때 ‘슈퍼 밀리언셀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적이다. ‘국화꽃향기’, ‘가을동화’, ‘일곱 송이 수선화’ ‘엽기적인 그녀’ 등도 중국어로 번역 출판돼 정본만 10만권 이상 팔려나간 우리 책들이다.

    드라마 영화 소설 위주 시장 형성

    중국이 우리 출판산업의 새 판로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도서출판 분야의 해외 수출이라 하면 작품성을 인정받은 극소수 문예물의 유럽 진출, 일부 영어학습서·IT(정보기술) 서적·만화 등의 일본·대만 수출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어권에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 저작물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도 덩달아 고조됐다. 그 결과가 2003년을 기점으로 본격화한 우리 저작물의 중국 본토 진출이다.

    그러나 중국 출판계의 열악한 현실, 특히 희박한 저작권 의식과 낮은 신용도는 중국 진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칫 수출이 출판사나 저자의 ‘생색내기용’ 또는 돈벌이와는 상관없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위험마저 있다. 중국시장에 대한 국내 출판계의 몰이해와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는 중국 거대 출판그룹들의 경쟁력 급성장 또한 난제다.



    그럼에도 중국 수출을 통해 국제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우리 출판계의 ‘러브콜’은 날로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국내 출판업계의 ‘베이징국제도서전’ 참가 추이가 이를 잘 대변한다. 1998년 3개 부스 2개사에 불과하던 것이 2000년 7개 부스 9개사, 2002년 21개 부스 29개사, 2003년 32개 부스 38개사로 늘어났다.

    “2002년 말부터 중국시장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다. 마침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을 타고 상업적 성공이 가능한 콘텐츠 중심으로 접근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드라마·영화 소설 위주로 시장이 형성됐다.”

    신원에이전시 베이징지사장 최재철 상무의 말이다. 신원에이전시는 국내 출판 에이전시 중 유일하게 중국 현지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실적도 높은 편. 최상무의 말대로 신원에이전시를 통해 중국에 소개된 한국 책의 70%는 영화·드라마를 소설화한 것, 또는 그 원작이 된 소설들이다. ‘엽기적인 그녀’ ‘친구’ ‘8월의 크리스마스’ ‘내 마음의 풍금’ ‘동감’ ‘연풍연가’(이상 영화), ‘가을 동화’ ‘아름다운 날들’ ‘지금은 연애 중’ ‘유리구두’ ‘겨울연가’ ‘1%의 어떤 것’(이상 드라마) 등이다. 소설이 따로 있지 않은 경우 에이전시가 원작자 등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해외시장 진출을 목표로 ‘중국어 소설화’에 적극 개입했다.

    출판에이전시 임프리마코리아의 이구용 부장은 “아무래도 순수소설보다 드라마·영화 소설의 경쟁력이 높다. 재미있는 것은 출연 배우나 탤런트의 면면이 계약 성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그러니 중국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이 등장한 영화 또는 드라마가 진출하면 관련 도서를 수출하는 것이 여러모로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책 “한류 열풍 이젠 내 차례”

    2003년 ‘베이징 국제도서전’에 참가한 국내 출판사 관계자들이 저작권 수출에 관한 상담을 하고 있다.

    드라마·영화 소설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학습만화를 중심으로 한 아동물이다. 임프리마코리아를 통해 중국에 수출된 책 중에는 아동서가 가장 많다. ‘경제귀신 돈 몬스터’ ‘이거 알아?’ 시리즈, ‘웃기는 과학만화’ 시리즈 등. 그중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해외저작물인 오리지널 텍스트를 국내 일러스트레이터가 만화로 재구성, 저자와 공동 저작권자가 돼 해외로 역수출한 사례다.

