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물위에 사는 것 같아요.”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성남리 주민들은 요즘 땅이 무너질까 겁난다. 최근 몇 년 동안 멀쩡한 땅이 지하로 자취를 감추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관계당국의 대처가 늦어지자 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하고 있다.
이 마을 윤형량씨(70)는 땅 꺼짐 현상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지난 1월28일 새벽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윤씨의 집 창고 밑바닥이 거짓말처럼 땅 밑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고 당시 윤씨 부부는 창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잠을 자고 있어 참변은 가까스로 면했다. 그러나 건물 지반 62㎡ 중 35㎡ 가량이 지하 19m 깊이로 붕괴됐다. 창고 안에 있던 참깨 10가마와 선풍기 등 가전제품이 창고건물 일부와 함께 땅 밑으로 사라졌다.
이번에 무너진 윤씨네 창고자리는 이미 두 차례나 내려앉은 전례가 있다. 지난 93년 2월에는 2m쯤 침하했고 지난 95년 7월에는 7m나 꺼져 내렸다. 윤씨는 “무너진 창고자리가 지난 95년까지는 안방이었다”며 “그때 창고로 바꾸지 않고 안방으로 계속 사용했다면 지금 불귀의 객이 됐을 것”이라고 아찔해했다.
윤씨의 집은 사고 이후 ‘재해위험지구’라는 팻말만 나붙은 채 집 구실을 못하고 있다. 부엌과 목욕탕, 방 모두 벽이 갈라져 기거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붕괴사고 이후 무안군청이 실시하기로 했던 무안읍 전체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은 군 예산이 없어 계속 연기되었다. 군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순찰활동을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자체조사에 나선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 오준성 교수(환경공학과)는 “무너진 윤씨의 집 지하에서 석회동굴과 비슷한 큰 구멍 2개를 발견하고도 무안군청이 인명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이번 사고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며 군청의 ‘굼벵이식’ 대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는 조사를 토대로 “성남리를 포함한 무안읍 전체 지하지반이 이격이 많은 단층구조인 데다, 이격을 메우고 있던 지하수가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지하구조가 텅 빈 상태일 확률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오교수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면담을 통해 이 지역 논밭에도 지반 함몰현상이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만 함몰지역이 논밭인 관계로 주민들이 땅 꺼짐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흙 되메우기 작업만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간 땅 꺼짐 현상은 건물에도 이어졌다. 무안군청 소재지인 무안읍 성남리 지역에서만 9년간 8회의 지반함몰이 있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지난 92년 4월 성남리 이동수씨(64)의 국제기계 사무실 바닥이 꺼졌고, 8월에는 나기만씨(72)의 집 뒷마당이 6, 7m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 다음해인 93년 2월에는 윤형량씨의 집 안방에 일부 함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함몰된 부분을 자체 복구한 채 군청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주민들이 지반함몰 현상의 심각성에 눈뜨기 시작한 시점은 95년 7월 윤형량씨의 집 안방이 깊이 7m 가량 내려앉으면서부터. 또 같은 시기 인근 나승봉씨(49) 집 안방 5평이 깊이 4m 정도로 함께 꺼져버리자 주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내 집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주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주민들은 그때서야 군청에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군청측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달리 대책이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군에서 95년 당시에도 분명 무슨 조사란 걸 했지요. 몇 군데 땅을 파서 흙을 조사했는데 그 뒤에는 감감무소식이었어요.” 성남리 주민들이 무안군청의 ‘안전불감증’에 분통을 터뜨리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산 2000만원을 들여 지반함몰의 심각성을 밝혀내고도 군청이 이를 묵살해 버렸다는 것이다.
무안군청은 실제로 지난 95년 10월 전남대 공업기술연구소와 함께 지질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조사 결과는 “작은 규모의 단층운동 영향이 있고 지하수 개발과 이로 인한 석회암질의 용해가 사고원인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다. 전남대 환경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와 거의 흡사한 것이었다.
