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9일 밤 10시 서울시 A한방병원의 응급실. 당직 한의사가 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방금 입원한 김모씨(54)에게 링거(수액제)와 발륨(Valium)처방을 지시한다. 신경안정제와 근육이완제로 쓰이는 발륨은 마약 성분이 함유된 향정신성 의약품. 법적으로는 양의사가 반드시 마약대장에 자필로 서명한 뒤 투여토록 규정된 의약품을 무자격자인 한의사가 처방전을 내고 있었다.
링거도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병원에선 양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각종 전문의약품이 ‘응급상황’이란 미명 하에 남용되고 있었다.
“퇴근하기 전 양의사 선생님에게 미리 이런 환자가 들어올 때는 발륨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고, 내일 아침에 과장(양의사)이 서명하면 문제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한의사는 무자격 처방임을 지적하는 기자에게 대뜸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 병원은 대부분의 중소 한방병원처럼 양의원(신경외과 또는 내과)이 함께 있는 양한방협진병원이었지만 야간 당직은 한의사들만이 번갈아 서고 있었다.
“그래도 양의의 처방전이 없는데 어떻게 마약을 씁니까?”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화가 난 듯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선생님, 저 김인데요. 경련을 일으키는 환자에게 발륨을 썼더니 기자가…” 전화를 마치고 난 한의사는 기자에게 “이제 됐습니까? 구두로 처방전을 받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처방전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 또 다른 양약의 투여를 지시했다.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숨이 넘어가는 환자에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전국적으로 응급환자에 대한 양한방의 협진이 이루어지는 곳은 손으로 꼽습니다.” 자정 무렵이 지나 환자의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김이라는 인턴 한의사는 중풍 응급환자를 맞는 당직 한의사의 어려움을 이렇게 호소했다.
이처럼 한방병원 한의사의 불법 양방진료는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중풍 전문치료 병원임을 앞세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중소 한방병원들은 불법적인 양방진료로 대형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향해야 할 ‘초응급환자’들의 생사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5분인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었다.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들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방병원은 137개. 이중 양한방협진을 하지 않는 곳은 3∼4개 병원에 불과하다. 경희대의료원을 비롯한 몇몇 대형 한방병원을 제외한 중소 한방병원들은 지난 95년 이후 중풍과 연관성을 가진 내과나 신경외과 의원 중 하나(의사 1명)를 병원 내부나 근처에 개업하고 이를 ‘양한방 협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한방쪽에서 양방에 환자를 넘기는 경우는 거의 드문 실정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이 양한방 협진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방의사가 없는 병원에는 양약을 공급할 수가 없죠. 그건 완벽한 불법 유통입니다.” 20년째 약품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46)는 한방병원들이 뇌졸중(중풍) 응급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양의약품이 필요하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실제 진료 여부와 관계없이 양의사의 면허가 필수적이라고 귀띔했다. 중풍 응급환자를 치료하고 입원시키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어렵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결국 한방병원 내 양의사는 자신의 양방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일과시간 중에는 응급환자를 돌볼 시간이 없고, 양의사가 퇴근한 한방병원은 양약은 있지만 양의사가 없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
대구시 동구 신천동 김모씨(당시 51세)는 한방병원에서 ‘양방치료’를 받다가 숨진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김씨는 지난 95년 8월5일 얼굴 경련과 손발 저림을 호소하며 대구시 수성구 B한방병원에 입원한 지 3일만에 숨졌다. 입원기간의 김씨 간호일지에는 한의사가 처방을 내렸는데도, 한약은 하나도 없고 양약 처방만 가득했다. 역시 가장 많이 투여된 약품은 마약 성분의 발륨.
‘8월5일 16:30 혈압 180/100… 혈압 강하제 아달라트 설하(혀밑) 투여, 8월6일 02:30 경련과 발작(혈압 200/100) 아달라트 한 알과 진정제 발륨 한 앰플 근육주사, 07:00 재발(혈압 230/100) 정맥 절개 및 발륨 한 앰플 근육주사, 16:00 당뇨병 치료용 인슐린제제(NPH) 16단위 주사, 24:00 소염 진통제 디프라신 한 알 경구 투여….’
