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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한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함께 발전해왔다. 이들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만 보는 것이 아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또한 성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와 노골적인 표현에 익숙한 사회 문화적인 배경은 성인 애니메이션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김세훈 교수는 “미국은 현실비판적이고, 일본은 성적인 묘사와 폭력 정도가 강하고 유럽은 사회참여적이며 철학적인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애니메이션은 내용의 묘사 정도와 선정성, 폭력성, 주제와 내용에 따라 ‘성인용’으로 구분하고 방송시간대나 등급을 매겨 시청자, 관람자의 연령을 제한한다. 미국의 등급 분류는 17세인데 비해, 일본과 우리나라는 ‘18금’ ‘18세 이상 관람가’로 ‘성인용’을 구분한다.
일본: 노골적 성묘사 잔인무도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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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짱구는 못말려’도 원래는 성인을 타깃으로 제작된 작품. 노골적이지 않은 성적 묘사와 아이의 순진한 상상력, 제한된 의사표현이 주는 즐거움이 성인층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펼쳐지는 야한 반전과 농담이 이 작품의 핵심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린이 시청 시간대에 방영되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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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심슨 가족’은 미국인들을 직접적으로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심슨 가족’이 인기 있는 이유는 현실을 비트는 풍자정신과 비수를 날리는 대사의 재미. 여기에도 의외로 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그렇다고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선정성을 무기로 삼는 것은 아니고, 미국 대중문화와 영화를 재료 삼아 패러디와 풍자로 버무려내는 유머감각과 상상력이 오히려 지적이다. ‘심슨 가족’보다 더 앙증맞고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사우스 파크’ 역시 내용은 발칙하고 폭력적인 성인물. 외설과 불경함의 금기를 여지없이 깨버리는 ‘사우스 파크’의 저질스런 욕설과 언행은 무정부주의적인 도발성으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만화잡지의 성공으로 81년 R등급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한 ‘헤비 메탈’은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장을 개척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전까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다른 성인 취향의 이 애니메이션은 성적 자극과 폭력을 적절히 섞어 성인 관객들을 유혹했다. 말랑말랑하고 뽀얀 살결 위에 빨간 가죽띠를 두르고 칼을 든 여성 전사의 캐릭터가 남성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음은 물론이다.
한국: 제약 많고 작품 적고 척박한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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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제작사 서울무비는 ‘누들누드’ 단행본 다섯권에서 고른 에피소드 11편을 각기 3~5분짜리 작품으로 기획했다. 심의에서 다섯 군데를 수정, 삭제하라는 주문을 받고 재심의를 받는 소동을 벌인 끝에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비디오’라는 야하고 개성적인 딱지를 달고 세상에 나오는 데 성공했다.
국내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를 잃어가던 척박한 시장에서 ‘성인용 애니메이션’, 그것도 비디오로 승부수를 던진 ‘누들누드’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한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전통 민담에서부터 출발하여 슈퍼맨 패러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적인 기호들을 ‘성’이라는 잣대로 읽어내면서 성인용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확실한 오락성과 작품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한다.
‘누들누드’의 뒤를 이어 박수동의 만화 ‘고인돌’도 성인용 애니메이션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한국만화사상 가장 독창적인 캐릭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고인돌 식구들을 등장시킨 야하고 해학 넘치는 이 작품은 건강한 에로티시즘의 표현으로 발랄한 성 풍속도를 그려냈다. 65분짜리 비디오를 채운 11개 에피소드는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각색, 합성한 것으로 성을 둘러싼 유희와 해학이 골조를 이룬다. 틈만 나면 서로 치근거리고 짝짓기 탐색전을 벌이는 여섯 남녀의 애정 행각에 초첨이 맞춰진 만큼, 노골적인 에로스의 극으로 밀어붙인 팬터지가 주된 웃음원.
비디오 시장에서 일단 합격점을 얻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던 한국의 성인 애니메이션은 최근 ‘해피 데이’의 등급 보류 판정으로 제동이 걸렸다. 선정적인 장면과 과도한 노출 때문인데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등급 보류되기는 이번이 처음. 성행위 장면의 수위를 한 단계 높여 ‘본격 성인 애니메이션’을 표방했던 이 작품이 개봉에 난항을 겪으면서 한국의 성인 애니메이션 시장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자료제공·디지털 플러스 02-518-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