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전남 A군청 사회복지전문요원 김모씨(38)는 최근 한 할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9월말 군청을 찾아와 “의사, 약사에게 무시당하는 게 싫어 그냥 죽겠노라”며 넋두리를 펼치던 의료보호대상자 이모(75) 할머니였다.
노환이 겹쳐 약에 의존해 살던 할머니는 이날 평소 다니던 광주의 모 종합병원에서 의료보호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먼길을 되돌아와 군 보건소에서 처방전을 받았으나 이번엔 인근 약국에서 조제를 기피했다. 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주선으로 며칠분 약을 간신히 구해 돌아갔지만 그것이 이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의료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버거워
의약분업 이후 저소득층은 설움이 더 심해졌다. 약국은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조제를 기피하고, 노인과 저소득층의 상대적 의료비 부담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늘어났다. 의약분업은 일반 시민들의 ‘약물 오-남용’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약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아간 측면이 있다. 저소득층에겐 ‘준비 안된’ 의약분업의 ‘그늘’이 너무도 큰 것.
국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는 의료보호대상자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약제비 지급이 연체되면서 처방전을 들고도 대다수의 약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보건소가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되면서 7월1일 이후 의료보호대상자들도 일반인들처럼 보건소, 병-의원 등에서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하고 있다. 전액 무료(거택보호)거나 1500원(자활)만 내면 처방과 조제를 받을 수 있는 사실은 전과 바뀐 것이 없다. 하지만 약사가 의료보호환자에게 약을 지급한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제비를 지급하라고 통보해도 각 지자체는 의료보호비를 지급할 예산이 없다. 약제비 지급이 늦어지면서 약국들은 의료보호환자들을 거부하기 위한 ‘핑계’를 마련하느라 전전긍긍이다.
서울대병원 전임의 정모씨(35)는 지난 8월30일 신경외과 외래 의료보호 간질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나간 뒤 약을 구할 수가 없어 되돌아오는 사례가 빈발하자 전공의들과 함께 직접 병원 앞 약국 여섯 곳을 방문했다. “약이 떨어졌다” “최근 약의 생산이 중단됐다” “재고가 남아 있지 않다” 등의 반응 일색이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정씨는 외래진료 차트에서 당일 처방전을 받아간 일반의료보험 간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약 구입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일반보험 환자들은 모두 이들 약국에서 같은 약을 비슷한 시간대에 구입해 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의를 하는 정씨에게 돌아온 약사들의 항변은 “우린 땅 파서 장사하냐”는 말이었다.
약사들은 이런 사태를 빚은 모든 책임을 보건복지부에 돌리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의료보호비 체불액 2354억원을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약분업을 강행했기 때문이라는 것. 복지부는 올해 전국 의료보호대상자 194만명의 의료보호비 예산으로 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복지부에서 지급된 올해 의료보호 예산으로 지난해 체불액을 막기에 급급했고, 올해 지급해야 할 의료보호비는 다시 연체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중이다. 일반 의료보험환자는 한달 안에 약재비 결재가 끝나는 반면, 의료보호환자는 약을 조제해 주고도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가 된 것.
실제로 서울시의 각 구청을 포함한 전국의 어느 지자체도 약국의 7월분 의료보호환자 약제비를 결제해 준 곳이 없다. 대부분의 약사들은 올해 체불액에 대한 추가예산지급이 늦어지고 있는 데다, 올해 세 차례 의료보험수가가 인상됐음에도 의료보호비 예산 자체가 증액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약품 판매 후 짧게는 6∼7개월, 길면 1년이 지나야 보호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약분업으로 약국 경영이 어려워지자 제약업체들은 현찰이 아니면 약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만성질환에 따른 장기복용환자가 대부분인 의료보호환자들을 계속 받다 보면 약국들은 약품대금의 이자 부담 때문에 파산할 것이 자명하다.”
서울시 강남구의 약사 이모씨(53)는 현재 약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약품도매상들은 의약분업과 관계없이 병-의원에는 어음거래를 주로 하는 반면, 약국들의 경우는 도산 부담과 약품 반품 우려 때문에 현찰 거래를 고집하고 있다. 약사들로서는 보호비 지급이 늦어지면 그만큼의 이자 부담을 꼼짝없이 떠안아야 하는 형편이다.
복지부 보험관리과 김학진씨는 “약사들의 조제 기피로 인한 민원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재정 형편상 약제비 체불액이 언제 지자체에 지급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체불액이 정리된다 하더라도 수가 인상으로 인한 추가 체불 발생이 불 보듯 뻔하다”고 의료재정의 빈약함을 한탄했다.
의료보호대상자는 아니지만 하루 몇천원의 진료비조차 부담스런 저소득층도 준비 소홀한 의약분업의 희생양이기는 마찬가지다. 의약분업 시작 전 복지부는 “의약분업으로 인한 환자 본인 부담금의 증가는 절대 없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이 공언은 의약분업 직후인 7월과 9월의 두 차례 의료보험수가 인상으로 완전한 거짓말이 됐다.
