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

수험생들이여, 동백나무를 보라

  • 정찬주 / 소설가

    입력2002-12-12 14: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수험생들이여, 동백나무를 보라
    작년 초가을의 일이다. 월출산 부근에 사는 젊은 농부에게서 동백나무 네 그루를 얻어와 한 그루는 산 아래 절골 마을에 사는 농부 황씨에게 주고, 나머지 세 그루는 나의 처소 앞뒤 마당에 심었다. 황씨는 공짜를 아주 싫어하는 이로, 내가 동백나무를 준 답례로 올 봄에 어린 해당화와 산수유를 한 그루씩, 그리고 후박나무 묘목은 두 그루나 주었다.

    나는 나무를 좋아해 주는 대로 가져와 마당가에 심었다. 그런데 따뜻한 황씨 집터에서 잘 자라던 나무들이 내가 사는 산중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추위에 약한 동백나무는 작년 겨울에도 심한 몸살을 앓았었는데 초겨울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잎들이 벌써 얼어서 불그죽죽하다. 나의 산중 처소가 남도라도 바람이 센 골짜기인 데다 오후가 되어야만 햇볕이 드는 응달에 있기 때문이다.

    추위 속에서도 굳건히 꽃 피워… 수능 때문에 좌절 안 될 일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내 처소와 아래 절은 불과 200여m 떨어진 거리인데도 온도 차이가 2~3℃나 났다. 내 처소에서는 얼음이 얼어도 절 연못은 물이 찰랑찰랑할 때가 많은 것이다. 기둥에 온도계를 달아놓고 아침마다 관찰해보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동백나무는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그런 동백나무를 엉뚱한 곳에 옮겨 심었으니 내 욕심이 지나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센 골짜기 기후를 전혀 참고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후박나무나 산수유, 해당화는 동백나무와 경우가 다르다. 찬바람이 불어 동백나무가 심하게 앓을 때도 녀석들은 기침이나 재채기 정도만 하고 만다. 늘 푸른 상록수인 동백나무는 가지와 나뭇잎 등 온몸으로 찬바람을 맞지만 후박나무 등은 잎을 떨궈버리는 활엽수라 찬바람을 맞는 면적이 그만큼 작아서이리라.



    그렇다고 동백나무의 추위를 면하게 해줄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없다. 이미 뿌리를 내린 동백나무를 방으로 들여놓을 수도 없거니와 식물원처럼 온실을 만들어줄 수도 없다. 동백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스스로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시련을 겪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가 대신해서 장애물을 통과해줄 수는 없다.

    어제는 절에 온 한 여학생이 내 산중 처소로 올라와 이야기를 하고 내려갔다. 그 바람에 동백나무 밑동을 짚으로 감싸주는 작업을 못하고 말았다. 그는 올해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서울에 사는 고3 수험생인데, 부모와 갈등이 생겨 이곳까지 내려왔다. 학생은 수능을 본 날 친구 몇이서 한강변으로 가 밤을 새웠다고 한다. 평소에 보던 모의고사 점수보다 훨씬 낮게 나온 점수 때문이었다. 강바람이 거센 둔치에서 자신을 책망하며 노숙을 했고, 새벽에는 차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이삼년째 수험생들을 울리고 있는 기이한 수능 현상이다. 평가위원장은 작년과 다르게 출제됐으니 안심하라고 하지만 결과는 늘 수험생들을 당혹하게 한다. 수능은 이제 수험생을 겁주고 울리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출제위원들은 자신들의 책임은 말하지 않고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난이도 타령만 한다. 그래서는 내년 상황도 불 보듯 뻔하다. 수험생을 집이 아닌 한강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나는 학생에게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수능은 한 구간일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회피할 수 없는 중요한 구간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최선이 버겁다면 차선을 선택하라고도 말했다. 최선은 하나지만 차선은 둘 이상인 법이니까. 최선이 아니면 어떤가. 나는 낙담하고 있는 학생에게 차선을 선택하는 지혜와 여유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차선의 길에서도 꿈을 이루어내는 것이 진짜 인생이라고.

    아침에 절에 내려갈 일이 있어 스님께 여쭤보니 학생은 서울로 돌아갔단다.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혼자서 절에 찾아와 기도하고 사색한 이틀간의 짧은 산사체험이지만 더 성숙해졌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눈이 오려는지 하늘이 묵은 짚단처럼 칙칙하다. 이제는 더욱 추워질 것 같다. 농막 주인 차씨에게서 얻어다 쌓아둔 짚단을 꺼내 푼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동백나무 밑동을 짚으로 감싸주기 위해서다. 꽃망울은 기특하게도 작년보다 많이 맺혀 있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겠다는 결연한 각오 같은 것이 느껴진다. 서울로 간 학생도 내 산중 처소의 동백나무처럼 인생의 한 고비를 이겨내고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