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이 기간 동안 유럽연합(EU)과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우리 수출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조선산업은 국제무역분쟁의 심판관인 세계무역기구(WTO)의 재판정에 서야 할 판이다. 이미 EU가 국내 조선업체들을 제소할 경우 우리도 맞제소를 선언해 놓은 바 있다.
한국과 EU는 한국 정부의 조선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조선분쟁을 일단 6월 말까지 양자협의를 통해 타결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팰켄버그 산업담당 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EU 대표단이 오는 5월28~30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조선분쟁에 대한 타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는 타협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의 조선업체들이 정부에게서 받은 보조금을 기반으로 선가를 낮춰 조선시장을 장악해 왔다고 주장하는 EU측은 선가를 15% 정도 인상하라는 요구를 거둬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가 인상에 관한 우리 조선업계의 입장은 명확하다. 가격이란 어차피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선박 수주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릴 필요가 없을 뿐더러 설령 우리가 EU와의 양자협의를 통해 선가를 올린다 해도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선가를 함께 올려주지 않는 이상 EU의 수주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U와의 협의과정에서도 이 점을 주로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EU측은 지난 5월15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과 파스칼 라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간에 열린 한-EU 통상장관회담은, 물론 그동안의 양자 협의과정에서도 한국측의 선가 15% 인상 방안을 계속 고집하며 “한국이 선가를 올려 EU의 수주가 증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행위원회로서는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는 것을 내세워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중을 계속 내비쳤다. 말하자면 역내 조선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시위 목적으로, 실익이 없더라도 선가 인상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조선분야의 선두주자인 한국이 선가를 올리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오리라는 것이 EU의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업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조선공업협회 관계자는 “만약 우리가 선가를 올리면 대형 컨테이너선은 폴란드나 중국 같은 엉뚱한 나라들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EU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자국 조선업체들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초기에는 선가의 30%라는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지급했고, 90년대 들어 선가의 9% 정도를 낮춘 보조금은 지난해 말로 소멸되었다. ‘시장경쟁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동안 EU의 보조금에 의존한 조선업체들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을 법한 일이다. 국내업계에서는 EU 소속 국가의 조선업체들이 이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한국을 끌어들여 정치적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낮은 가격으로 수출에 호조를 보인다고 해서 EU 국가들의 조선산업에 실질적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와 EU 국가의 주력분야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우위를 점하는 조선분야는 주로 원유 또는 화학제품 운반선이나 대형 컨테이너선과 ‘벌크 캐리어’(Bulk Carrier)라고 하는 석탄이나 광석 등을 실어나르는 산적화물선 등에 집중된다. 반면 EU는 초호화 유람선인 대형 크루즈선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분야를 주력으로 한다. 서로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와 EU와는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 게다가 컨테이너선 등 일부 선박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건조하는 선박 규모가 달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반면 일본은 미쯔비시사가 지난 90년 크루즈 선박을 2척 수주함으로써 크루즈선 분야에서 EU와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EU는 크루즈선 분야에서 이러한 일본의 급성장을 매우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이를 종합해 보면 결국 WTO 제소를 내세운 EU의 공세는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크루즈선 분야에서 일본의 추격을 잠재우겠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 또는 ‘외곽 때리기’ 전법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이러한 EU의 의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WTO로 가져갈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만약 패소할 경우 우리의 교역 상대국들이 구조조정과정에서 국내 일부 산업에 대한 출자전환 등의 조치를 문제삼아 벌떼같이 덤벼들 수도 있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문제삼은 바 있고, 강원산업 등 일부 워크아웃기업에 대한 채무조정 등에도 제동을 건 바 있다.
정부 내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직 확실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형편이어서 협상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외교통상부 손기윤 통상전문관은 “WTO 보조금 협정 위반 사실을 입증하려면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분야에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EU의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EU의 경우 둘 다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 정만기 자본재통상팀장은 “출자전환이나 채무조정과 같은 조치들이 수출과 연계되지 않았지만 보조금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해 다소 신축적 협상안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6월30일까지를 기한으로 정해 놓은 EU와의 양자협의에서 양쪽이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방법으로 EU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지를 내부 검토중”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일본의 약진과 중국의 추격으로 힘겨운 선두자리를 지켜가는 수출 효자산업인 조선산업이 EU와 또 한번의 힘겨운 샅바싸움을 남겨놓은 셈이다.