의약분업 이전 일반 병-의원에서 처방과 약을 모두 받고 환자가 지불하던 초진료는 3200원(주사제 포함, 약품 3일분 기준)이었다. 복지부는 의약분업 이후에도 일반 환자의 초진료 본인부담은 병-의원의 진료비 2200원(총진료비 1만2000원 이하)과 약국의 약제비 1000원(총약제비 8000원 이하)을 합해 3200원을 부담하기 때문에 바뀐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보수가 인상 후 병-의원 총진료비의 경우 주사제 처방을 제외한 의사진료비 8400원과 약품 처방료 3956원(종별가산율 15% 포함)만 합해도 1만2356원이 된다. 총진료비가 1만2000원이 넘는 환자의 경우 30%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는 규정에 따라 병-의원 진료비 부담금만 3600원이 된다. 여기에 약국 약제비 부담금 1000원을 합치면 전체 환자부담금은 4600원으로, 결국 환자들은 의약분업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오른 1400원의 초진료를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 됐다. 주사제를 투여하거나 간단한 검사가 추가되면 감기, 배탈 환자에게도 6000원 이상의 부담금이 발생한다. 준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본임부담금 비율(총진료비 1만2000원 이상)이 각각 40%와 55%인 점을 고려하면 2, 3차 기관을 찾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진료비 부담의 증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도시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농어촌 지역은 의약분업 후 노인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전국 100여개 보건소에서 시행해 오던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무료 진료와 투약이 폐지되면서 벌이가 없는 노인들은 약국 한번 가려면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각 지자체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이들 노인의 투약비 지원을 중단했다.
강원도 홍천군에 사는 김모씨(72)는 “보건소에서 무료였던 관절염약 한 달치를 사는데 약국에서 3만6000원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약을 끊은 상태”라며 “의약분업 논의가 시작된 것이 언젠데 정부가 노인에 대한 무료투약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직무유기”라고 흥분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대안 없이 의약분업을 시작한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가진 사람만 치료하겠다는 의사, 약사들의 태도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미 의료인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죠. 경영난이 심하다는 것이 저소득층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성미 사무차장은 저소득층 환자 거부에 대한 의료계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다. 무책임한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저소득층 환자들의 한숨과 질병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전남 A군청 사회복지전문요원 김모씨(38)는 최근 한 할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9월말 군청을 찾아와 “의사, 약사에게 무시당하는 게 싫어 그냥 죽겠노라”며 넋두리를 펼치던 의료보호대상자 이모(75) 할머니였다.
노환이 겹쳐 약에 의존해 살던 할머니는 이날 평소 다니던 광주의 모 종합병원에서 의료보호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먼길을 되돌아와 군 보건소에서 처방전을 받았으나 이번엔 인근 약국에서 조제를 기피했다. 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씨의 주선으로 며칠분 약을 간신히 구해 돌아갔지만 그것이 이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의료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버거워
의약분업 이후 저소득층은 설움이 더 심해졌다. 약국은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조제를 기피하고, 노인과 저소득층의 상대적 의료비 부담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늘어났다. 의약분업은 일반 시민들의 ‘약물 오-남용’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저소득층에게는 ‘약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조차 빼앗아간 측면이 있다. 저소득층에겐 ‘준비 안된’ 의약분업의 ‘그늘’이 너무도 큰 것.
국가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는 의료보호대상자들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약제비 지급이 연체되면서 처방전을 들고도 대다수의 약국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보건소가 의약분업 대상에 포함되면서 7월1일 이후 의료보호대상자들도 일반인들처럼 보건소, 병-의원 등에서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하고 있다. 전액 무료(거택보호)거나 1500원(자활)만 내면 처방과 조제를 받을 수 있는 사실은 전과 바뀐 것이 없다. 하지만 약사가 의료보호환자에게 약을 지급한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약제비를 지급하라고 통보해도 각 지자체는 의료보호비를 지급할 예산이 없다. 약제비 지급이 늦어지면서 약국들은 의료보호환자들을 거부하기 위한 ‘핑계’를 마련하느라 전전긍긍이다.
서울대병원 전임의 정모씨(35)는 지난 8월30일 신경외과 외래 의료보호 간질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나간 뒤 약을 구할 수가 없어 되돌아오는 사례가 빈발하자 전공의들과 함께 직접 병원 앞 약국 여섯 곳을 방문했다. “약이 떨어졌다” “최근 약의 생산이 중단됐다” “재고가 남아 있지 않다” 등의 반응 일색이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정씨는 외래진료 차트에서 당일 처방전을 받아간 일반의료보험 간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약 구입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일반보험 환자들은 모두 이들 약국에서 같은 약을 비슷한 시간대에 구입해 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항의를 하는 정씨에게 돌아온 약사들의 항변은 “우린 땅 파서 장사하냐”는 말이었다.
