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의 ‘6개의 그노시엔느’를 들으며 마르셀 뒤샹의 그 유명한 변기 ‘샘’을 보라. 만약 비트세대를 대표하는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를 읽게 되거든 디지 길레스피의 ‘소금 땅콩’이나 찰리 파커의 ‘튀니지의 밤’을 틀어라. 클로드 드뷔시의 ‘이미지’와 모리스 라벨의 ‘거울’을 들을 때마다 물 위에 햇살이 부서지는 광경이 떠오르는가. 그것이 인상주의다.
미국의 문화사가 마크 애론슨의 ‘도발’(원제 ‘Art Attack’)은 공감각적인 책이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의 제전’이나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스코트 조플린의 래그타임, 존 케이지의 실험음악, 밥 딜런과 섹스 피스톨즈 같은 대중적인 음악들을 들으며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는다.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발레 ‘목신의 오후’가 등장하는가 하면 머스 커닝엄의 현대무용 ‘춤추는 시간’을 감상할 기회도 있다.
원래 아방가르드란 적군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파견된 선발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였다. 예술에서도 아방가르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서 나가는 역할을 자처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멀리 내다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장 도전적인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시대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부러 작품을 불온하게 만들고 부르주아지(평균적 중산층 시민)를 충격에 빠뜨리는 일을 즐겼다.
기본적으로 애론슨은 아방가르드 옹호자다. “아방가르드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반항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반항은 뛰어난 창조성일 수도 있다. 최고의 아방가르드는 우리 시대의 감춰진 생각,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갈망,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갈등을 무대 위에, 활자 위에, 그리고 화폭 위에 펼쳐 보인다. 아방가르드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표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꿈과 악몽 속으로 우리를 밀어넣는다.”
또 애론슨은 아방가르드와 ‘젊음’을 동일시한다. 신체와 정서가 급격히 변하는 청소년기의 충동이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며, 아방가르드의 장래는 청소년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은근히 부추기기도 한다.
이 책은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의 초연을 기점으로, 컴퓨터 테크놀러지와 네트워크 안에서 구현되는 현대 아방가르드까지 시대적 변천사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1913년 뉴욕 무기창고 전시회에 몰려든 8000여명의 인파는 마르셀 뒤샹의 그림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눈에는 나체와 계단 대신 “아무렇게 쌓여 있는 널빤지 조각들”만 보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꼽히는 마네와 모네가 각각 그린 ‘풀밭 위의 점심’도 같은 대접을 받았다.
하나의 충격이 가실 때쯤 또 다른 아방가르드의 파도가 몰려온다. 애론슨은 “아방가르드는 안전하고 안락한 모든 믿음에 도전하면서 퍼져나갔다”고 했다. 만약 아방가르드가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분했을까.
이 책의 장점은 아방가르드를 특정 장르의 예술로만 보지 않고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함께 설명했다는 데 있다. 애론슨은 다다이스트들이 ‘우연’이라는 새로운 미술도구를 얻고 환호할 때,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양자물리학의 초석이 되는 논문을 발표했음에 주목했다. 뒤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실성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덧붙임으로써 ‘우연’은 과학적 근거를 얻는다.
또 1916년 후고 발이라는 독일 극작가가 세운 ‘카바레 볼테르’가 다다이스트들의 아지트로 각광받을 때, 바로 길 건너편 아파트에서 지노비예프, 라데크, 레닌 등 3명의 학구파가 모여 러시아 혁명을 도모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20세기 예술사, 문화사, 정치·경제사로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을 느낄 것이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었던 애론슨은 ‘더 읽을 만한 자료’와 ‘주요 인물’ 소개를 덧붙였다. 역자가 별도로 추천한 우리말로 된 ‘더 읽을 만한 자료’도 참고하기 바란다.
도발/ 마크 애론슨 지음/ 장석봉 옮김/ 327쪽/ 1만7000원
미국의 문화사가 마크 애론슨의 ‘도발’(원제 ‘Art Attack’)은 공감각적인 책이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불의 제전’이나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 스코트 조플린의 래그타임, 존 케이지의 실험음악, 밥 딜런과 섹스 피스톨즈 같은 대중적인 음악들을 들으며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읽는다. 바슬라프 니진스키의 발레 ‘목신의 오후’가 등장하는가 하면 머스 커닝엄의 현대무용 ‘춤추는 시간’을 감상할 기회도 있다.
원래 아방가르드란 적군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파견된 선발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였다. 예술에서도 아방가르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앞서 나가는 역할을 자처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멀리 내다보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장 도전적인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시대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일부러 작품을 불온하게 만들고 부르주아지(평균적 중산층 시민)를 충격에 빠뜨리는 일을 즐겼다.
기본적으로 애론슨은 아방가르드 옹호자다. “아방가르드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반항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는 반항은 뛰어난 창조성일 수도 있다. 최고의 아방가르드는 우리 시대의 감춰진 생각,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갈망,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갈등을 무대 위에, 활자 위에, 그리고 화폭 위에 펼쳐 보인다. 아방가르드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표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꿈과 악몽 속으로 우리를 밀어넣는다.”
또 애론슨은 아방가르드와 ‘젊음’을 동일시한다. 신체와 정서가 급격히 변하는 청소년기의 충동이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며, 아방가르드의 장래는 청소년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은근히 부추기기도 한다.
이 책은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의 희곡 ‘에르나니’의 초연을 기점으로, 컴퓨터 테크놀러지와 네트워크 안에서 구현되는 현대 아방가르드까지 시대적 변천사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1913년 뉴욕 무기창고 전시회에 몰려든 8000여명의 인파는 마르셀 뒤샹의 그림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를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눈에는 나체와 계단 대신 “아무렇게 쌓여 있는 널빤지 조각들”만 보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로 꼽히는 마네와 모네가 각각 그린 ‘풀밭 위의 점심’도 같은 대접을 받았다.
하나의 충격이 가실 때쯤 또 다른 아방가르드의 파도가 몰려온다. 애론슨은 “아방가르드는 안전하고 안락한 모든 믿음에 도전하면서 퍼져나갔다”고 했다. 만약 아방가르드가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따분했을까.
이 책의 장점은 아방가르드를 특정 장르의 예술로만 보지 않고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함께 설명했다는 데 있다. 애론슨은 다다이스트들이 ‘우연’이라는 새로운 미술도구를 얻고 환호할 때,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양자물리학의 초석이 되는 논문을 발표했음에 주목했다. 뒤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실성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덧붙임으로써 ‘우연’은 과학적 근거를 얻는다.
또 1916년 후고 발이라는 독일 극작가가 세운 ‘카바레 볼테르’가 다다이스트들의 아지트로 각광받을 때, 바로 길 건너편 아파트에서 지노비예프, 라데크, 레닌 등 3명의 학구파가 모여 러시아 혁명을 도모했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20세기 예술사, 문화사, 정치·경제사로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을 느낄 것이다.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었던 애론슨은 ‘더 읽을 만한 자료’와 ‘주요 인물’ 소개를 덧붙였다. 역자가 별도로 추천한 우리말로 된 ‘더 읽을 만한 자료’도 참고하기 바란다.
도발/ 마크 애론슨 지음/ 장석봉 옮김/ 327쪽/ 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