간호일지에는 처방을 낸 한의사의 이름이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한의사가 마약 성분의 발륨을 멋대로 처방했을 뿐 아니라 그것도 혈관에 주입했고, 수액제(링거) 속도와 용량까지 조절하고 있었다. 또 과다 투여되면 저혈당으로 사망할 수 있는 당뇨병 치료제 NPH를 주저없이 피부 밑에 주사했다. 피하주사제는 혈관 내에 투입될 경우 급격한 흡수로 치명적인 부작용을 나타내는 약품으로, 주사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혈압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혈압강하제 아달라트까지….
‘HERB HOLD.’ 다른 무엇보다 한의사가 간호일지에 적어 놓은 이 한마디는 김씨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약을 중단하라’는 이 말은 김씨의 상태가 더 이상 한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문구다. 한의사 스스로 한방으로 치료가 불가능함을 인정한 것. 심근경색증으로 진단받은 김씨는 2일 동안 한의사에게 양방진료를 받다가 결국 치료시기를 놓쳤다. 병원 한쪽에서 개업하고 있는 신경외과 원장이 간호일지에 나타난 것은 3일째 되던 날. 그것도 초청(invited) 형식으로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미 김씨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인근 대형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한의사들이 양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도 없이 양약을 투약하는 등 양방 치료행위를 한 잘못이 있고, 망인에 대해 양방치료를 주로 했다면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 치료를 위 병원에서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도록 할 설명의 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 대구지법 제11민사부는 지난해 6월 이 한방병원의 과실을 인정하고, 김씨의 가족에게 6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다른 종합병원으로 ‘전원’(傳院)시켜야 함에도 막연한 불법 양방치료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법의학상담소 민경찬 소장(해부학 전문의)은 “한방병원에 가는 응급환자 대부분이 뇌나 심장 혈관계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 중 당뇨나 고혈압이 원인이 돼 발병한 사람은 응급처치가 잘못될 경우 즉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의사들이 이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소장은 “김씨 같은 환자의 경우 온갖 통증을 겪으면서도 24시간 이상 버텼다는 것은 충분한 치료 기회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의 조제행위가 금지된 지난 7월 의약분업 후에도 한방병원 한의사의 불법 마약처방과 양약처방 기록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와 지난 9월 청주시내 C한방병원에 입원했던 이모씨(59)의 간호기록도 앞서의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발륨, 아달라트, NPH, RI(당뇨병 치료제)…’ 일반적으로 양방의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응급환자에게 투여되는 약품이 한의사의 처방만으로 투여되고 있었다.
“며칠 있으니까 다리가 검푸르게 변하면서 통증이 더욱 심해졌어요, 병원을 옮기려고 해도 옮겨주지 않고….” 일주일을 이 병원에 머물다가 서울의 J대학병원으로 옮긴 이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풍이 아닌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하지괴사증상’(다리가 썩어들어가는 증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이씨는 이 한방병원을 고소할 예정이다.
대한병원협회의 한 관계자는 “소문은 들어왔는데 사실인 줄 몰랐다”며 “중소 한방병원의 경우 응급환자에 대한 24시간 양한방 협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한방 수련의들도 양방 관련 과목에 대한 실습을 많이 해 의료사고 위험이 크지 않고, 일부 의료사고의 경우도 한의사의 양방진료가 문제가 됐다기보다는 진단 자체를 잘못해 일어난 사고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한방병원 한의사의 양약처방이 관례화돼 있다는 것을 압니다. 법이 선행되고, 현실이 그 테두리 속에서 규정된다면 좋겠지만 현재는 현실에 법이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한방병원의 응급관리체계를 비롯한 법적인 책임문제를 따로 규정한 한방관련법 제정을 준비중입니다.” 보건복지부 한방제도과 김용호 과장은 ‘의사법’만 있지 한의사에 관한 법률이 따로 없는 탓으로 돌렸다.
“알고 보니 그게 양약이었어요, 글쎄. 치료를 못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난 5월22일 뇌졸중으로 전북 정읍의 한 한방병원에 입원했다가 3일 뒤 아산 J종합병원으로 옮겨진 김모씨(74)는 한방병원의 간호일지를 해석해준 양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방병원 한의사들의 무리한 환자 욕심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한방치료의 탁월성을 깎아내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링거도 한의사가 처방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이 병원에선 양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각종 전문의약품이 ‘응급상황’이란 미명 하에 남용되고 있었다.