약사들은 이런 사태를 빚은 모든 책임을 보건복지부에 돌리고 있다. 복지부가 지난해 의료보호비 체불액 2354억원을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약분업을 강행했기 때문이라는 것. 복지부는 올해 전국 의료보호대상자 194만명의 의료보호비 예산으로 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각 지자체는 복지부에서 지급된 올해 의료보호 예산으로 지난해 체불액을 막기에 급급했고, 올해 지급해야 할 의료보호비는 다시 연체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중이다. 일반 의료보험환자는 한달 안에 약재비 결재가 끝나는 반면, 의료보호환자는 약을 조제해 주고도 언제 돈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가 된 것.
실제로 서울시의 각 구청을 포함한 전국의 어느 지자체도 약국의 7월분 의료보호환자 약제비를 결제해 준 곳이 없다. 대부분의 약사들은 올해 체불액에 대한 추가예산지급이 늦어지고 있는 데다, 올해 세 차례 의료보험수가가 인상됐음에도 의료보호비 예산 자체가 증액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약품 판매 후 짧게는 6∼7개월, 길면 1년이 지나야 보호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의약분업으로 약국 경영이 어려워지자 제약업체들은 현찰이 아니면 약을 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만성질환에 따른 장기복용환자가 대부분인 의료보호환자들을 계속 받다 보면 약국들은 약품대금의 이자 부담 때문에 파산할 것이 자명하다.”
서울시 강남구의 약사 이모씨(53)는 현재 약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약품도매상들은 의약분업과 관계없이 병-의원에는 어음거래를 주로 하는 반면, 약국들의 경우는 도산 부담과 약품 반품 우려 때문에 현찰 거래를 고집하고 있다. 약사들로서는 보호비 지급이 늦어지면 그만큼의 이자 부담을 꼼짝없이 떠안아야 하는 형편이다.
복지부 보험관리과 김학진씨는 “약사들의 조제 기피로 인한 민원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정부재정 형편상 약제비 체불액이 언제 지자체에 지급될지는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체불액이 정리된다 하더라도 수가 인상으로 인한 추가 체불 발생이 불 보듯 뻔하다”고 의료재정의 빈약함을 한탄했다.
의료보호대상자는 아니지만 하루 몇천원의 진료비조차 부담스런 저소득층도 준비 소홀한 의약분업의 희생양이기는 마찬가지다. 의약분업 시작 전 복지부는 “의약분업으로 인한 환자 본인 부담금의 증가는 절대 없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이 공언은 의약분업 직후인 7월과 9월의 두 차례 의료보험수가 인상으로 완전한 거짓말이 됐다.
의약분업 이전 일반 병-의원에서 처방과 약을 모두 받고 환자가 지불하던 초진료는 3200원(주사제 포함, 약품 3일분 기준)이었다. 복지부는 의약분업 이후에도 일반 환자의 초진료 본인부담은 병-의원의 진료비 2200원(총진료비 1만2000원 이하)과 약국의 약제비 1000원(총약제비 8000원 이하)을 합해 3200원을 부담하기 때문에 바뀐 게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의보수가 인상 후 병-의원 총진료비의 경우 주사제 처방을 제외한 의사진료비 8400원과 약품 처방료 3956원(종별가산율 15% 포함)만 합해도 1만2356원이 된다. 총진료비가 1만2000원이 넘는 환자의 경우 30%의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는 규정에 따라 병-의원 진료비 부담금만 3600원이 된다. 여기에 약국 약제비 부담금 1000원을 합치면 전체 환자부담금은 4600원으로, 결국 환자들은 의약분업 이전보다 절반 가까이 오른 1400원의 초진료를 더 부담해야 하는 셈이 됐다. 주사제를 투여하거나 간단한 검사가 추가되면 감기, 배탈 환자에게도 6000원 이상의 부담금이 발생한다. 준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본임부담금 비율(총진료비 1만2000원 이상)이 각각 40%와 55%인 점을 고려하면 2, 3차 기관을 찾는 만성질환자의 경우 진료비 부담의 증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도시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농어촌 지역은 의약분업 후 노인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전국 100여개 보건소에서 시행해 오던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무료 진료와 투약이 폐지되면서 벌이가 없는 노인들은 약국 한번 가려면 며느리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각 지자체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이들 노인의 투약비 지원을 중단했다.
강원도 홍천군에 사는 김모씨(72)는 “보건소에서 무료였던 관절염약 한 달치를 사는데 약국에서 3만6000원 정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약을 끊은 상태”라며 “의약분업 논의가 시작된 것이 언젠데 정부가 노인에 대한 무료투약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직무유기”라고 흥분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대안 없이 의약분업을 시작한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가진 사람만 치료하겠다는 의사, 약사들의 태도는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미 의료인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죠. 경영난이 심하다는 것이 저소득층 환자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성미 사무차장은 저소득층 환자 거부에 대한 의료계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다. 무책임한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저소득층 환자들의 한숨과 질병은 깊어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