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가 가벼운 소식가에게 가장 적당한 일식 요리는 회전초밥이다.
강남구는 사무실 빌딩이 밀집한 지역이다. 아무래도 직장인들이 업무상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한국적 비즈니스 환경에서 업무 상담을 위해서는 밀폐되고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파티션으로 공간을 나눈 일식집이 적당할 것이다. 분위기가 깔끔한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메뉴가 단순해서 선택하는 데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장점이다. 초밥(스시) 아니면 생선회(사시미), 그냥 알아서 가져다달라고 하면 된다. 담백한 해산물은 우리 식성에도 잘 맞고 저지방식이므로 요즘 트렌드에도 들어맞는다.
곳곳에 있다 보니 잘하는 집도 많다. 초밥만 보더라도 회전초밥에서부터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는 티를 내기라도 하듯 긴 꼬리를 늘어뜨려 금가루를 뿌린 화사한 초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떤 집은 전체적으로 양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든다. 호흡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다양하게 많이 주는데, 물론 고마운 일이지만 매일 이렇게 먹는 회사 중역들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한다. 과하게 대접해야 대접받은 것 같고,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은 지난 시대의 유산이다. 그러나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지, 의외로 기본이 약한 초밥이 많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K는 내가 미국 유학 시절 만나 나를 맛의 세계에 입문시켜준 맛의 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미각을 단련해왔고 맛을 찾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강조하는 얘기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다. “활어회가 꼭 더 맛있는 것은 아니다. 초밥의 기본은 밥이고, 밥과 생선의 조화가 중요하다”(당연한 말인 듯하다). 그와 함께 강남에서 초밥 잘하기로 소문난 식당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K의 평가는 아주 냉담했다. 초밥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은 이랬다.
“스시의 밥은 쌀알 하나하나가 살아 있으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이렇게 sticky(끈끈하게 붙어버린)하면 안 돼. 쌀식초, 소금, 설탕이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이 나야 하고, 정말 좋은 쌀식초를 써야 해. 근데 이 초밥의 밥맛은 밋밋해. 스시의 밥은 수분 함량이 핵심이야. 햅쌀이냐 묵은 쌀이냐, 그리고 품종에 따라 각각 정밀한 계산이 필요하지. 스시는 사시미의 연장이 아니야. 초밥의 양이 너무 적어. 한 손에 쥐어질 정도의 적당량의 밥과 생선살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또 사시미는 활어나 숙성된 것이나 다 특색이 있지만 스시의 생선은 숙성된 것을 써야 해.”
긴 꼬리를 늘어뜨린 참치 초밥. 맛있는 초밥을 만들려면 우선 밥을 잘 지어야 한다. 품종과 수분 함량까지 철저히 계산해 지은 밥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초밥들. (왼쪽부터)
일반적으로 일식집은 비싸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소식가에게 아주 적당한 곳이 있다. 바로 회전초밥집이다. 스시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삼전(森田)’(02-735-1748)은 회전초밥 집의 터줏대감 격이다. 값은 접시당 2500원으로 똑같다. 처음보다 가격이 약간 올랐지만 그래도 비싼 편은 아니다. 당연히 화려한 장식도 없고 회전초밥집이기 때문에 손님들 개개인의 취향을 고려해서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초밥을 쥐는 주방장의 능숙한 손놀림은 믿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흰살 생선으로 광어, 도미 등이 돋보이고 특히 이곳 연어 초밥은 아주 부드럽고 기름지다. 간장소스로 구운 장어를 김으로 만 장어초밥도 그만이다. 또 청어살과 청어알 두 가지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청어초밥은 모양도 좋고 씹는 감촉, 맛 모두 좋다. 가끔 성게(우니)나 연어알(이꾸라) 같은 비싼 재료로 만든 초밥도 나온다.
또 서울 목동 현대백화점 옆의 ‘스시노미찌’(02-2647-0011)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초밥의 배치가 넉넉할 뿐 아니라 참치뱃살(도로) 등 고급 재료들을 많이 사용한다. 최근에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6층에도 회전초밥집이 문을 열었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재미있는 곳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