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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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은 미국을 비난했다

전두환 공세에 글라이스틴 美대사 발끈…비밀전문 상당부분 공백, 오고간 대화 궁금

  • 입력2005-06-15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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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은 미국을 비난했다
    1979년 12·12 사건에서 가장 긴장된 순간은 신군부가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을 연행해 가는 장면이다. 한국 역사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한미 관계사에서 볼 때는 이야기가 사뭇 달라진다.

    육군본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직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는 미 8군 사령관 위컴의 전화를 받고 미 8군 벙커로 개인 승용차를 몰고 가 위컴을 만난다. 저녁 7시30분이었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이 1999년에 각각 펴낸 회고록에 따르면, 주한 미 대사관이나 미 8군 정보망은 12·12 사건에 관해서는 말 그대로 ‘무장해제’ 상태였다.

    12월12일자(미 워싱턴 시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비밀문서 두 장(1997년 9월 비밀 해제)은 당시 미국이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안보회의 참모진 가운데 한 사람인 닉 플랫이 브렌진스키 안보담당 보좌관에게 보낸 비망록이다.

    ‘글라이스틴 대사와의 전화 통화에 의하면, 반란자들(insurgents)은 군부 내 인사를 교체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한정시키는 데 동의한 것으로 보임.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를 조심스러워하고는 있지만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의 상황은 군사 쿠데타로 볼 수 있음. 새 대통령(최규하)은 너무 수동적이라 위협을 당하고 있지는 않으나, 강경파로 알려진 전두환의 손에 권력이 쥐어져 있는 것만은 분명함.’

    이 비밀 전문의 밑 여백에는 문서 내용에 동의를 표한다는 뜻의 ‘OK’ 친필 회답과 함께 수신자 브렌진스키의 ‘ZB’ 이니셜 서명이 적혀 있다. 이 두 장의 문서 내용대로라면 12·12 이튿날인 13일(미 워싱턴은 12월12일) 신군부의 입장과 요구 사항이 이미 미국에 전달됐음을 알 수 있다. 즉 글라이스틴 대사와 신군부 간의 공식 접촉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미 비공식 경로를 통해 신군부는 미국과 접촉하고 있었으며, 미국도 나름대로 사태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글라이스틴 대사와 신군부의 리더 전두환 장군의 공식적인 첫 만남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한미사에서 가장 민감하게 다뤄지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 장군을 만나야 하는지, 그럴 필요가 있다면 시기를 언제로 잡아야 하는지 등의 문제를 놓고 워싱턴과 긴밀한 조율을 거쳐 전두환 장군을 만나게 된다. 신군부와 미국의 공식적인 첫 접촉이었다. 12월14일의 일이다. 장소는 정동의 미 대사관저.

    전두환 장군은 40명의 무장 계엄군과 경호원을 대동하고 글라이스틴 대사의 관저를 찾았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때의 상황을 지난해에 펴낸 자신의 회고록(‘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에 상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당시 전두환 장군이 한옥 대사관저로 개선장군처럼 성큼성큼 들어섰다고 묘사하고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12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회고록 말미에 두 장의 비밀 해제된 국무부 문서를 부록으로 첨가해 놓았다. 서울에서 워싱턴의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앞으로 타전한 12월13일자 문서와, 밴스 장관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보낸 12월16일자 문서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 장군을 만났던 14일의 기록은 회고록에서 빠져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4일 오후 미 대사관저에서 전두환 장군을 만난 뒤 총 8쪽에 달하는 장문의 비밀 전문을 워싱턴으로 타전했다. 전두환 장군 면담 보고서인 이 문서(12월15일자)는 2급 비밀(Secret)로 분류되어 있으며, 모두 12개항으로 되어 있다.

    ‘본인이 전두환 장군과 만난 사실을 전두환 그룹은 우리가 그들의 정권 장악을 합리화해주는 표시로 활용할 위험이 있음. 여러 장치를 통해 그런 위험성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봄. 우리측의 우려를 신속 단호하게 직접, 최소한 지금은 한국군을 장악하고 있는 전장군과 그 그룹에 전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음. 전두환이 우리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됨.’

