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어쩐지 서양 냄새가 조금 풍기는 것 같다. ‘비로소 세월에다 주머니를 매달았다’라고 쓰면 ‘꼰대’ 냄새가 좀 풍기는 것 같아서 결국 이렇게 쓰기로 했다. 나도 비로소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았다, 이렇게 써놓으니 한결 산뜻하다. 시간에 방울 매달기…. 삶이 싸움이라면 나의 삶 전반전을 관류해온 화두다.
청소년 시절, 나는 학교 밖에서 공부했다. 나에게도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중퇴) 시절, 대학 시절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짧다. 짧아서 마치 한 차례의 질풍노도에 휩쓸리면서 끝나버린 것 같다. 나는 학교 밖에서 공부하면서 학교 안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은근히 깔보고는 했다. 임마, 왜 세월을 믿어? 왜 시간을 믿어? 친구들 깔보기는 내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늘 자신만만하게 친구들을 깔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차례로 졸업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가까운 친구들이 박사학위를 받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허송세월은 후회만 남고 참된 세월은 희망을 준다
그때 내가 어설프게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아,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면 언젠가 그 방울은 금방울이 되는 것이구나! 나는, 언젠가는 금방울이 될, 여느 방울 하나 매달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구나. 내 손으로 방울을 매달지 않은 채 흘려보내는 세월, 나의 방울을 달지 않은 채 흐르는 세월, 그 세월을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조통수’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군대살이할 때 우리가 잘 쓰던 말이다. 군대살이를 경험한 남성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통수’는 ‘남성의 성기로 만든 퉁소(피리)’인 것 같다. 군대살이는 그런 퉁소를 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있으면 특별히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훈련병에서 이등병으로, 이등병에서 상등병으로, 상등병에서 병장으로 계급이 오른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군복을 벗는다.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군복을 벗으면서 시간에다 방울을 매다는 일, 세월에다 주머니를 매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방울을 매달지 않았다.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흘러가는 봄날은 처참한 것이다. 시간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만큼 잔인한 노래는 없다. 세월로부터 진급을 보장받지 못하는 인간들, 세월로부터 퇴직금도 연금도 약속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누구인가? 예술가들이다. ‘봄날은 간다’를 가장 잘 부르는 인간들은 아마도 예술가들일 것이다.
1991년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시간에 방울을 매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내가 공부하던 분야의,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의 추천장을 품고 있었다. 학부를 가볍게 땜질하고, 석박사 과정에 등록하고자 했다.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밖의 책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시간에다 방울을 매다는 대신, 봄이면 미국의 셋집 뜰에다 씨앗을 묻거나 나무를 심거나 했다. 가는 봄날이 덜 심란했다. 10여년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귀국한 직후에는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는 이녁 손으로 씨를 묻지 않은 봄날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나도 그랬다. 내 손으로 씨를 묻지 않은 봄날, 내 손으로 나무를 심지 않은 봄날이 참 힘들었다.
2002년 봄, 시골집 밭을 고르고 1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고마운 독림가(篤林家)가 있어서 큰돈은 들지 않았다. 그 나무들은 올해 뿌리를 내리느라고 푸르름을 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이면 틀림없이 숲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가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덜 심란하다.
아니다. 세월이 맹렬한 속도로 흐르기를 나는 은근히 기다린다. 내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숲이 되어갈 것이다. 내년 봄이면 나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꾸미는, 백목련·자목련 숲속에 몸을 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확인하러 오시라. 내가 시간에다 매단 이 방울이 금방울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비로소 나는 종교를 얻었다. 나무(木)아미타불.
청소년 시절, 나는 학교 밖에서 공부했다. 나에게도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중퇴) 시절, 대학 시절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짧다. 짧아서 마치 한 차례의 질풍노도에 휩쓸리면서 끝나버린 것 같다. 나는 학교 밖에서 공부하면서 학교 안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은근히 깔보고는 했다. 임마, 왜 세월을 믿어? 왜 시간을 믿어? 친구들 깔보기는 내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늘 자신만만하게 친구들을 깔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차례로 졸업하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가까운 친구들이 박사학위를 받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허송세월은 후회만 남고 참된 세월은 희망을 준다
그때 내가 어설프게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아,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면 언젠가 그 방울은 금방울이 되는 것이구나! 나는, 언젠가는 금방울이 될, 여느 방울 하나 매달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구나. 내 손으로 방울을 매달지 않은 채 흘려보내는 세월, 나의 방울을 달지 않은 채 흐르는 세월, 그 세월을 바라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다.
‘조통수’는 불어도 세월은 간다,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군대살이할 때 우리가 잘 쓰던 말이다. 군대살이를 경험한 남성 중에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조통수’는 ‘남성의 성기로 만든 퉁소(피리)’인 것 같다. 군대살이는 그런 퉁소를 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있으면 특별히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훈련병에서 이등병으로, 이등병에서 상등병으로, 상등병에서 병장으로 계급이 오른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군복을 벗는다.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군복을 벗으면서 시간에다 방울을 매다는 일, 세월에다 주머니를 매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방울을 매달지 않았다.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흘러가는 봄날은 처참한 것이다. 시간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만큼 잔인한 노래는 없다. 세월로부터 진급을 보장받지 못하는 인간들, 세월로부터 퇴직금도 연금도 약속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누구인가? 예술가들이다. ‘봄날은 간다’를 가장 잘 부르는 인간들은 아마도 예술가들일 것이다.
1991년 나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시간에 방울을 매다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는, 내가 공부하던 분야의,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의 추천장을 품고 있었다. 학부를 가볍게 땜질하고, 석박사 과정에 등록하고자 했다. 시간에다 방울을 매달고자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밖의 책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시간에다 방울을 매다는 대신, 봄이면 미국의 셋집 뜰에다 씨앗을 묻거나 나무를 심거나 했다. 가는 봄날이 덜 심란했다. 10여년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귀국한 직후에는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는 이녁 손으로 씨를 묻지 않은 봄날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나도 그랬다. 내 손으로 씨를 묻지 않은 봄날, 내 손으로 나무를 심지 않은 봄날이 참 힘들었다.
2002년 봄, 시골집 밭을 고르고 1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고마운 독림가(篤林家)가 있어서 큰돈은 들지 않았다. 그 나무들은 올해 뿌리를 내리느라고 푸르름을 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이면 틀림없이 숲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가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덜 심란하다.
아니다. 세월이 맹렬한 속도로 흐르기를 나는 은근히 기다린다. 내 나무들은 빠른 속도로 숲이 되어갈 것이다. 내년 봄이면 나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이 꾸미는, 백목련·자목련 숲속에 몸을 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확인하러 오시라. 내가 시간에다 매단 이 방울이 금방울이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비로소 나는 종교를 얻었다. 나무(木)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