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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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모래밭 … 영원한 戰士의 땅

  • 글·사진/ 전화식 (Magenta International Press) magenta@kornet.net

    입력2005-03-07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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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모래밭 … 영원한 戰士의 땅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이글거린다. 보이는 것은 끝없는 모래, 모래뿐. 그 위를 헤치고 푸른 옷의 투아레그인이 다가온다. 한때 멀리 유럽에까지 용맹성과 강인함으로 이름을 떨치는 유목민이었던 그들이다. 그러나 드넓은 사하라 사막을 지배했던 것은 이미 수 백 년 전이고, 프랑스 식민 지배에 저항했던 전설적인 무용담도 백여 년이 넘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말리의 사하라 사막에서 캐러밴에 나선 한 무리의 투아레그족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소금 캐러밴을 체험했다. 마호메트 가족과 함께했던 그 40일은 내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언어인 타마셰크어는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어도 사용하고 있어서 자세한 취재와 더불어 여러 가지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남색 터번(아센조터)으로 가려진 얼굴 안에서 빛나는 그들의 눈빛은 한없이 깊어 보인다. 그들의 조용한 몸짓은 무언극인 듯 정적을 자아내고, 말소리는 나직이 들려오는 노랫가락 같다. 타마셰크어의 아름다운 음률 때문일까. 일찍이 유럽인들에게 ‘사하라의 푸른 옷을 입은 저승사자’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용맹함과 강인함이 깃들인 야성은 찾아볼 수 없다.

    신에게 불의 응징을 당하기라도 하는 듯 뜨거운 땅 사하라 사막에 저녁 노을이 짙붉게 물들기 시작하자 캐러밴은 행진을 멈춘다. 낙타 등에서 짐을 풀고 급조한 모래 화덕 위에 불을 지펴 차를 끓인다. 한낮의 힘겹던 캐러밴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다.

    투아레그식의 차는 찻잔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 대개는 한 차례에 석잔씩 마시는데 첫 잔에는 우정, 둘째 잔에는 사랑, 셋째 잔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일러주는 마호메트. 그의 말은 그 자체가 삶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짧은 시였다.



    광활한 모래밭 … 영원한 戰士의 땅
    “마호메트, 내일은 어느 쪽으로 가지요?”

    달빛을 받아 은색의 바다 같은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묻는 나의 지친 목소리에 그는 가만히 몸을 돌려 어지럽게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 들 중 유난히 빛나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빛나는 북극성이 있는 쪽으로 가죠. 계속 나가면 모리타니 국경이 나타날 거예요. 국경이라야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지만….” 이미 어둠이 내려 한기를 느낄 정도의 싸늘함이 온 사막을 덮고 있었지만 낮 동안의 타들어 가는 듯한 목마름은 멈추질 않았다. 하루 동안 1.5리터짜리 물통을 여덟 병이나 비우고도 소변 한 번 보지 않을 정도의 더위, 그것을 어찌 참아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용하다.

    몸속 깊이까지 익히던 낮 동안의 열기가 어느 정도 식자 우리는 차를 끓이던 모래 화덕을 중심으로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정적을 실은 신선한 바람만 몰려올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이른 새벽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흔들어 깨우는 것을 느꼈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밤새 불어온 모래 바람에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부어 있었던 것이다.

    “빨리 일어나요. 아주 큰 캐러밴이 지나가요. 한여름(사하라는 4, 5월이 한여름이다)에 저렇게 큰 규모는 보기 힘든데….” 20여 일 전에 모리타니로 들어갔다 돌아오는 ‘아잘라이 캐러밴’(소금 대상)이라고 했다. 이른 새벽 수십 마리의 낙타들이 무리를 지어 저 멀리 지나가는 광경은 정말 사하라답다.

    4월의 사하라 사막은 잔인했다. 섭씨 50도를 너끈히 넘는 한낮은 모든 것을 태우는 듯했다. 터번으로 얼굴을 감쌌지만 열기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코피가 터졌다. 이쯤 되면 대개 작은 우물이 있는 곳에서 멈추게 마련이다.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 사람의 생명을 짊어진 낙타를 위해서다.

    흔히들 낙타는 보름씩이나 물을 마시지 않아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과장된 이야기다. 한여름의 사막에서는 건강한 낙타일지라도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할 경우에는 사나흘 정도, 풀이라도 먹을 경우에는 일주일이 한계라고 한다.

    마호메트는 언젠가 캐러밴 도중 길을 잃은 적이 있는데, 낙타를 죽여 배 안에 있는 물주머니에 저장된 물을 마시며 연명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 투아레그인은 낙타를 식용으로 하지 않고 운반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말 그대로 낙타는 그들에게 ‘사막의 배’이자 자신의 생명과 같은 무게를 지닌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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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하라의 관문이라는 팀북투로 돌아가기 전, 마호메트의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투아레그족은 염소 가죽으로 집(아하쿰)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와 나무껍질 또는 밀짚으로 엮어 만든 집(사나저)도 있다. 낮에는 사방을 터놓고 지내다가 밤이면 돗자리로 벽을 만들어 추위를 막는다. 사막의 밤은 낮과 달리 두꺼운 담요를 덮어야 할 정도로 춥다.

    이곳에는 마호메트 일가와 그의 사촌이 모여 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한 모양이다. 할머니는 모래 그늘에서 발가벗고 뒹구는 손녀를 따라다니며 돌보고, 아낙은 손님 맞을 음식을 만드느라 모래 아궁이에 모여 앉아 있다. 마호메트의 큰아들은 캐러밴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낙타를 추스르고, 나와 마호메트는 사나저 안에서 모래 베개를 베고 비스듬히 누워 투아레그식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잠시나마 사막의 혹독함을 잊고 인간사의 훈훈함을 맛보는 시간이었다.

    광활한 모래밭 … 영원한 戰士의 땅
    마호메트는 환영의 뜻으로 마을 부인들을 모아 투아레그의 전래 민요를 ‘이무자드’(국악기인 아쟁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투아레그족의 현악기)로 구성지게 연주해 주고, 염소도 두 마리 잡아 주었다. 그 중 한 마리는 ‘게루바’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껍질을 벗겼다.

    그들의 염소구이는 독특하고 간단했다. 모래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로 불을 지펴 숯불이 되면 염소 고기를 넣고 모래를 덮어 묻는다. 30∼40분 후에 꺼내면 적당히 익는데, 신기하게도 모래가 별로 씹히지 않는다. 양념도 없이 암염만 발라 설익힌 염소구이의 역한 냄새는 지금도, 아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팀북투로 돌아가기 전날 밤, 마호메트가 내게 하던 그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찻잔에 담긴 의미를 잊지 않겠지요? 돌아가더라도 사하라와 우리를 잊지 마세요.” 투아레그식 차를 마시며 마호메트가 내게 되새겨준 말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사하라 사막과 너무도 동떨어진 현실 속에 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마호메트! 그 찻잔에 담긴 의미만큼은 절대 잊지 않아요. 그게 우리의,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을 담고 있는 것이잖아요. 우정과 사랑, 인생. 살아 있는 동안은 잊을 수가 없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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