    이 전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장군과 그 그룹을 ‘최소한 지금은 한국군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대목이다. 전두환 장군이 한국군을 장악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사태의 돌변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날 전투복을 입고 나타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전한 미국의 입장을 비밀 전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2월12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깊은 우려를 전달했음. 그런 행동은 한국군 내에 위험한 전례를 남겼으며, 북한의 위협이라는 커다란 위험 부담을 안겼고, 내적으로는 최규하 정부가 순차적으로 정치 자유화 과정을 밟아가는 과정에 의문을 품게 했으며, 외적으로는 안정이라는 문제에도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음.’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시각만 전달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문서에 따르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강한 어조로 전두환 장군에게 미국측의 요구 사항을 완곡한 외교 용어이긴 하지만 명확하게 전달했다.

    ‘본인은 계속해서 다음 사항을 강조했음. 한국은 민간 정부를 유지해야 하며, 사태 발생 때문에 극히 불안해하는 미 군부와 기업인들의 지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음. 전두환은 사태의 의미에 대한 본인의 경고성 우려를 귀기울여 들었음.’

    이 비밀 전문에서 밝혀진 사실 가운데 하나는, 두 사람간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한 얘기가 오갔다는 것이다. 전두환 장군이 먼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관이 되어 있다고 공격했다. 이때의 상황을 글라이스틴 대사는 비밀 전문의 11번째 항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전두환은 ×××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고 말했음. 본인은 우리측이 10·26 사건에는 어떤 관련도 없으며, 박대통령 시해로 인해 정의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호하게 강경하게 전달했음.’ (××× 부분은 비밀 해제되지 않은 부분임:필자 주)

    글라이스틴 대사는 자신의 회고록에도 이때의 상황을 짧막하게 묘사해 놓았다.

    ‘전두환 장군과의 만남에서 내가 단 한 차례 화를 냈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은, 미국이 박대통령 시해 사건에 관련되어 있다고 우리를 근거 없이 비난하는 전장군의 콧대를 꺾어놓았을 때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2월15일 하루 동안에 총 3통의 비밀 전문을 워싱턴에 띄웠다. 두 장짜리의 짤막한 한 비밀 전문에서는 신임 주영복 국방장관과 노재현 전 국방장관의 군내 위상과 향후 영향력 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새 내각에서 중요한 점은 주영복 전 공군 합참의장이 새로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임. 주는 뛰어난 공군 장군이었으며 미국에 우호적임. 그러나 확고한 결의를 갖고 수완을 발휘해 군부의 주류를 관리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음. 육군에 인맥이 없는 탓에, 최소한 당분간은 12월12일 사태를 주도한 터프한 녀석(tough cookies)들에 의해 통제될 육군을 잘 제어할 것 같지는 않음.’

    ‘노재현 전 국방장관은 무엇을 잘못했든지 간에 육군 조직 내에 말발이 먹히는 사람이었으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버팀목이었음.’

    글라이스틴 대사의 비밀 전문을 포함해 12·12 사건을 다룬 미 행정부 문서들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12·12 사건에 대해 정확한 명칭을 붙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12월12일의 사태’ ‘한국 사태’ ‘한국에서의 변동’ ‘이벤트’ ‘발생한 일’(what happened) 등으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이며, 닉 플랫이 브렌진스키에게 올린 내부 비망록에서만 ‘한국의 쿠(coup)’ ‘군사 혁명’(military coup)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미 대사관저에서 전두환 장군과 2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기록한 12월14일자 비밀 전문은 곳곳이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 1993년 국무부의 비밀 해제 여부 검토 작업 당시 비밀 해제에서 누락된 부분들이다. 대부분이 주로 전두환 장군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자신의 견해를 밝힌 대목들이다.

    특히 비밀 문서의 앞뒤 문맥으로 유추해 볼 때, 당시 계엄군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 장군이 박정희 시해 사건 수사 결과를 자신의 시각에서 글라이스틴에게 밝힌 부분은 비밀 해제에서 여지없이 누락돼 흰 공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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