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15 통일축제 때 장고춤으로 팬들을 몰고 다녔던 조명애씨(아래)와 아시아경기대회 응원단의 리성애씨. 두 사람의 얼굴이 비슷해 리씨는 한국 도착 당시 일부 언론에 조씨로 보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아무리 선발된 집단이라지만 북한 여자들이 이처럼 예뻐진 이유가 도대체 뭐냐”는 것. 그동안 수차례의 남북교류 행사를 통해 북한 미인들을 적지 않게 접해왔던 사람들조차 “예전에 봐오던 북한 여자들과는 분명히 차별된 아름다움이 있다”고 찬사를 연발한다. 지금까지 TV와 지면을 통해 알려진 북한의 미인들은 한결같이 1m60cm 정도의 키에 동그랗게 살이 오른 얼굴로, 남한의 미인과는 차이가 컸던 게 사실. 그러나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선보인 북한 여성 응원단의 자태는 이런 일반적인 인식을 깨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남한 남성들의 취향에 맞는 미인들을 따로 뽑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 북한 자체의 미인 기준에 큰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이에 대한 자유이주민(이하 탈북자) 대다수의 반응은 “북한의 미인 기준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 그동안 북한 여자를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라는 것. 1998년 10월 귀순한 탈북자 윤인호씨(27·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는 “이번에 내려온 여성응원단은 예술선전대(예술단)와 예술대학에서 선발된 사람들이라 수준급의 미인인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북한 최고의 미인들은 아니다”고 분석한다.
“南男들 전통적 미인상에 향수 느낀 듯”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탈북자 모델 윤인호씨(위)는 북한 미인의 기준이 ‘미인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씨는 “북한의 미인이 예전에도 동그란 얼굴에 통통한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잘라 말한다. 윤씨가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북한 당국의 예술단 선발기준. 응원단이 예술단과 예술대학에서 차출된 만큼 그 선발기준을 알면 북한 미인의 기준을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단 그가 말하는 여자 예술단의 선발기준은 키 1m65cm 이상에, 가슴은 적당히 크고, 얼굴은 달걀형에, 쌍꺼풀이 깊고, 이목구비가 뚜렷할 것 등이다. 윤씨는 그러나 “눈이 지나치게 크고 볼에 살이 거의 없으며 턱이 뾰쪽해 얼굴형이 역삼각형에 가까운 남한 미인과 북한의 미인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씨가 말하는 북한의 미인형은 북한 여성 응원단의 얼굴과 일치하는 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북한 미인의 전형은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오는 여인상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성형미인과 서구화된 미인상에 식상한 남한 남자들이 북한 여성 응원단에게서 전통적 미인상에 대한 향수를 느낀 것 같습니다.”
윤씨는 이번 북한 미인 신드롬을 “70년대 이후 서구화된 미녀상에 길들여진 남한 남성들의 미인관에 변화가 일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면 북한 내부에서도 미인에 대한 기준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탈북자도 있다. 윤씨보다 1개월 빠른 98년 9월 귀순한 북한 배우 출신 탤런트 김혜영씨는 “8·15 통일축제 당시 인기를 끌었던 평양예술단 조명애씨(21)와 이번에 내려온 북한 응원단은 갸름한 얼굴에 서구적 이미지를 가진 공통점이 있다”며 “과거의 전통적인 북한 미인상과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북한의 미인 기준에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8·15 남북통일대회의 일환으로 열린 통일축제 당시 장고춤을 추며 남한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인물. 김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북한 미녀 응원단의 인기는 이미 8·15 통일축제 때부터 예고된 셈이다. 그녀는 “서구적인 얼굴형을 가진 미인들이 북한에도 많이 있으나 98년까지는 분명 ‘통통하고 동양적인’ 이미지를 가진 미인들이 대중적으로 더 사랑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여러 편의 단편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친구들 사이에 ‘나타샤’라는 별명으로 불려질 정도였지만, 서구적인 마스크 때문에 북한에선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는 게 김씨의 솔직한 고백.
결국 김씨가 떠난 98년 9월 이후 북한 내부의 미인 선정 기준에 어떤 변화가 있었거나, 8·15 통일축제 때 조씨가 예상외로 인기를 끌자 북한 당국이 조씨의 얼굴을 기준으로 응원단을 선발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미녀응원단 중 특히 인기를 끌고 있는 리성애씨(21)는 부산 도착 당시 얼굴이 조씨와 너무나 흡사해 언론이 리씨를 조씨로 보도하는 해프닝을 빚을 정도였다.
하지만 김씨는 남한 남성들이 미녀응원단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로 남한 여성들에게선 볼 수 없는 청순함과 신선함을 꼽았다. 뒤로 묶어 올린 수수한 머리 스타일과 수줍은 미소, 활기찬 화법 등이 바로 그것.
“가난과 배고픔에 찌든 촌스러운 북한 여인상을 상상하던 남한 남자들에겐 하나의 충격이었겠죠. 남한 사람들이 250명이나 되는 북한 여자를 한꺼번에, 그것도 지척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제 또 있었습니까. 이런 충격에다 분단조국의 반쪽에서 내려온 여인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기쁨, 또 그녀들이 내뿜는 100% 무공해의 순수미, 이 모든 것이 합해져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탈북자 김형덕씨(29·전 국회의원 비서관)는 북한 미인 신드롬을 민족분단의 현실과 연계해 분석했다. 남북한의 ‘미인관’에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번에 보면 언제 또 볼 수 있겠냐”는 아쉬움이 응원단에 대한 인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김씨는 “비록 미인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많은 북한 여인을 2주일간이나 남한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과연 ‘남남북녀’의 ‘신화’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또 언제쯤 ‘남남’과 ‘북녀’가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우리에게 던져준 또 하나의 화두(話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