한국과 EU는 한국 정부의 조선업체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조선분쟁을 일단 6월 말까지 양자협의를 통해 타결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팰켄버그 산업담당 국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EU 대표단이 오는 5월28~30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조선분쟁에 대한 타결을 시도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는 타협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의 조선업체들이 정부에게서 받은 보조금을 기반으로 선가를 낮춰 조선시장을 장악해 왔다고 주장하는 EU측은 선가를 15% 정도 인상하라는 요구를 거둬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가 인상에 관한 우리 조선업계의 입장은 명확하다. 가격이란 어차피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선박 수주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올릴 필요가 없을 뿐더러 설령 우리가 EU와의 양자협의를 통해 선가를 올린다 해도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선가를 함께 올려주지 않는 이상 EU의 수주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EU와의 협의과정에서도 이 점을 주로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EU측은 지난 5월15일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황두연 통상교섭본부장과 파스칼 라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간에 열린 한-EU 통상장관회담은, 물론 그동안의 양자 협의과정에서도 한국측의 선가 15% 인상 방안을 계속 고집하며 “한국이 선가를 올려 EU의 수주가 증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집행위원회로서는 일정한 성과를 얻어냈다는 것을 내세워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중을 계속 내비쳤다. 말하자면 역내 조선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시위 목적으로, 실익이 없더라도 선가 인상이라는 무리한 요구를 거둬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조선분야의 선두주자인 한국이 선가를 올리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오리라는 것이 EU의 계산”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업계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조선공업협회 관계자는 “만약 우리가 선가를 올리면 대형 컨테이너선은 폴란드나 중국 같은 엉뚱한 나라들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EU는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자국 조선업체들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초기에는 선가의 30%라는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지급했고, 90년대 들어 선가의 9% 정도를 낮춘 보조금은 지난해 말로 소멸되었다. ‘시장경쟁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동안 EU의 보조금에 의존한 조선업체들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을 법한 일이다. 국내업계에서는 EU 소속 국가의 조선업체들이 이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한국을 끌어들여 정치적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낮은 가격으로 수출에 호조를 보인다고 해서 EU 국가들의 조선산업에 실질적 타격을 입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와 EU 국가의 주력분야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우위를 점하는 조선분야는 주로 원유 또는 화학제품 운반선이나 대형 컨테이너선과 ‘벌크 캐리어’(Bulk Carrier)라고 하는 석탄이나 광석 등을 실어나르는 산적화물선 등에 집중된다. 반면 EU는 초호화 유람선인 대형 크루즈선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분야를 주력으로 한다. 서로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와 EU와는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것. 게다가 컨테이너선 등 일부 선박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건조하는 선박 규모가 달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반면 일본은 미쯔비시사가 지난 90년 크루즈 선박을 2척 수주함으로써 크루즈선 분야에서 EU와의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EU는 크루즈선 분야에서 이러한 일본의 급성장을 매우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
이를 종합해 보면 결국 WTO 제소를 내세운 EU의 공세는 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크루즈선 분야에서 일본의 추격을 잠재우겠다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 또는 ‘외곽 때리기’ 전법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이러한 EU의 의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WTO로 가져갈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만약 패소할 경우 우리의 교역 상대국들이 구조조정과정에서 국내 일부 산업에 대한 출자전환 등의 조치를 문제삼아 벌떼같이 덤벼들 수도 있는 상황을 염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문제삼은 바 있고, 강원산업 등 일부 워크아웃기업에 대한 채무조정 등에도 제동을 건 바 있다.
정부 내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직 확실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형편이어서 협상 타결 전망은 불투명하다. 외교통상부 손기윤 통상전문관은 “WTO 보조금 협정 위반 사실을 입증하려면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분야에 보조금을 지원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EU의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EU의 경우 둘 다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산업자원부 정만기 자본재통상팀장은 “출자전환이나 채무조정과 같은 조치들이 수출과 연계되지 않았지만 보조금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해 다소 신축적 협상안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6월30일까지를 기한으로 정해 놓은 EU와의 양자협의에서 양쪽이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떤 방법으로 EU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지를 내부 검토중”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일본의 약진과 중국의 추격으로 힘겨운 선두자리를 지켜가는 수출 효자산업인 조선산업이 EU와 또 한번의 힘겨운 샅바싸움을 남겨놓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