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7일과 18일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역사가 새롭게 씌어진다.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7년 만에 북·일이 처음 맞게 된 역사적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또한 고이즈미 수상의 평양 방문 다음날에는 한국전쟁으로 끊겼던 남북한 철로연결 사업이 재개된다.
이 ‘세기적 사건들’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구도는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21세기 동북아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상황은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기회, 외교적 모험과 군사적 실험, 그리고 이에 따른 안보적 보험이 동시에 상존하는 거대한 ‘국익의 체스판’이 되었다.
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이런 파격적 사건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수상 간의 전격적인 회동을 유인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차적 원인은 부시 행정부의 매파식 대북 강경정책에 있고, 이차적 원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고(新思考)에 있다.
이라크 다음엔 북한 차례냐? … 불안 차단 예방 외교
매파식 대북 강경정책은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새롭게 수립한 세계 패권 전략이자 지구상에서 테러를 영구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은 이 전략에 따라 탈레반 정권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몰아냈고, 이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정책이야말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움직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지금 이라크와 미국에서는 ‘왜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냐?’ ‘북한은 어떠냐?’ ‘이라크 다음엔 북한 차례냐?’ 하는 식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김위원장의 외교적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그만큼 김위원장은 자신과 북한이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이후에 자신에게 덮칠지도 모를 불안한 상황을 미리 차단하는 ‘예방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김위원장으로 하여금 조일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게 만든 첫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전략적 가치다. 즉 김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위협을 줄이고 부시 공화당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 카드’가 최적이며, 특히 고이즈미의 보수당 정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카드로 한국과 중국은 적임이 아니란 김위원장의 판단이 전제된 것이다. 남한의 경우는 대북정책을 놓고 미국과 상당한 갈등 국면에 놓이게 되었고, 중국의 경우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협력적 동반자’가 아닌 ‘경쟁적 동반자’ 혹은 ‘잠재적 적’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가 동북아에서 중국 중시 정책을 펼치고 한반도를 상대로 포용정책을 펴면서 경제를 우선시했던 점을 고려하여 대미관계 개선용으로 중국을 최적의 카드로 잘 활용해왔다. 그 결과 북미 간의 관계를 수교 일보 직전까지 끌고 갔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동북아에서는 중국보다는 과거 동맹국이었던 일본을 중시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봉쇄적 포용정책을 펴며, 경제보다는 강력한 군사적 ‘힘의 외교’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이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 카드로서 새롭게 일본을 선택한 이유이자 조일 정상회담을 서두르게 만든 두 번째 요인이다.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 당시 중국 전문가들은 여러 명 있었으나 일본 전문가는 거의 전무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에는 중국 전문가는 거의 없고 일본 전문가가 여러 명 포진되어 있다. 최근 일본 방문을 마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그렇고, 한국과 일본 사정에 밝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도 그렇다. 공화당의 브레인 중 덕 펄이나 국방부의 마이클 그린 등도 모두 일본 전문가들이다. 특히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미일동맹 없이 아시아의 안전보장은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에서 클린턴 행정부 때의 중국라인을 이제 일본라인으로 대체하는 작업에 전략적 비중을 두고 있다. 실제 지난달 열린 조일 국장급회담에서 북한은 일본측 대표에게 미국과의 대화를 주선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김위원장이 조일 정상회담을 결심하게 된 세 번째 배경은 일본에 대한 경제적 가치다.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4대 요소가 토지·노동·자본·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해 자신들이 토지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술과 자본은 남한과 일본에서 끌어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북한이 실리적 협상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는 어젠더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따른 배상문제이고, 둘째는 일본과 주일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100여 개 노동미사일 문제의 해결이다. 세 번째는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을 통한 북한의 철도 현대화 사업에의 일본 기술과 자본의 유입이다. 이중에서도 북한이 보다 심혈을 기울일 부분은 미사일 문제이다. 이 문제를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해결할 경우 북미협상에서도 참고할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정세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김위원장은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이즈미 수상에게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가를 잘 알고 있다. 고이즈미 수상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이즈미 ‘정치적 도박’ 성공까지는 난제 수두룩
