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만화 관련 전시회가 부쩍 늘어난 듯싶다. 금년에 이미 이화여대박물관에서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전이 열렸고 현재 일민미술관에서 ‘동아·LG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탈리아 만화전’과 ‘앙굴렘 한국만화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두 전시 모두 미술관에서 열리고 전시기간이 길다(각각 120일, 40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어서 8월 중순에 있을 ‘서울 카툰·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과 10월 초에 열릴 예정인 ‘부천 만화페스티벌’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는 올 8월부터 가을까지 ‘만화·애니메이션 기획전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중심으로 3개의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산업적 차원 넘어서는 ‘문화적 담론’까지 담아야
만화를 ‘전시회’로 만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익숙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볼 만한 전시가 별로 많지 않았다. 만화축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부대행사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페스티벌 주최측도 만화전시에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있다. 만화전시회는 책을 통해 만화를 읽는 것과는 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전시물은 대개 액자에 넣은 만화 원화 전시나 출력물 전시 정도가 일반적인 유형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회화와 조각, 인형이나 모형, 캐릭터, 그리고 책, CD, 광고, 웹 디자인과 각종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 혹은 벽화나 설치미술 작업도 있을 수 있다. 그밖에 작가의 동화상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상영, 작가의 사인회와 대담, 세미나, 퍼포먼스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하고 대중적인 전시 내용 덕분에 만화전시는 일반 미술전시보다 더 재미있고 생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만화전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작가냐, 그리고 어떤 의미와 맥락을 만들어내느냐라는 전시기획 자체의 창의성이다. 이 점에선 만화전시와 현대미술전시, 혹은 성공한 문화전시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만화가 전시회를 통해 관객과 만날 때 그것이 새롭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될 수 있고, 지적이고 예술적인 흥분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전시는 만화의 언어와 미학을 발견하게 하거나 당대의 중요한 문화적 담론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작가의 평가와 발굴에 있어서도 큰 몫을 한다.
최근 우리 만화계에서 이제는 만화전시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반가운 현상이다. 이번에 ‘동아·LG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파격적인 일민미술관 전시(‘이탈리아만화전’ ‘앙굴렘 한국만화특별전’)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읽힌다.
좋은 만화전시회는 한국 만화의 문화적 고립과 유폐를 타개하는 데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국 만화는 문화적으로 너무 고립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에 관한 담론은 산업적 차원에 한정되어 있으며 문화적 담론이 활성화한 기획도 거의 없다. 그리고 시장은 상투적인 형식 속에서만 돌아간다. 문예적 매개(전시기획과 대안 출판기획, 학술연구와 이론교육, 비평, 대학의 교양강좌 등)라는 윤활 영역이 예나 지금이나 부재한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정말 만화가들의 작은 동네로 게토화되어 있다.
만화는 방대하고 촘촘한 문화적 제휴와 협력(곧 문화기획) 속에서, 그리고 시장의 흐름과 스타들의 존재 속에서 활성화한다. 이런 움직임과 기획의 중요한 형식의 하나가 전시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의 기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이끈다.
물론 전시는 출판을 통해 알려진 작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 점에서는 본말의 전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앙굴렘이든 어디든 출판(곧 만화책)을 기본으로 한 이 행사 중에 왜 상당히 공력을 들인 전시가 열리고 그곳에 사람이 몰리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그 답은 바로 작가에게 있다. 작가의 지명도가 전시회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낳고, 좋은 전시회는 작가를 스타로 만들고 책을 더 잘 팔리게 하는 것이다.
문화 수요자들의 안목은 훨씬 높아졌는데 정작 공급자측은 그걸 모르고 구태로 일관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좋은 전시기획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만화계가 고민했으면 한다.
산업적 차원 넘어서는 ‘문화적 담론’까지 담아야
만화를 ‘전시회’로 만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익숙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볼 만한 전시가 별로 많지 않았다. 만화축제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부대행사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페스티벌 주최측도 만화전시에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향이 있다. 만화전시회는 책을 통해 만화를 읽는 것과는 다른 체험을 제공한다. 전시물은 대개 액자에 넣은 만화 원화 전시나 출력물 전시 정도가 일반적인 유형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회화와 조각, 인형이나 모형, 캐릭터, 그리고 책, CD, 광고, 웹 디자인과 각종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 혹은 벽화나 설치미술 작업도 있을 수 있다. 그밖에 작가의 동화상 인터뷰나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상영, 작가의 사인회와 대담, 세미나, 퍼포먼스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다양하고 대중적인 전시 내용 덕분에 만화전시는 일반 미술전시보다 더 재미있고 생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만화전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작가냐, 그리고 어떤 의미와 맥락을 만들어내느냐라는 전시기획 자체의 창의성이다. 이 점에선 만화전시와 현대미술전시, 혹은 성공한 문화전시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만화가 전시회를 통해 관객과 만날 때 그것이 새롭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될 수 있고, 지적이고 예술적인 흥분을 가져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전시는 만화의 언어와 미학을 발견하게 하거나 당대의 중요한 문화적 담론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작가의 평가와 발굴에 있어서도 큰 몫을 한다.
최근 우리 만화계에서 이제는 만화전시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반가운 현상이다. 이번에 ‘동아·LG 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파격적인 일민미술관 전시(‘이탈리아만화전’ ‘앙굴렘 한국만화특별전’)도 이런 흐름의 하나로 읽힌다.
좋은 만화전시회는 한국 만화의 문화적 고립과 유폐를 타개하는 데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국 만화는 문화적으로 너무 고립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에 관한 담론은 산업적 차원에 한정되어 있으며 문화적 담론이 활성화한 기획도 거의 없다. 그리고 시장은 상투적인 형식 속에서만 돌아간다. 문예적 매개(전시기획과 대안 출판기획, 학술연구와 이론교육, 비평, 대학의 교양강좌 등)라는 윤활 영역이 예나 지금이나 부재한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는 정말 만화가들의 작은 동네로 게토화되어 있다.
만화는 방대하고 촘촘한 문화적 제휴와 협력(곧 문화기획) 속에서, 그리고 시장의 흐름과 스타들의 존재 속에서 활성화한다. 이런 움직임과 기획의 중요한 형식의 하나가 전시회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의 기대를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이끈다.
물론 전시는 출판을 통해 알려진 작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 점에서는 본말의 전도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앙굴렘이든 어디든 출판(곧 만화책)을 기본으로 한 이 행사 중에 왜 상당히 공력을 들인 전시가 열리고 그곳에 사람이 몰리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그 답은 바로 작가에게 있다. 작가의 지명도가 전시회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낳고, 좋은 전시회는 작가를 스타로 만들고 책을 더 잘 팔리게 하는 것이다.
문화 수요자들의 안목은 훨씬 높아졌는데 정작 공급자측은 그걸 모르고 구태로 일관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좋은 전시기획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만화계가 고민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