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와 경찰은 결코 적이 아닙니다. 제발 우리의 아들인 전·의경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지 말아주십시오.”
최근 격렬한 시위현장에 가면 언제나 이런 내용의 전단지를 돌리는 이혜숙씨(48)를 만날 수 있다. 이씨는 1998년 부대 내 폭력으로 하나뿐인 아들 박현우씨(당시 20세)를 잃은 군폭력 피해자 유가족. 당시 국방부는 박씨가 작업 도중 감전사했다고 밝혔지만 이씨는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조사해줄 것을 거듭 요구한 끝에 아들이 부대 내 폭력사건을 고발하다 상급자에게 폭행당해 숨졌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이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죽은 아들 대신, 또 다른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해 남은 삶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 그는 ‘군폭력 희생자 유가족 협회’를 만들어 군복무 중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다른 유가족들을 도왔고, 이 과정에서 전·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전·의경들이 나와서 우리를 가로막더군요. 무거운 진압복을 입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 현우를 본 듯 마음이 아팠어요. 그 다음부터는 시위하러 갈 때면 언제나 빵과 우유를 가지고 가 진압경찰들에게 주곤 했지요.”
이씨는 격렬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전국 각지의 부대를 돌며 다른 희생자 가족과 함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전·의경 역시 평범한 우리의 아들, 동생, 조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호소는 절절하기까지 하다. “전·의경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무하며, 명령에 복종해 시위대와 대치할 뿐입니다. 그들 역시 여러분들의 소중한 자제와 마찬가지로 그들 부모들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입니다. 진정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여러분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한의 아들들이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부모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협조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로 끝나는 그의 호소문을 보면서 시위중인 사람들도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조심하겠습니다” 하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시위현장 찾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경찰 책임자에게도 제발 우리 아들들이 우리의 이웃인 시위대를 향해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제 호소로 조금이라도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그것이 군부대 내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던 현우의 뜻을 이어가는 일 아니겠습니까.”
최근 격렬한 시위현장에 가면 언제나 이런 내용의 전단지를 돌리는 이혜숙씨(48)를 만날 수 있다. 이씨는 1998년 부대 내 폭력으로 하나뿐인 아들 박현우씨(당시 20세)를 잃은 군폭력 피해자 유가족. 당시 국방부는 박씨가 작업 도중 감전사했다고 밝혔지만 이씨는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조사해줄 것을 거듭 요구한 끝에 아들이 부대 내 폭력사건을 고발하다 상급자에게 폭행당해 숨졌음을 밝혀냈다.
이 사건은 이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죽은 아들 대신, 또 다른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해 남은 삶을 바치기로 작정한 것. 그는 ‘군폭력 희생자 유가족 협회’를 만들어 군복무 중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다른 유가족들을 도왔고, 이 과정에서 전·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의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하는데 전·의경들이 나와서 우리를 가로막더군요. 무거운 진압복을 입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우리 현우를 본 듯 마음이 아팠어요. 그 다음부터는 시위하러 갈 때면 언제나 빵과 우유를 가지고 가 진압경찰들에게 주곤 했지요.”
이씨는 격렬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전국 각지의 부대를 돌며 다른 희생자 가족과 함께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전·의경 역시 평범한 우리의 아들, 동생, 조카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호소는 절절하기까지 하다. “전·의경들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복무하며, 명령에 복종해 시위대와 대치할 뿐입니다. 그들 역시 여러분들의 소중한 자제와 마찬가지로 그들 부모들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입니다. 진정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여러분이라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한의 아들들이 무사히 복무를 마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부모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협조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로 끝나는 그의 호소문을 보면서 시위중인 사람들도 “어머니, 걱정 마십시오. 조심하겠습니다” 하고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시위현장 찾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경찰 책임자에게도 제발 우리 아들들이 우리의 이웃인 시위대를 향해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제 호소로 조금이라도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면, 그것이 군부대 내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던 현우의 뜻을 이어가는 일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