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국회 정치개혁특위 회의실. 여야 간사인 민주당 원유철 의원과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은 지방선거 실시 시기와 관련해 얼굴을 붉히며 설전을 벌였다. “선거 관리와 월드컵 진행에 차질이 우려되니 선거를 5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허의원의 주장에, “법에 정해진 대로 6월13일 치르자”는 민주당 원의원의 원칙론이 맞부딪쳐 파열음을 낸 것.
겉으로는 월드컵 분위기와 법을 앞세웠지만 월드컵 열기 때문에 선거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한나라당의 전략과, 야당 바람을 차단하려는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신경전이었다. 여야는 이에 앞서 2001년 초부터 지방선거 실시 시기를 조정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결론을 얻지 못했다. 지방선거는 결국 민주당 주장대로 6월13일 실시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흐른 6월, 정치권은 물론 선관위에 비상이 걸렸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질 것이란 여론조사기관의 발표가 잇따르고 유권자들도 월드컵 열기에 빠져 선거에 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5월20일과 2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힌 응답자가 4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8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67.8%였으나 실제 투표율은 52.7%에 그쳤다는 선관위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선거에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42.7%에도 상당한 허수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대로라면 전국 단위 선거로는 처음으로 투표율이 30%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상 선거현장에서도 선거 열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월드컵 경기가 중계되는 같은 시간, 청중보다 운동원이 더 많은 시골 유세현장이 TV 카메라에 잡히는가 하면, 10여명의 청중을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출마 후보의 ‘딱한’ 모습도 보인다. “지겨운 선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유권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는 형편이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것은 각종 비리로 얼룩진 정치와 정치권에 대한 혐오증,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가장 큰 요인은 월드컵 열기다. TV만 켜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펼치는 환상적인 경기를 볼 수 있다. 축구장의 푸른 잔디도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특히 투표일 직전에 치른 한`-`미전(6월10일)은 투표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 따라 여야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여론조사기관 K연구원은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투표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락할 경우 지방선거가 월드컵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슈로 등장, 투표율을 높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투표율이 저조할 경우 ‘민의’ 왜곡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30%대 투표율의 경우 민의라기보다 정당의 조직표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심할 경우 지방선거 무용론도 나올 수 있다.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몰고 온 또 다른 병폐는 선거현장의 혼탁과 무질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불법행위가 지난 선거에 비해 10배나 증가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수록 정치적 이해와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된 지방선거 실시 시기가 못내 아쉽다. 민주당은 과연 월드컵과 겹친 지방선거에서 야당 바람을 잠재우는 효과를 거뒀을까? 한나라당은 권력 실세들의 비리의혹이 월드컵에 파묻혀 선거전략에 차질을 빚었을까?
선관위는 최근 “투표하고 축구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투표율 제고에 나섰다. 바른 말 하기 좋아하는 유권자들 역시 입으로 하는 비판만으로는 정치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듯하다.
겉으로는 월드컵 분위기와 법을 앞세웠지만 월드컵 열기 때문에 선거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는 한나라당의 전략과, 야당 바람을 차단하려는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신경전이었다. 여야는 이에 앞서 2001년 초부터 지방선거 실시 시기를 조정하기 위해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결론을 얻지 못했다. 지방선거는 결국 민주당 주장대로 6월13일 실시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흐른 6월, 정치권은 물론 선관위에 비상이 걸렸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질 것이란 여론조사기관의 발표가 잇따르고 유권자들도 월드컵 열기에 빠져 선거에 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5월20일과 21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번 지방선거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밝힌 응답자가 42.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8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67.8%였으나 실제 투표율은 52.7%에 그쳤다는 선관위의 설명대로라면 ‘이번 선거에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42.7%에도 상당한 허수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대로라면 전국 단위 선거로는 처음으로 투표율이 30%대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상 선거현장에서도 선거 열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월드컵 경기가 중계되는 같은 시간, 청중보다 운동원이 더 많은 시골 유세현장이 TV 카메라에 잡히는가 하면, 10여명의 청중을 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출마 후보의 ‘딱한’ 모습도 보인다. “지겨운 선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유권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오는 형편이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것은 각종 비리로 얼룩진 정치와 정치권에 대한 혐오증, 무관심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가장 큰 요인은 월드컵 열기다. TV만 켜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가 펼치는 환상적인 경기를 볼 수 있다. 축구장의 푸른 잔디도 답답한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특히 투표일 직전에 치른 한`-`미전(6월10일)은 투표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 따라 여야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여론조사기관 K연구원은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투표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탈락할 경우 지방선거가 월드컵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슈로 등장, 투표율을 높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투표율이 저조할 경우 ‘민의’ 왜곡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30%대 투표율의 경우 민의라기보다 정당의 조직표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심할 경우 지방선거 무용론도 나올 수 있다.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몰고 온 또 다른 병폐는 선거현장의 혼탁과 무질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불법행위가 지난 선거에 비해 10배나 증가했다는 것이 선관위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수록 정치적 이해와 당리당략에 따라 결정된 지방선거 실시 시기가 못내 아쉽다. 민주당은 과연 월드컵과 겹친 지방선거에서 야당 바람을 잠재우는 효과를 거뒀을까? 한나라당은 권력 실세들의 비리의혹이 월드컵에 파묻혀 선거전략에 차질을 빚었을까?
선관위는 최근 “투표하고 축구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투표율 제고에 나섰다. 바른 말 하기 좋아하는 유권자들 역시 입으로 하는 비판만으로는 정치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