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축구의 마법’에 빠졌다. 축구가 도대체 어떤 마력을 갖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홍의군 대장 김태룡군(16·화수중 3년).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아저씨까지 고양시에 거주하는 ‘붉은 악마’ 회원들은 모두 김군의 지시를 따른다. 김군은 10여명의 멤버가 힘들게 꾸려가던 일산 ‘붉은 악마’를 ‘홍의군’으로 개명, 회원 수 400명의 조직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던 김군이 축구에 빠진 것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부터.
“이임생 선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태영 선수는 온몸을 던져 상대팀의 슛을 막아냈고요. 벨기에전이 끝나고 터진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습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김군은 프로축구단 부천과 수원의 서포터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마니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부천과 수원의 K리그 경기와 국가대표 평가전이 벌어지는 날은 경기장을 찾거나 TV 방송을 시청하면서 반드시 응원을 했다. 케이블TV에서 방송하는 유럽 클럽팀의 경기를 시청하느라 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처럼 축구에 빠져 생활하는 김군을 부모가 그냥 둘 리 없었다.
“한번은 공부 안 하고 축구만 본다고 부모님이 유니폼을 찢어버렸습니다. 방에서 공부하는 척하면서 라디오로 중계를 듣다가 들켜 꾸지람 들은 적도 있고요.”
축구 마니아들은 경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과 기대감은 마치 첫날밤 같고, 골이 들어갔을 때는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군은 사람들이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에 열광하는 까닭을 집단 광기, 집단 최면에 빗대 설명했다.
“경기 전날엔 잠을 못 잡니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긴장상태가 계속돼요. 그런 상태에서 골이 터지면 모두 미치는 거죠. 막혔던 것이 확 터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집단일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100배 이상 커집니다. 전염성이 있어 마치 모두가 체면에 걸린 것처럼 전파됩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뽀뽀하고, 얼싸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거지요.”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국제 심판들의 통역과 각종 허드렛일을 돕고 있는 이진호씨(36). 대한축구협회 소속 1급 국내 심판인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월드컵조직위의 심판연락관을 맡아 월드컵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이씨의 본래 직업은 비행기 승무원. 아시아나 항공 소속 11년차 승무원인 그는 월드컵 개막 이전 1개월간 무급 휴직계를 내고 심판연락관을 자원했다.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하죠. 하지만 미치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이씨가 이번 월드컵에 참가함으로써 잃게 되는 손해는 500만원. 하필이면 월드컵 기간인 6월이 ‘보너스 달’이라 결국 이씨는 500만원을 자신이 부담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 돼버렸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가 넘기 일쑤. 같은 항공사 5년차 승무원인 부인 우지영씨(29)가 국제선을 많이 타는 관계로 요즘 통 얼굴 보기가 힘들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이씨가 지상 최고의 스포츠라는 축구 심판이 된 것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그의 축구 사랑 때문이었다. 동네 조기축구회 ‘열성 당원’이던 그는 지난 96년 국내 심판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전화를 걸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비행기 승무원이라고 대답했더니 믿어지지 않는 듯 웃기만 하더군요.”
다행스럽게도 축구협회 직원이자 항공사 승무원 출신인 이상호씨(52)의 도움으로 체력단련과 이론 공부를 한 지 3년 만인 지난 99년 국내 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비행기를 일주일 정도 안 타면 허전해요. 축구 주심도 마찬가지죠. 일종의 마약 같다고 할까요.” 월드컵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씨는 지금 축구에 미친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다음 월드컵, 아니 가까운 장래에 국제 심판으로 월드컵 경기장의 한복판에 서 있을 자신을 그리며 국제 심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김군과 이씨가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축구에 미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사람도 있다. 축구신동 김천둥군(12·광주 남초등교 2년)이 바로 그런 경우.
6월4일 중국-코스타리카전이 열린 광주월드컵경기장. 김군이 중국 응원단 ‘치우미’ 앞에서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묘기)을 선보이자 관중석은 이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김군의 묘기를 보면 축구에 푹 빠지게 된다. 이런 마력을 지닌 탓에 김군은 1998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최연소 홍보요원으로 뽑혀 세계 각국을 돌며 ‘축구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군은 생후 15개월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조기축구회에 데려갔는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공을 몰고 다니는 모습에 회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군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특히 중국에서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발재간에 넋을 잃은 중국대표팀의 밀루티노비치 감독과는 ‘친구’가 됐을 정도. 그가 중국을 방문하면 밀루티노비치 감독이 반드시 찾아와 리프팅으로 대화를 한다.
“블래터 아저씨, 요한 클루이프 아저씨하고도 친해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축구공을 몇 번 주고받다 보면 친구가 되는 거죠.”
김군은 항상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축구를 한시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김군이 갖고 다니는 축구공은 축구황제 펠레를 비롯해 베켄바우어, 플라티니 등 세계 축구계의 슈퍼스타들이 직접 사인해 준 볼이다. 사인볼을 들고 있는 김군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말을 건네면 김군은 축구묘기를 보여주고, 묘기를 본 사람은 축구팬이 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김군은 명문클럽의 선수가 돼 어린이들에게 사인해 주는 꿈을 꾼다고 했다.
“히바우두, 호나우두, 지단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단이 쓰는 기술을 저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김군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의 아약스암스테르담 유소년팀으로 축구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네덜란드인 친구’ 요한 크루이프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사람들을 축구에 빠지게 하는 천둥이의 마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홍의군 대장 김태룡군(16·화수중 3년).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아저씨까지 고양시에 거주하는 ‘붉은 악마’ 회원들은 모두 김군의 지시를 따른다. 김군은 10여명의 멤버가 힘들게 꾸려가던 일산 ‘붉은 악마’를 ‘홍의군’으로 개명, 회원 수 400명의 조직으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던 김군이 축구에 빠진 것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부터.