“퇴근하기 전 양의사 선생님에게 미리 이런 환자가 들어올 때는 발륨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고, 내일 아침에 과장(양의사)이 서명하면 문제없는데 왜 그러십니까.”
한의사는 무자격 처방임을 지적하는 기자에게 대뜸 이렇게 쏘아붙였다. 이 병원은 대부분의 중소 한방병원처럼 양의원(신경외과 또는 내과)이 함께 있는 양한방협진병원이었지만 야간 당직은 한의사들만이 번갈아 서고 있었다.
“그래도 양의의 처방전이 없는데 어떻게 마약을 씁니까?”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화가 난 듯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선생님, 저 김인데요. 경련을 일으키는 환자에게 발륨을 썼더니 기자가…” 전화를 마치고 난 한의사는 기자에게 “이제 됐습니까? 구두로 처방전을 받았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처방전을 받았다는 전제 하에 또 다른 양약의 투여를 지시했다.
“그럼 어떡하란 말입니까. 숨이 넘어가는 환자에게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전국적으로 응급환자에 대한 양한방의 협진이 이루어지는 곳은 손으로 꼽습니다.” 자정 무렵이 지나 환자의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김이라는 인턴 한의사는 중풍 응급환자를 맞는 당직 한의사의 어려움을 이렇게 호소했다.
이처럼 한방병원 한의사의 불법 양방진료는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중풍 전문치료 병원임을 앞세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중소 한방병원들은 불법적인 양방진료로 대형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향해야 할 ‘초응급환자’들의 생사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5분인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었다.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들은 불구가 되거나 사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한방병원은 137개. 이중 양한방협진을 하지 않는 곳은 3∼4개 병원에 불과하다. 경희대의료원을 비롯한 몇몇 대형 한방병원을 제외한 중소 한방병원들은 지난 95년 이후 중풍과 연관성을 가진 내과나 신경외과 의원 중 하나(의사 1명)를 병원 내부나 근처에 개업하고 이를 ‘양한방 협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한방쪽에서 양방에 환자를 넘기는 경우는 거의 드문 실정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굳이 양한방 협진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방의사가 없는 병원에는 양약을 공급할 수가 없죠. 그건 완벽한 불법 유통입니다.” 20년째 약품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씨(46)는 한방병원들이 뇌졸중(중풍) 응급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양의약품이 필요하고, 이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실제 진료 여부와 관계없이 양의사의 면허가 필수적이라고 귀띔했다. 중풍 응급환자를 치료하고 입원시키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어렵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결국 한방병원 내 양의사는 자신의 양방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일과시간 중에는 응급환자를 돌볼 시간이 없고, 양의사가 퇴근한 한방병원은 양약은 있지만 양의사가 없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
대구시 동구 신천동 김모씨(당시 51세)는 한방병원에서 ‘양방치료’를 받다가 숨진 억울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김씨는 지난 95년 8월5일 얼굴 경련과 손발 저림을 호소하며 대구시 수성구 B한방병원에 입원한 지 3일만에 숨졌다. 입원기간의 김씨 간호일지에는 한의사가 처방을 내렸는데도, 한약은 하나도 없고 양약 처방만 가득했다. 역시 가장 많이 투여된 약품은 마약 성분의 발륨.
‘8월5일 16:30 혈압 180/100… 혈압 강하제 아달라트 설하(혀밑) 투여, 8월6일 02:30 경련과 발작(혈압 200/100) 아달라트 한 알과 진정제 발륨 한 앰플 근육주사, 07:00 재발(혈압 230/100) 정맥 절개 및 발륨 한 앰플 근육주사, 16:00 당뇨병 치료용 인슐린제제(NPH) 16단위 주사, 24:00 소염 진통제 디프라신 한 알 경구 투여….’
