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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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목욕탕에 얼씬 마세요!

  • < 민경배 / 사이버문화연구소소장 >

    입력2005-01-05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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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들, 목욕탕에 얼씬 마세요!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자신의 누드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은 김인규 교사가 결국 교단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동네 공중 목욕탕만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누드가 담긴 사진 한장을 놓고, 음란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은 것부터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아슬아슬한 노출로 고혹적인 자태를 자랑하는 여자 연예인의 사진이 아침마다 거리의 신문 가판대를 장식하는 이 나라에서, 밤만 되면 골목골목마다 단란주점과 과부촌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이 나라에서, 진짜 음란한 사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 한번도 못 봤다는 듯 순진한 척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역겨울 뿐이다.

    음란물 논란이라는 선정적인 소재는 단지 사람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해 피워놓은 연막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사태의 본질은 개인의 표현물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규제와 통제가 이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홈페이지 강제 폐쇄 조치에 이어 곧바로 단행된 김인규 교사의 직위해제는 온라인에 대한 규제와 통제가 단지 온라인 공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세계에 대한 규제와 통제로 직결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수평적·분산적 공간이며, 탈국경화한 세계기 때문에 국가의 규제와 통제가 불가능한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장밋빛 낙관론은 이미 공염불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식민지화하기 위한 국가의 공세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애니나라’ ‘아이노스쿨’ 등의 사이트가 국가의 번득이는 통제의 칼날 아래 잇달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지 않은가.

    ‘애니나라’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파일 공유 프로그램인 ‘애니나라’는 냅스터의 기술을 앞지르는 가장 진일보한 P2P 시스템이다. 입만 열면 정보 강국을 부르짖는 정부로서는 오히려 전략적으로 양성해야 할 기술산업이다. 그런데 애니나라를 통해 음란물을 교환하는 이용자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강제 폐쇄한 것은 여러 가지로 납득하기 힘든 처사다.

    ‘아이노스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자퇴했거나 또는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서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던 커뮤니티 사이트를 선량한 학생들에게 자퇴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이유로 강제 폐쇄한 행위 역시 횡포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자퇴한 학생은 모두 다 불량한 학생이란 말인가? 그리고 자퇴한 학생은 자신들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정작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몰아내는 암담한 교육현실에 대해서는 왜 입을 꾹 다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이버 공간 식민지화 황당

    이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통제가 타당한 것인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탁상공론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국가는 사이버스페이스 곳곳에서 이리저리 칼날을 휘두른다. 하지만 이왕 칼날을 휘두를 바에는 그래도 폼나게, 그리고 제대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사이버스페이스가 오프라인 세계와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는 세계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통제방식을 구사해 보라는 말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통제의 칼날을 거두고 사이버스페이스에 자율적인 규범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서 김인규 교사처럼 억울한 희생양을 또 만들어 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시여! 당분간은 절대로 동네 공중 목욕탕 같은 곳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라. 모르는 일 아닌가. 그곳에서 당신의 제자와 우연히 마주칠지도. 그래서 목욕탕 한구석에 발가벗고 앉아 때를 미는, 지극히 비교육적·비윤리적인 모습을 어린 학생에게 보여줬다는 이유로 정든 교단을 떠나야 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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