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내려앉은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후드득 떨어져 내릴 것 같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의 작품은 도판으로 보는 것보다도 실물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가까이서 본 물방울은 그저 몇 번의 붓터치로 그려진 물감 자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림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는 순간, 그 물감 자국은 갑자기 찬연한 빛을 발하는 투명한 물방울로 바뀐다.
8월29일부터 9월11일까지 박영덕 화랑에서 열리는 김창열의 개인전은 2004년 1월 파리 주 드 폼 미술관에서 열릴 김창열 회고전을 기념하는 초대전이기도 하다. 오르세이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했던 주 드 폼은 현재 파리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손꼽힌다. 김창열은 지난 97년의 이우환에 이어 이곳에서 전시를 여는 두 번째 한국 화가다. 주 드 폼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프랑스 화단에서 김창열이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2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열린 김창열의 전시는 역시 물방울 작품들로 채워졌다. 마포 위에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물방울을 그린 70년대의 화풍,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려 비석 위에 맺힌 물방울을 연상시키는 90년대의 ‘회귀(回歸)’ 시리즈, 그리고 캔버스 위에 두텁게 물감을 바른 후 그 위에 물방울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다. 나무로 만든 와인통 위에 직접 물방울을 그린 ‘보르도’라는 재미있는 소품도 눈에 띈다. 모두 지난해와 올해 새로 그린 신작들이다. 일부 작품은 전시 개막 전날에 완성해 급하게 화랑으로 실어오기도 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창작열은 바래지 않았다.
“물방울은 곧 없어질, 무(無)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물방울을 그리면서 삶의 많은 것들을 털어 없앱니다.” 김창열은 물방울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30년간에 걸친 물방울 작업에 대해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기 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할 때, 흰 수염이 성성한 노(老)화가는 마치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1929년생인 김창열은 20대 초반에 6·25 동란을 맞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전쟁의 상흔을 주제로 한 추상화가 주를 이룬다. 그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나서 화면에 흘러내리는 듯한 점액질 액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70년대 초, 작가는 여느 때처럼 캔버스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넉넉지 못한 사정 때문에 기존의 그림을 캔버스에서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문득,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의 영롱한 느낌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것이 ‘물방울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물방울 시리즈’는 김창열을 순식간에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76년 도쿄 전시 후 서울의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전시 개막 전에 이미 전시작들이 다 팔려나갈 정도였다. 이후 천자문 바탕 위에 올려진 물방울, 또는 설치 작업으로 만든 유리 물방울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물방울 기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기의 물방울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졌다면, 후기로 갈수록 붓터치가 거칠어진 정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물방울을 그리는 테크닉 자체는 대학교 2, 3학년이면 할 수 있는 기교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0년에 걸친 물방울 작업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잔뜩 바른 후, 그 위에 작은 물방울들을 가득히 그린 대작들이다. 햇빛을 받아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기존의 물방울들에 비해 이 작품들에는 빛의 흔적이 없다. 멀리서 보면 물방울이 보이지 않아 단색의 화폭처럼 보인다. “사실 이 같은 작품들을 지난 80년대부터 조금씩 그려왔습니다. 어느 정도 작품이 모이면 발표하려고 하다보니 발표가 늦어진 것이지요.” 기자가 ‘마치 빗방울이 흩뿌려진 창문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작가 자신의 말처럼 무(無)로 돌아갈 물방울, 곧 스러질 물방울을 영원 속에 남기는 작업을 30년간이나 해왔다. 그동안 다른 작품도 그려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전시 개막 직전, 손님들을 맞느라 바쁜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물방울 외에 다른 것들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다른 걸 그릴 여력이 없는걸요. 피카소는 새로운 아내를 맞을 때마다 그림 경향을 바꾸었는데, 나는 평생 한 여자와만 살았으니 그림을 바꿀 기회도 없었고요.”
8월29일부터 9월11일까지 박영덕 화랑에서 열리는 김창열의 개인전은 2004년 1월 파리 주 드 폼 미술관에서 열릴 김창열 회고전을 기념하는 초대전이기도 하다. 오르세이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까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했던 주 드 폼은 현재 파리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손꼽힌다. 김창열은 지난 97년의 이우환에 이어 이곳에서 전시를 여는 두 번째 한국 화가다. 주 드 폼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프랑스 화단에서 김창열이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2년 만에 서울에서 다시 열린 김창열의 전시는 역시 물방울 작품들로 채워졌다. 마포 위에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물방울을 그린 70년대의 화풍, 천자문 위에 물방울을 그려 비석 위에 맺힌 물방울을 연상시키는 90년대의 ‘회귀(回歸)’ 시리즈, 그리고 캔버스 위에 두텁게 물감을 바른 후 그 위에 물방울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다. 나무로 만든 와인통 위에 직접 물방울을 그린 ‘보르도’라는 재미있는 소품도 눈에 띈다. 모두 지난해와 올해 새로 그린 신작들이다. 일부 작품은 전시 개막 전날에 완성해 급하게 화랑으로 실어오기도 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가의 창작열은 바래지 않았다.
“물방울은 곧 없어질, 무(無)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물방울을 그리면서 삶의 많은 것들을 털어 없앱니다.” 김창열은 물방울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30년간에 걸친 물방울 작업에 대해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기 위한 행위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돌릴 때 우리들은 평안과 평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을 할 때, 흰 수염이 성성한 노(老)화가는 마치 인생을 달관한 철학자처럼 보였다.
1929년생인 김창열은 20대 초반에 6·25 동란을 맞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전쟁의 상흔을 주제로 한 추상화가 주를 이룬다. 그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나서 화면에 흘러내리는 듯한 점액질 액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70년대 초, 작가는 여느 때처럼 캔버스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넉넉지 못한 사정 때문에 기존의 그림을 캔버스에서 털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문득,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의 영롱한 느낌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것이 ‘물방울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물방울 시리즈’는 김창열을 순식간에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76년 도쿄 전시 후 서울의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전시 개막 전에 이미 전시작들이 다 팔려나갈 정도였다. 이후 천자문 바탕 위에 올려진 물방울, 또는 설치 작업으로 만든 유리 물방울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물방울 기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기의 물방울이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졌다면, 후기로 갈수록 붓터치가 거칠어진 정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물방울을 그리는 테크닉 자체는 대학교 2, 3학년이면 할 수 있는 기교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30년에 걸친 물방울 작업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잔뜩 바른 후, 그 위에 작은 물방울들을 가득히 그린 대작들이다. 햇빛을 받아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기존의 물방울들에 비해 이 작품들에는 빛의 흔적이 없다. 멀리서 보면 물방울이 보이지 않아 단색의 화폭처럼 보인다. “사실 이 같은 작품들을 지난 80년대부터 조금씩 그려왔습니다. 어느 정도 작품이 모이면 발표하려고 하다보니 발표가 늦어진 것이지요.” 기자가 ‘마치 빗방울이 흩뿌려진 창문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하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작가 자신의 말처럼 무(無)로 돌아갈 물방울, 곧 스러질 물방울을 영원 속에 남기는 작업을 30년간이나 해왔다. 그동안 다른 작품도 그려보고 싶지는 않았을까. 전시 개막 직전, 손님들을 맞느라 바쁜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물방울 외에 다른 것들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다른 걸 그릴 여력이 없는걸요. 피카소는 새로운 아내를 맞을 때마다 그림 경향을 바꾸었는데, 나는 평생 한 여자와만 살았으니 그림을 바꿀 기회도 없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