“이임생 선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머리에 붕대를 감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태영 선수는 온몸을 던져 상대팀의 슛을 막아냈고요. 벨기에전이 끝나고 터진 눈물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습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김군은 프로축구단 부천과 수원의 서포터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마니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부천과 수원의 K리그 경기와 국가대표 평가전이 벌어지는 날은 경기장을 찾거나 TV 방송을 시청하면서 반드시 응원을 했다. 케이블TV에서 방송하는 유럽 클럽팀의 경기를 시청하느라 밤을 새운 날도 많았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처럼 축구에 빠져 생활하는 김군을 부모가 그냥 둘 리 없었다.
“한번은 공부 안 하고 축구만 본다고 부모님이 유니폼을 찢어버렸습니다. 방에서 공부하는 척하면서 라디오로 중계를 듣다가 들켜 꾸지람 들은 적도 있고요.”
축구 마니아들은 경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과 기대감은 마치 첫날밤 같고, 골이 들어갔을 때는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군은 사람들이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에 열광하는 까닭을 집단 광기, 집단 최면에 빗대 설명했다.
“경기 전날엔 잠을 못 잡니다.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긴장상태가 계속돼요. 그런 상태에서 골이 터지면 모두 미치는 거죠. 막혔던 것이 확 터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집단일 경우에는 그런 느낌이 100배 이상 커집니다. 전염성이 있어 마치 모두가 체면에 걸린 것처럼 전파됩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사람과 뽀뽀하고, 얼싸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거지요.”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국제 심판들의 통역과 각종 허드렛일을 돕고 있는 이진호씨(36). 대한축구협회 소속 1급 국내 심판인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월드컵조직위의 심판연락관을 맡아 월드컵 경기장을 누비고 있다. 이씨의 본래 직업은 비행기 승무원. 아시아나 항공 소속 11년차 승무원인 그는 월드컵 개막 이전 1개월간 무급 휴직계를 내고 심판연락관을 자원했다.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하죠. 하지만 미치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이씨가 이번 월드컵에 참가함으로써 잃게 되는 손해는 500만원. 하필이면 월드컵 기간인 6월이 ‘보너스 달’이라 결국 이씨는 500만원을 자신이 부담하고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 돼버렸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가 넘기 일쑤. 같은 항공사 5년차 승무원인 부인 우지영씨(29)가 국제선을 많이 타는 관계로 요즘 통 얼굴 보기가 힘들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시간보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이씨가 지상 최고의 스포츠라는 축구 심판이 된 것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그의 축구 사랑 때문이었다. 동네 조기축구회 ‘열성 당원’이던 그는 지난 96년 국내 심판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한축구협회에 전화를 걸던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기에 비행기 승무원이라고 대답했더니 믿어지지 않는 듯 웃기만 하더군요.”
다행스럽게도 축구협회 직원이자 항공사 승무원 출신인 이상호씨(52)의 도움으로 체력단련과 이론 공부를 한 지 3년 만인 지난 99년 국내 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비행기를 일주일 정도 안 타면 허전해요. 축구 주심도 마찬가지죠. 일종의 마약 같다고 할까요.” 월드컵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씨는 지금 축구에 미친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다음 월드컵, 아니 가까운 장래에 국제 심판으로 월드컵 경기장의 한복판에 서 있을 자신을 그리며 국제 심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김군과 이씨가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들을 축구에 미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사람도 있다. 축구신동 김천둥군(12·광주 남초등교 2년)이 바로 그런 경우.
6월4일 중국-코스타리카전이 열린 광주월드컵경기장. 김군이 중국 응원단 ‘치우미’ 앞에서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묘기)을 선보이자 관중석은 이내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김군의 묘기를 보면 축구에 푹 빠지게 된다. 이런 마력을 지닌 탓에 김군은 1998년 국제축구연맹(FIFA)의 최연소 홍보요원으로 뽑혀 세계 각국을 돌며 ‘축구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군은 생후 15개월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조기축구회에 데려갔는데,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공을 몰고 다니는 모습에 회원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군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특히 중국에서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발재간에 넋을 잃은 중국대표팀의 밀루티노비치 감독과는 ‘친구’가 됐을 정도. 그가 중국을 방문하면 밀루티노비치 감독이 반드시 찾아와 리프팅으로 대화를 한다.
“블래터 아저씨, 요한 클루이프 아저씨하고도 친해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축구공을 몇 번 주고받다 보면 친구가 되는 거죠.”
김군은 항상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축구를 한시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김군이 갖고 다니는 축구공은 축구황제 펠레를 비롯해 베켄바우어, 플라티니 등 세계 축구계의 슈퍼스타들이 직접 사인해 준 볼이다. 사인볼을 들고 있는 김군을 신기하게 여긴 사람들이 말을 건네면 김군은 축구묘기를 보여주고, 묘기를 본 사람은 축구팬이 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김군은 명문클럽의 선수가 돼 어린이들에게 사인해 주는 꿈을 꾼다고 했다.
“히바우두, 호나우두, 지단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지단이 쓰는 기술을 저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김군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네덜란드의 아약스암스테르담 유소년팀으로 축구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네덜란드인 친구’ 요한 크루이프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사람들을 축구에 빠지게 하는 천둥이의 마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