고이즈미 수상이 방북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지지율 40%를 넘지 못하는 빈약한 정치적 기반과 올 가을 수상 경질설이 국내정치로부터 새로운 모멘텀을 찾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고이즈미 수상의 정치적 계산보다는 일본 외무성 전문 외교관들의 생각과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다. 이들은 그동안 일본이 동북아와 한반도 문제에서 상당히 소외됐다고 느껴왔고, 일본의 영향력 하락을 적절한 시점에 반전시킬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5, 26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이 6자회담을 주장한 것이나, 고이즈미 수상이 김위원장으로부터 회담제의를 받고 나서 이들과 오랜 시간 동안 상의한 끝에 방북 결정을 내린 것 등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셋째로, 통일된 한반도가 친중국화될 경우 일본은 동북아에서 고립을 면키 어렵다는 위기의식과 북한의 넓어진 행동반경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북중 간의 근린외교로 일본은 북한을 상당한 위협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를 은근히 즐겨온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 변수가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을 동북아에서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만든 요인이 없지 않다고 보고, 이 기회에 북한과 국교정상화의 길을 열어 중국의 위상을 높여줄 북한의 일탈행위를 막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넷째는, 부시 행정부의 출발은 북한과 남한 그리고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한·중·일·러 간의 철로사업이 확장되고 있고 북한이 동북아에서 일본과만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립되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북·일회담에는 아직 많은 장벽이 있다. 양국은 모두 정상국가가 아닌 상태에서 각기 나름대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특징이 있다. 김위원장은 외교적 쿠데타를, 고이즈미 수상은 정치적 도박이란 리스크를 안고 있다. 고이즈미 수상은 북한의 군부와 남한의 보수세력들에 대해서 김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김위원장 역시 미국과 자민당 주류 세력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고이즈미 수상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북한은 원바이원 방식의 협상을 바랄 것이지만 일본은 패키지 딜 방식을 원할 것이다. 일본이 일괄타결 방식을 주장한 배경에는, 현안과 지원을 분리해 다룰 경우 북한은 원조물자만 받고 현안 해결에는 응하지 않거나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양이 노린 고이즈미 카드가 대미관계 개선용으로 어떤 전략적 효과를 가질지, 또한 도쿄가 결정한 김정일 카드가 어떤 이벤트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당장 9월12일에 뉴욕에서 개최될 미일 정상회담에선 북한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미국이 고이즈미 카드로 북한을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고이즈미와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인지 워싱턴의 입장이 궁금해진다.
이 ‘세기적 사건들’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구도는 더욱 복잡하게 되었다. 21세기 동북아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상황은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기회, 외교적 모험과 군사적 실험, 그리고 이에 따른 안보적 보험이 동시에 상존하는 거대한 ‘국익의 체스판’이 되었다.
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이런 파격적 사건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김정일 위원장과 고이즈미 수상 간의 전격적인 회동을 유인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차적 원인은 부시 행정부의 매파식 대북 강경정책에 있고, 이차적 원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고(新思考)에 있다.
이라크 다음엔 북한 차례냐? … 불안 차단 예방 외교
매파식 대북 강경정책은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새롭게 수립한 세계 패권 전략이자 지구상에서 테러를 영구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은 이 전략에 따라 탈레반 정권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몰아냈고, 이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정책이야말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움직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다.
지금 이라크와 미국에서는 ‘왜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냐?’ ‘북한은 어떠냐?’ ‘이라크 다음엔 북한 차례냐?’ 하는 식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김위원장의 외교적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그만큼 김위원장은 자신과 북한이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이후에 자신에게 덮칠지도 모를 불안한 상황을 미리 차단하는 ‘예방외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김위원장으로 하여금 조일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게 만든 첫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전략적 가치다. 즉 김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위협을 줄이고 부시 공화당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선 ‘일본 카드’가 최적이며, 특히 고이즈미의 보수당 정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는 대미관계 개선을 위한 카드로 한국과 중국은 적임이 아니란 김위원장의 판단이 전제된 것이다. 