간호일지에는 처방을 낸 한의사의 이름이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한의사가 마약 성분의 발륨을 멋대로 처방했을 뿐 아니라 그것도 혈관에 주입했고, 수액제(링거) 속도와 용량까지 조절하고 있었다. 또 과다 투여되면 저혈당으로 사망할 수 있는 당뇨병 치료제 NPH를 주저없이 피부 밑에 주사했다. 피하주사제는 혈관 내에 투입될 경우 급격한 흡수로 치명적인 부작용을 나타내는 약품으로, 주사할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여기에 혈압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용량을 조절해야 하는 혈압강하제 아달라트까지….
‘HERB HOLD.’ 다른 무엇보다 한의사가 간호일지에 적어 놓은 이 한마디는 김씨의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약을 중단하라’는 이 말은 김씨의 상태가 더 이상 한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문구다. 한의사 스스로 한방으로 치료가 불가능함을 인정한 것. 심근경색증으로 진단받은 김씨는 2일 동안 한의사에게 양방진료를 받다가 결국 치료시기를 놓쳤다. 병원 한쪽에서 개업하고 있는 신경외과 원장이 간호일지에 나타난 것은 3일째 되던 날. 그것도 초청(invited) 형식으로 온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미 김씨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인근 대형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했다.
“한의사들이 양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도 없이 양약을 투약하는 등 양방 치료행위를 한 잘못이 있고, 망인에 대해 양방치료를 주로 했다면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려 치료를 위 병원에서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도록 할 설명의 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 대구지법 제11민사부는 지난해 6월 이 한방병원의 과실을 인정하고, 김씨의 가족에게 61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다른 종합병원으로 ‘전원’(傳院)시켜야 함에도 막연한 불법 양방치료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시했다.
법의학상담소 민경찬 소장(해부학 전문의)은 “한방병원에 가는 응급환자 대부분이 뇌나 심장 혈관계통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 중 당뇨나 고혈압이 원인이 돼 발병한 사람은 응급처치가 잘못될 경우 즉사할 수밖에 없다”며 “한의사들이 이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소장은 “김씨 같은 환자의 경우 온갖 통증을 겪으면서도 24시간 이상 버텼다는 것은 충분한 치료 기회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사의 조제행위가 금지된 지난 7월 의약분업 후에도 한방병원 한의사의 불법 마약처방과 양약처방 기록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와 지난 9월 청주시내 C한방병원에 입원했던 이모씨(59)의 간호기록도 앞서의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발륨, 아달라트, NPH, RI(당뇨병 치료제)…’ 일반적으로 양방의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 응급환자에게 투여되는 약품이 한의사의 처방만으로 투여되고 있었다.
“며칠 있으니까 다리가 검푸르게 변하면서 통증이 더욱 심해졌어요, 병원을 옮기려고 해도 옮겨주지 않고….” 일주일을 이 병원에 머물다가 서울의 J대학병원으로 옮긴 이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중풍이 아닌 ‘심부정맥 혈전증’으로 ‘하지괴사증상’(다리가 썩어들어가는 증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이씨는 이 한방병원을 고소할 예정이다.
대한병원협회의 한 관계자는 “소문은 들어왔는데 사실인 줄 몰랐다”며 “중소 한방병원의 경우 응급환자에 대한 24시간 양한방 협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한방 수련의들도 양방 관련 과목에 대한 실습을 많이 해 의료사고 위험이 크지 않고, 일부 의료사고의 경우도 한의사의 양방진료가 문제가 됐다기보다는 진단 자체를 잘못해 일어난 사고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한방병원 한의사의 양약처방이 관례화돼 있다는 것을 압니다. 법이 선행되고, 현실이 그 테두리 속에서 규정된다면 좋겠지만 현재는 현실에 법이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한방병원의 응급관리체계를 비롯한 법적인 책임문제를 따로 규정한 한방관련법 제정을 준비중입니다.” 보건복지부 한방제도과 김용호 과장은 ‘의사법’만 있지 한의사에 관한 법률이 따로 없는 탓으로 돌렸다.
“알고 보니 그게 양약이었어요, 글쎄. 치료를 못하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지난 5월22일 뇌졸중으로 전북 정읍의 한 한방병원에 입원했다가 3일 뒤 아산 J종합병원으로 옮겨진 김모씨(74)는 한방병원의 간호일지를 해석해준 양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방병원 한의사들의 무리한 환자 욕심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한방치료의 탁월성을 깎아내리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