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회장은 선친의 유지인 대북사업이 특검수사로 비난받자 과도한 중압감에 시달린것으로 알려졌다.
정회장은 A4 용지 4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지만 자살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현대아산 고위 관계자는 “정회장이 최근 대북사업에 대해 국민적 평가가 엇갈리자 크게 고민했으며 대북송금 의혹으로 법정을 오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주위사람들에게 자주 곤혹스런 심경을 털어놓았다”고 한 언론에 밝혔다.
그런 점이 자살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지만 가족 내력을 살펴보는 것도 그의 죽음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생전에 모든 가족이 아침 6시에 자신의 집에 모여 함께 식사한 후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는 등 가족의 화합과 형제간의 우애를 무엇보다 강조했다.
현대 적자(嫡子) 증명 강한 의욕 … 안팎서 힘든 상황
그러나 세칭 ‘왕자의 난’ 이후 가신들 간의 알력 등으로 인해 형제간의 우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5남인 정회장은 형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제치고 그룹의 적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 심리적 부담감이 엄청났을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등을 물려받은 데다 아버지가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대북사업을 이어받은 정회장은 자신이 실제적인 적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강한 의욕을 불태웠다. 실제로 정 명예회장 생전에는 ‘소 떼 방북’ 등 빅 이벤트를 성사시켰고, 금강산 관광을 통해 대북사업의 주도권을 쥐며 승승장구했으며, 기존 회사를 경영해 나가는 것보다 대북사업에 더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대북사업에 대한 강한 집착은 결국 불법 대북송금 등 무리수를 불러왔고 불행히도 금강산 관광 사업과 대북 경제협력 사업 등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 개인적으로는 피의자의 신분이 되었을 뿐 아니라 회사마저도 5년 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졌다.
일반적으로 윗사람을 제치고 나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항상 자신이 무리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등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선택이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경우 느끼게 되는 좌절감과 죄의식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런 중압감은 평생 순서가 정해져 있는 형제간의 경우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런 점에서 정회장이 느꼈을 부담감과 죄의식은 자기 대에 회사를 세웠다 부침을 겪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회장이나 기타 사업가들과는 달랐을 것이 분명하다. 가부장적인 부모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정회장의 경우 ‘잘해야 본전이고 웬만큼 잘해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태생적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중압감 속에서 항상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자기 자신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정회장은 자신보다 네 살 위인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에게 남긴 유서에서 ‘명예회장님께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 모실 때 저는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만큼 그는 선친의 뜻을 잇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자신 때문에 금강산 사업이 힘들어졌다는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남아 있는 ‘진실한 자식’인 김사장에게 ‘대북사업을 명예회장이 원했던 대로 강력히 추진해달라’고 주문한 게 아닐까.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도 그는 자신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달라며 금강산과 대북사업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
더욱이 현정부 출범 뒤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이 시작되고 자신의 입장에서는 밝히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밝혀지면서 그는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학생이 성적부진으로 선생님과 상담하다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할 때 느끼는 당혹감과도 유사한 감정이다. 이 모든 심리적 이유와 안팎의 상황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닐까. 정회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