남한의 경우는 대북정책을 놓고 미국과 상당한 갈등 국면에 놓이게 되었고, 중국의 경우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협력적 동반자’가 아닌 ‘경쟁적 동반자’ 혹은 ‘잠재적 적’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가 동북아에서 중국 중시 정책을 펼치고 한반도를 상대로 포용정책을 펴면서 경제를 우선시했던 점을 고려하여 대미관계 개선용으로 중국을 최적의 카드로 잘 활용해왔다. 그 결과 북미 간의 관계를 수교 일보 직전까지 끌고 갔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동북아에서는 중국보다는 과거 동맹국이었던 일본을 중시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봉쇄적 포용정책을 펴며, 경제보다는 강력한 군사적 ‘힘의 외교’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이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 카드로서 새롭게 일본을 선택한 이유이자 조일 정상회담을 서두르게 만든 두 번째 요인이다.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 당시 중국 전문가들은 여러 명 있었으나 일본 전문가는 거의 전무했다. 반면 부시 행정부에는 중국 전문가는 거의 없고 일본 전문가가 여러 명 포진되어 있다. 최근 일본 방문을 마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그렇고, 한국과 일본 사정에 밝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도 그렇다. 공화당의 브레인 중 덕 펄이나 국방부의 마이클 그린 등도 모두 일본 전문가들이다. 특히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미일동맹 없이 아시아의 안전보장은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에서 클린턴 행정부 때의 중국라인을 이제 일본라인으로 대체하는 작업에 전략적 비중을 두고 있다. 실제 지난달 열린 조일 국장급회담에서 북한은 일본측 대표에게 미국과의 대화를 주선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김위원장이 조일 정상회담을 결심하게 된 세 번째 배경은 일본에 대한 경제적 가치다. 북한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4대 요소가 토지·노동·자본·기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해 자신들이 토지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기술과 자본은 남한과 일본에서 끌어오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북한이 실리적 협상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는 어젠더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따른 배상문제이고, 둘째는 일본과 주일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100여 개 노동미사일 문제의 해결이다. 세 번째는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을 통한 북한의 철도 현대화 사업에의 일본 기술과 자본의 유입이다. 이중에서도 북한이 보다 심혈을 기울일 부분은 미사일 문제이다. 이 문제를 일정한 경제적 보상을 받고 해결할 경우 북미협상에서도 참고할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정세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김위원장은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고이즈미 수상에게 얼마나 절박한 과제인가를 잘 알고 있다. 고이즈미 수상이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이즈미 ‘정치적 도박’ 성공까지는 난제 수두룩
고이즈미 수상이 방북을 결정하게 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지지율 40%를 넘지 못하는 빈약한 정치적 기반과 올 가을 수상 경질설이 국내정치로부터 새로운 모멘텀을 찾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는, 고이즈미 수상의 정치적 계산보다는 일본 외무성 전문 외교관들의 생각과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분석이다. 이들은 그동안 일본이 동북아와 한반도 문제에서 상당히 소외됐다고 느껴왔고, 일본의 영향력 하락을 적절한 시점에 반전시킬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25, 26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이 6자회담을 주장한 것이나, 고이즈미 수상이 김위원장으로부터 회담제의를 받고 나서 이들과 오랜 시간 동안 상의한 끝에 방북 결정을 내린 것 등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셋째로, 통일된 한반도가 친중국화될 경우 일본은 동북아에서 고립을 면키 어렵다는 위기의식과 북한의 넓어진 행동반경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북중 간의 근린외교로 일본은 북한을 상당한 위협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이를 은근히 즐겨온 측면이 없지 않다. 북한 변수가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을 동북아에서 중심국가로 부상하게 만든 요인이 없지 않다고 보고, 이 기회에 북한과 국교정상화의 길을 열어 중국의 위상을 높여줄 북한의 일탈행위를 막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넷째는, 부시 행정부의 출발은 북한과 남한 그리고 동북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한·중·일·러 간의 철로사업이 확장되고 있고 북한이 동북아에서 일본과만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립되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북·일회담에는 아직 많은 장벽이 있다. 양국은 모두 정상국가가 아닌 상태에서 각기 나름대로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특징이 있다. 김위원장은 외교적 쿠데타를, 고이즈미 수상은 정치적 도박이란 리스크를 안고 있다. 고이즈미 수상은 북한의 군부와 남한의 보수세력들에 대해서 김위원장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김위원장 역시 미국과 자민당 주류 세력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고이즈미 수상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북한은 원바이원 방식의 협상을 바랄 것이지만 일본은 패키지 딜 방식을 원할 것이다. 일본이 일괄타결 방식을 주장한 배경에는, 현안과 지원을 분리해 다룰 경우 북한은 원조물자만 받고 현안 해결에는 응하지 않거나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평양이 노린 고이즈미 카드가 대미관계 개선용으로 어떤 전략적 효과를 가질지, 또한 도쿄가 결정한 김정일 카드가 어떤 이벤트를 낳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당장 9월12일에 뉴욕에서 개최될 미일 정상회담에선 북한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미국이 고이즈미 카드로 북한을 끌어낼 것인지 아니면 고이즈미와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인지 워싱턴의 입장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