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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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보고 어떻게…” 서울대 면접 딜레마

사실상 당락 결정…2002년도 무시험 전형 우수학생 선발 방법 고민

  • 입력2005-05-31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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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보고 어떻게…” 서울대 면접 딜레마
    한국인의 눈치문화’(사회학과), ‘서태지 은퇴 선언 및 번복’ (경제학과), ‘경의선 연결 사업 사례로 본 남북 교통망 연결의 정치 경제적 이득’(지리학과).

    지난 10월 치러진 서울대 수시모집 면접-구술고사에 등장한 문제들은 충분한 독서와 시사문제에 대한 안목을 요구했다.

    이같은 서울대의 면접 경향은 2001학년도 정시모집에서도 계속될 뿐만 아니라, 대학별 지필고사(본고사 혹은 논술)가 없어지는 내년(2002학년도 대입)부터는 더욱 강화된 형태의 심층 면접이 이루어지면서 사실상 당락을 가르는 열쇠가 된다. 수학능력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돼 변별력이 없는 데다 학생생활기록부 역시 서울대 응시생 정도라면 대부분 최상위 등급이어서 차이를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입시전형 결과를 분석해 보면 서울대 응시자의 점수차가 벌어지는 것은 면접, 논술, 학생부, 수능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빈부격차 확연 ‘외형’이 점수 좌우(?)

    서울대 유영제 교무부처장은 “논술이 폐지돼도 심층면접으로 충분히 논술을 대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글 쓰기 대신 말로 할 뿐 학생의 논리적 사고나 표현을 평가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면접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비디오 자료집과 지침서를 만드는 등 다양하게 대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서울대 교수들은 2002학년도 무시험 전형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나마 논술까지 없애고 면접만으로 선발했을 때 객관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견부터 “왜 이런 일에 서울대가 앞장서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교수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주관적인 면접에서 어떻게 객관성을 담보하는지다. 제한된 응시자를 상대하는 수시모집에서도 1명 당 면접시간이 20분을 넘기기 어려웠는데, 수백명이 몰려드는 정시모집에서 대학당국이 말하는 ‘심층면접’을 하려면 일주일이 걸릴지 열흘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생활과학대학의 이모 교수는 물리적으로 시간에 쫓기다 보면 외형적인 것에 점수가 좌우될 위험이 있다며 면접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면접을 하면서 당혹스러운 것은 외모에서부터 도농(都農) 간, 빈부 간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애써 그런 점을 보려 하지 않아도 헌칠하고 깔끔한 외모에 세련된 옷차림, 고급스러운 단어 선택, 자신감 넘치는 태도 등이 먼저 눈에 들어와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면접 당시에는 몰라도 나중에 보면 이런 아이들은 대개 부모와 함께 외국생활 경험이 있거나 부모의 지위나 학력이 높아 좋은 가정환경의 혜택을 충분히 누린 경우다. 처음부터 얼굴에 엘리트라고 쓰여 있는 학생들이다. 그러니 남루한 옷차림, 어눌한 말투, 부족한 표현력을 지닌 농어촌지역 학생들로서는 애당초 이런 아이들과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교수들 중 ‘중상류층 여학생’이 면접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구김살 없이 넉넉하게 자란 아이들 특유의 예의바르면서도 발랄한 태도,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솜씨 면에서 여학생들이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역시 ‘외모에서 묻어나오는 부유함이 호감을 주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우려해 대학측은 교수들에게 “서울 여학생의 똑 부러지는 태도와 경상도 ‘머스마’의 어눌한 말씨를 있는 그대로 비교하지 말고 말의 내용으로 판단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유영제 교수는 “2~3분 면접이라면 첫인상이 중요하지만 5분을 넘어가면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국문과)도 “활달하지 못해도 예의바르고 사려깊은 태도가 더 호감을 끌 수 있다”면서 “면접을 통해 보는 것은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해한 바를 조리있게 또 진지하게 표현하는 태도이지 외모나 순발력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환경의 혜택은 학생의 외양뿐만 아니라 답변의 질도 좌우한다. 2년 전 서울대 외교학과 면접(수시모집)에서 학과 교수 6명으로부터 전원 만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오문경양의 경우, 고등학교 1~2학년 때의 호주유학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목표로 조기유학을 떠나 호주의 고등학교에서 역사 고고학 미술 등 관심학문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호주 전국 고교생 논문 콘테스트에서 2등을 차지하는 등 다양한 자기계발 기회를 가져 면접관의 어떤 질문에도 풍부한 사례를 들어가며 당당하게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대는 내년부터 농어촌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농어촌특별전형’을 실시할 예정이지만, 이것으로 도농 간 혹은 빈부 간 ‘문화적 격차’를 어느 정도나 해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을 쉽게 출제한다고 하지만 거꾸로 부유층에 혜택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논술이 당락을 좌우한다니까 고액논술과외가 성행했으니 고액 면접과외가 나올 것은 뻔한 일 아닌가. 대학은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이지 완성된 엘리트를 뽑는 곳이 아니다. 면접은 기본적인 학업수행능력과 적성 여부만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은 동점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더 완벽할 것을 요구하는 면접이 됐다.”(김영일·중앙교육진흥연구소 평가실장)

    그러나 방법이 무엇이든 서울대는 우수학생을 선별하기 위해 면접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수능시험이 쉬워지면서 서울대 학생들의 실력도 크게 떨어졌다. 인문계 학생들이 전문서적 독해를 못하고, 자연계 학생 중에 미분을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수능으로는 변별력이 없어 옥석을 가릴 수 없고 본고사 얘기는 꺼낼 입장이 아니다. 결국 면접으로 가려야 하는데 아직 방법을 검토중이다.”(유영제)

    서울대가 현재의 수능보다 난이도를 높인 제2의 수능을 조기에 도입(교육부는 2005년께로 검토 중)하자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알고 보면 면접 딜레마로부터 탈출구를 찾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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