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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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여개 경쟁 규제 유지냐, 철폐냐

공정위 규제학회 의뢰 연구안 ‘단독 입수’ … 두 달 뒤 보고서 공식 발표 ‘충돌’ 불 보듯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11-20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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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여개 경쟁 규제 유지냐, 철폐냐

    지난 10월9일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임진출 의원이 이동통신사의 약정내용이 불공정하다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규제학회(회장 최병선·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강철규·이하 공정위)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에 관련 업계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연구 주제는 ‘경쟁제한적 제도의 타당성 검토 및 합리적 개선을 위한 연구’. 쉽게 말해 약자 보호, 품질관리 등의 이유로 시장원리가 아닌 관계 규정에 따라 운용되어온 사업영역에 대해 그 ‘경쟁 제한’을 유지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를 논한 것이다.

    경쟁의 ‘규칙’에 대한 내용인 만큼 연구대상 분야와 관련된 업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KT나 SK텔레콤의 경우 ‘시장지배적 기간 통신사업자에 대한 이용 약관 인가’를 폐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이 조항이 폐지될 경우 통신요금을 자율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라면 백화점 셔틀버스의 노선운행 금지 항목 철폐 여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연구 결과 전체가 법령 개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향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제도개선과 담당자도 “곧 있을 제2차 카르텔 일괄정리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 제·개정에 연구 결과를 적극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 정책에 반영하는 것 타당”

    더 중요한 사실은 이번 연구에 포함된 180여개 ‘규제조항’이야말로 공정위가 오랫동안 경쟁 촉진 측면에서 그 폐지 여부를 고민해온 사안들이라는 점이다. 규제학회측의 한 인사는 “공정위가 10년 이상 끌어온 문제들을 집대성해 놓았다. 특히 부처 간 의견 조정에 어려움을 겪어온 사안들이 많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어떤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느냐, 연구 결과가 어떤 방향이냐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관련 업계로서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주간동아’는 10월20일 1차 공청회 당시 규제학회가 제출한 연구검토안을 단독 입수했다. 공청회라고는 하나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민간인 참여를 유도하지 않은 데다, 각 부처 관계자들의 참석률도 저조해 구체적 내용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부처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공정위의 문제제기에 대한 각 부처의 싸늘한 반응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정위가 규제학회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은 6월16일. 공모를 통해 그중 연구계획서가 가장 충실한 규제학회를 주체로 선정했다. 용역비는 5000만~6000만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11월13일 최종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관련 부처의 의견을 취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2004년 1월로 연기했다.

    공정위 담당자는 “연구검토안은 최종안이 아닌 만큼 아직 공개하기는 이르다”면서도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연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뜻을 밝혔다. “공정위는 규제개혁과 직접 관련된 부처지만 관련 조항에 대한 개폐 권한이 없다. 그러나 문제 부분에 대해서는 (국무총리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그 개선 필요성을 적극 개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병선 규제학회장도 “최종안과 연구검토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정책 강화를 주장해온 최회장은 “규제를 만드는 데는 수억원씩 쓰면서 푸는 데는 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라며 “규제 폐지는 기업 편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입장과 일부 부합하는 면이 있으나 궁극적 목적은 시장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민생활 향상이다. 그런 만큼 산업안전·환경·소비자 보호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욱 강력한 규제를 요구해온 게 우리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견해는 공정위의 정책 기조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따라서 각 부처와 공정위 간의 긴장관계 형성 내지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달 후 있을 규제학회 보고서의 공식 발표가 그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업계의 이해와 부처 입장이 극단적으로 상충 또는 합치되는 사안의 경우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상충될 경우에는 각자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업계와 관련부처의 노력이 불꽃을 튀길 것이고, 합치될 때에는 공정위의 ‘개방’ 요구에 업계와 관련부처가 힘을 합쳐 거세게 저항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규제학회가 내놓은 1차 공청회용 연구검토안 중 이 같은 충돌 가능성이 큰 항목 몇 가지를 살펴보자.

    # 재정경제부

    전문자격사만의 법인 설립(세무법인): ‘세무사만이 세무법인을 세우게 한 것은 엄연한 진입 제한’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는 “이전에도 (공정위가) 비슷한 안을 제출한 적이 있으나 현재로선 폐지를 고려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세무사회 설립 및 가입 의무화: ‘업계에 대한 감독 및 정부 사무 위탁은 꼭 협회 설립 및 가입을 강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규제학회의 연구 결과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한 조항 폐지 시도가 국회심의 과정에서 좌절된 것은 개혁 관련 집단의 저항이 상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관세사회, 공인회계사회 등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경부측은 “세무사는 공공성이 강한 직종이다. 엄격한 관리와 윤리 규정 준수가 중요한 만큼 가입 강제가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 교육부

    학교법인은 비영리법인이어야 함: 보고서는 ‘사립학교 설립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한 까닭에 재단 설립자가 학교 경쟁력 향상보다 명성, 지명도 등 부수적 이득을 얻는 데 힘쓸 가능성이 높다’며 영리법인에도 사립학교 설립을 허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 시장 개방과 관련해 이 같은 논의가 진척 중이나 교육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교과용 도서의 사용 : ‘시장경제 원리 도입을 위해 국정교과서 및 검인정 교과서 제도의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그러한 문제제기를 받은 바 없고 검토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 건설교통부

    건설공사하도급 심사: 보고서는 ‘과당경쟁으로부터 부실공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나 장기 존치는 중소건설업체의 경쟁력 향상을 저해할 수 있다’며 ‘5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는 “의무조항도 아닌데 규제라 할 수 있나. 관급공사의 경우엔 감사에 대비, 이 규정을 준수하나 민간공사는 발주자 마음대로다. 오히려 이를 강제조항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건교부 입장”이라 밝혔다.

    자가용자동차(백화점 셔틀버스)의 노선운행금지: ‘학교, 학원 등의 경우에는 허용하면서 백화점 사업자만 금지하는 것은 형평성에 위배된다. 지역 소상공인과 서비스 향상을 게을리 하는 버스 택시 등의 집단적 압력에 굴복한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것이 규제학회의 지적이다.

    그러나 건교부는 “대중교통 활성화는 건교부의 핵심 정책”이라며 “폐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 정보통신부

    시장지배적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이용약관 인가(통신요금 규제): 규제학회는 ‘현재 통신 시장은 유·무선 시장 모두 경쟁상태가 충분하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통신요금을 규제하는 것은 요금 인하를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경쟁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보통신부측은 “통신 시장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 ‘통신사업자에 대한 허가·등록 조건 부여’에 대해서도 양측은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 문화관광부

    스크린쿼터제: 보고서는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제도가 한국영화의 질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의 논거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

    그러나 문화관광부측은 “당분간 그럴 계획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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