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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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느냐” … 벼랑끝 ‘대선 정국’

與 '병풍' 선공에 野 '검풍' 역공 … 여야 화력 총동원 사활 건 '風의 전쟁'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0-05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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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느냐 사느냐” … 벼랑끝 ‘대선 정국’
    ‘이회창 낙마(落馬)론’이 본격적으로 거론된 것은 8·8 재보궐선거 직후였다. 선거 압승에도 불구하고 이후보 아들 정연씨 병적기록부의 수많은 의혹, 자고 나면 터져나오는 새로운 사안들이 ‘97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민주당의 ‘병풍’(兵風) 공세가 하늘을 찌르던 지난 8월 중순, 한나라당 당직자 K씨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원들의 반응이 잡힌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최악의 상황이란 검찰수사 결과 병역비리가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입증됐을 경우를 말한다.

    같은 흐름은 여당에서도 감지됐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은 그런 상황을 기정사실로 봤다. 8월21일 그의 발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배심원 판결은 이미 끝났다. 이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에게 소환장만 발부돼도 게임은 끝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 벼랑끝 ‘대선 정국’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은밀히 나돌았고 전직 총리 출신 L씨, 정몽준 의원 등의 이름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런 사정을 읽은 정몽준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농담을 섞어 “한나라당에서는 왜 (영입) 제의가 없는지…”라며 낙마론을 부추겼다.

    이후보 진영이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다. 이후보에게 보고서를 전달하는 당의 한 조직은 ‘낙마론에 대한 대응 논리’란 문건을 만들었다. “병역비리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는 이후보의 정면대응은 그 과정에서 나온 승부수다. 그러나 한나라당 주변을 유영하던 낙마론은 최근 자취를 감추었다.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 병풍의 핵심을 흐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K의원은 “이의원 발언은 천군만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해찬 발언 후 ‘이회창 낙마론’ 자취 감춰

    이 발언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병풍과 관련, 확실한 입장을 정리했다. 병풍 수사에 대해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든 ‘정치공작이자 믿지 못할 수사’라는 공세적 논리로 돌파한다는 것이다. 이의원 발언이 ‘법률적 진실’을 가리고 쟁점을 모호하게 만드는 정치 공세의 명분을 안겨준 셈이다. 이로써 병풍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한나라당은 병풍 타개책으로 ‘주적 개념’을 도입했다.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과 김정길 법무장관, 김대업씨 등을 병풍의 주역으로 보고 이들의 ‘제거’를 투쟁 목표로 삼은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검풍’(檢風)으로 연결된다.

    한나라당발 검풍의 1차 타깃은 박영관 부장이다. 한나라당 한 고위인사는 8월23일 “서울지검 특수1부가 정권 재창출의 교두보”라고 말했다. 박부장을 겨냥한 말이다. 한나라당이 만든 박영관 자료파일(상자기사 참조)을 보면 흐름은 보다 분명해진다.

    이해찬 의원의 발언이 나온 8월21일 낮 한나라당은 박부장의 교체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박부장은 유임됐다. 한나라당은 그 배경을 주시한다. 그의 유임에는 권력 차원의 지원 세력이 있다고 믿는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연출(김대중 대통령, 박지원 비서실장)→민주당 배후조종(천용택 의원)→검찰 주연(김정길 법무장관, 박영관 부장)의 시나리오로 몰고 간다.

    박부장 거세에 실패한 한나라당의 다음 타깃은 김정길 법무장관이다. 한나라당은 그를 청와대와 검찰의 연결고리로 본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해임안을 제출할 경우 국회는 대란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부담에도 한나라당은 ‘진검’을 손질하고 있다. 김장관을 낙마시킴으로써 ‘병풍’의 위력을 일시에 허물겠다는 계산이다.

    박부장과 김장관을 타깃으로 삼은 한나라당의 촘촘한 포위망에 병풍의 주역 김대업씨도 걸려 있다. 당직자 K씨는 모종의 조치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동안 동향인 당내 ㅂ의원이 밀착, 과거와 현재를 이 잡듯이 뒤졌다. 김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아파트 및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 몇 가지 의혹을 확인했다.

    일단 김씨가 재력가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그가 20억원대가 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투명한 재산 조성 과정을 조사하면 병풍의 기획 과정을 밝힐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2000년 2월 정·관계 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병역비리 수사가 시작될 때 군·검 합동수사팀에 참여(4차 병역비리 수사)했던 김씨의 행적 가운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 비리와 관련해 약점이 있는 인사들과 김씨가 모종의 타협을 한 흔적을 포착했다는 것. 한나라당은 현재 증언자를 접촉중이다.



    “죽느냐 사느냐” … 벼랑끝 ‘대선 정국’
    김영일 사무총장은 25일 병무비리 수사와 관련,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현 내각의 한 장관급 인사가 청와대 수석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0년 1월 초 병무비리 재수사를 지시했다”며 청와대 개입 의혹을 제기한 것. 이 정보가 한나라당에 처음 접수된 것은 지난 8월 초. 한나라당은 그동안 관련 문건과 제보자의 증언 녹취록도 확보했다. 당초 검찰 수사를 봐가며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만큼 조기에 공개했다. 화력을 한꺼번에 쏟아 기선을 잡겠다는 의지다.

    한나라당이 지목한 병풍 3인방의 제거와 동시에 여권을 몰아붙일 대형 이슈에 대한 확인 작업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공적자금 국정조사 계획서를 제출하려는 한나라당의 강공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공적자금 문제는 미국 ‘마이애미발 허리케인’을 동반할 예정이다. 공적자금 일부가 여러 과정을 거쳐 마이애미 등 미국 일부 지역으로 건너갔고 현 정부 실세 관련 인사들이 현지에 부동산을 구입했다는 것이 의혹의 줄거리다. 한나라당 H, L, 또 다른 L의원 등 ‘태스크포스팀’이 2~3개월 전부터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H의원은 “일단 기대해 보라”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와 관련한 국정조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병풍으로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의 ‘허풍’이 묻어 있지만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인식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마주선 민주당의 입장도 한나라당 못지않게 단호하다. 신당 문제로 야기된 내홍과 바닥을 헤매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에 변화를 몰고 온 병풍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병풍은 이미 사실 확인 단계를 넘어 선 것”으로 인식한다. 한나라당이 어떤 초강경 수를 들고 나오든 민주당의 진로는 결정됐다는 주장이다.

    결국 국회에서의 대회전(大會戰)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회격돌의 출발점에 선 사람은 장대환 총리서리다. 그의 인준 여부에 따라 국회 기상도는 달라진다. ‘과반의 힘’이 ‘거야(巨野)의 오만’으로 비칠 수 있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장 총리서리의 인준을 막아, 그를 제물 삼아 병풍을 막고 검풍을 확산시키려는 한나라당의 의지는 굳건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 문제를 놓고 물밑협상을 벌였지만 현실적 수단을 찾기에는 이견이 너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죽느냐, 사느냐’ 사활을 건 여야의 진검 승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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