    임프리마코리아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수출된 책의 45%는 소설, 27%는 만화(학습), 9%는 어학 관련 서적이었다. 이러한 비율은 중국시장 전체에 대한 한국 출판계의 수출 판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기호 소장은 “‘중국신문출판보’에 따르면 한국출판물의 중국 수출은 2001년 351.15%, 2002년 244.34%, 2003년 상반기에만 100% 등 만만치 않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5일 한국출판학회 주최 ‘한·중·일 출판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한 중국 베이징대 신문전파학원 샤오동파 교수는 “2002년 중국이 한국에서 수입한 서적은 275종”이라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에 어떤 장르의 책이 몇 종이나 수출돼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에 대한 국내 종합 집계는 없다. 에이전시 또는 출판사마다 제각각의 방식과 루트를 통해 저작권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다, 가계약 또는 본계약이 있은 다음에도 중국 쪽의 과한 요구 및 일방적 연락 두절 등으로 실제 수출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연구소 박호상 연구원은 “현재로선 2002년 베이징도서전 당시 계약한 167건, 2003년 계약한 181건 정도만이 확실한 수치”라고 말했다.

    이 같은 기본 정보 및 전략의 미비, 전문 에이전트의 부재, 출판사의 낮은 현지 이해도 등은 막 열린 ‘황금시장’ 중국 진출을 저해하는 첫 번째 요소다. 문화부 산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펴낸 ‘문화콘텐츠 해외진출 가이드북-중국문화산업’ 편만 봐도 도서출판 분야에 대한 ‘가이드’는 엉성하기 이를 데 없다.

    “문학작품 등도 충분히 승산 가능”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수출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이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다.

    신원에이전시 김순응 사장은 “전문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은 경우 책이 많이 팔려도 2차, 3차 인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유수 출판사 수출팀장인 김모씨는 “2년 전 시리즈 소설 저작권을 수출했다. 해적판은 빼고라도 꽤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초판 인세 외에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비슷한 조건으로 수출한 대만에서는 2차 인세가 들어왔다고 한다.

    “중국 출판사들이 판매량을 성실히 보고하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역시 근본 문제는 해적판이 정본을 ‘말아먹는’ 중국 출판시장의 현실이다. 정본 10만부가 팔리면 해적판은 100만부 정도 팔렸다고 보면 된다. 저작권을 침해했을 때의 법적 책임도 크지 않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신원에이전시 베이징지사장 최재철 상무의 설명이다.

    요즘 중국 해적판 시장에서는 한국 만화책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역시 정본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 수입서를 불법복사해 파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괜찮은 만화 시리즈 몇 개만 히트 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 농담처럼 오간다 한다.

    체제가 다르고, 검열의 칼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으며,‘천천히’ 관행이 만연한 것도 골칫거리다. 최재철 상무는 “중국 정부 허가 없이는 출판사를 설립할 수 없다. 그래서 ‘출판사’라 이름 붙은 곳은 중국 전체에 560여사에 불과하다. 시장은 날로 커지는데 책 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 우리나라 제2금융권처럼 ‘전파유한공사’라는 ‘제2출판사’가 출판허가 번호를 사거나 빌려 변칙 영업을 한다. 그런 만큼 업무 과정 자체가 복잡하고 때로는 일의 주체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고민거리는 수준 낮은 인쇄술과 전문번역가의 부재. 동화 등 작품성 뛰어난 책을 가져다 ‘3류’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속앓이를 하는 작가나 에이전트도 적지 않다. 영미 중심으로 움직이다 최근 중국시장 본격 진출을 결정한 한 중견 에이전시 관계자는 “일단 상업성이 중요하긴 하지만 드라마 소설 등 한쪽으로만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일본 서적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처럼 만화, 실용서, 대중서와 함께 각종 전문서적이나 수준 높은 한 문학작품 등도 함께 소개해야”고 주장했다.

    신원에이전시 김순응 사장은 “시장이 혼탁하다고는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도 많이 변했다. 해적판만 해도 큰 도시를 중심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추세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전문 에이전시의 역량 강화, 해외시장을 겨냥한 출판사의 뛰어난 기획이 합쳐진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좋은 제품은 어디서나 통한다. 책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