무안군청은 조사 결과에 아랑곳없이 지반 보강작업이나 정밀 안전진단 등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다만 주민들에게 가능한 한 지하수를 쓰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군청의 이런 부탁을 들어주는 주민들도 없었다. 성남리 지반함몰 사고 인근 지역에 있는 중대형 지하수 관정은 모두 7개소. 주민들은 이 관정들을 통해 하루 최고 150톤의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지하수를 쓰지 말라는 것은 읍내 목욕탕이나 음식점 업주에게는 장사를 그만두라는 말과 같다. 업자들은 “정확한 근거자료나 대책도 없이 지하수를 사고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군청에 항의했다.
올 5월 들어 주민들의 대책 요구가 극에 달하자, 군청은 사태의 심각성을 겨우 인식하기 시작했다. 군청은 우선 성남리 지역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한 뒤 뒤늦게 전남도청과 행정자치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와 농업기반공사 전남지사도 정밀안전진단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군청은 우선 기초지반의 침하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성남리를 포함한 무안읍 전체 지역 200헥타아르(60여만평)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기로 하고, 10억2000만원의 진단비 지원을 행자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행자부 재해대책과는 지난 6월30일 회신을 통해 ‘2000년 예산은 이미 배정되어 지원이 불가능한 실정임’을 들어 군청의 예산지원 건의에 대해 즉시 ‘불가판정’을 내렸다.
행자부 재해대책과와 무안군 사이에 입씨름이 시작됐다. 무안군에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재해위험지구 정비비밖에 없는데, 정비비는 이미 1월에 모두 배분해서 한푼도 없다는 것이 행자부의 주장이다. 이에 무안군은 “실제 재해위험지구에 배당되어야 할 정비비가 당장 급할 때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행자부와 무안군 간에 말싸움이 오가는 동안 또 한번의 지반 침하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지난 95년 안방이 꺼진 성남리 나승봉씨 집이 이번에는 뒷마당 일부가 7월3일 3.5m 깊이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자 행자부 재해대책과는 한발 양보해 “원인규명을 위한 안전진단비 지원의 시급함은 인정하나 당장은 지원이 불가능한 실정이니 사업비가 추가 확보되는 대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원 불가’가 ‘최대한 빠른 시기에 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결국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낸 건 주민이었다. 나씨 집 지반 침하사고 이후 성남리 주민들은 안전진단비 지원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이를 행자부 교부세과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재해지원비 형식이 아닌 특별교부세 방식으로 10억원 중 5억원을 9월 말까지 지원키로 한 것이다. 무안군은 교부세가 도착하는 대로 무안읍 전체 200헥타아르 중 성남리 지역부터 정밀안전진단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고향을 떠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애매한 조사 결과를 받으려 값비싼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안군청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이 그 어느 때보다 따갑다. 무안읍 주민들은 안전진단이 진행되는 내년까지 또 어느 집이 내려앉을지 초조해하고 있다.
이 마을 윤형량씨(70)는 땅 꺼짐 현상의 최대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지난 1월28일 새벽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윤씨의 집 창고 밑바닥이 거짓말처럼 땅 밑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고 당시 윤씨 부부는 창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에서 잠을 자고 있어 참변은 가까스로 면했다. 그러나 건물 지반 62㎡ 중 35㎡ 가량이 지하 19m 깊이로 붕괴됐다. 창고 안에 있던 참깨 10가마와 선풍기 등 가전제품이 창고건물 일부와 함께 땅 밑으로 사라졌다.
이번에 무너진 윤씨네 창고자리는 이미 두 차례나 내려앉은 전례가 있다. 지난 93년 2월에는 2m쯤 침하했고 지난 95년 7월에는 7m나 꺼져 내렸다. 윤씨는 “무너진 창고자리가 지난 95년까지는 안방이었다”며 “그때 창고로 바꾸지 않고 안방으로 계속 사용했다면 지금 불귀의 객이 됐을 것”이라고 아찔해했다.
윤씨의 집은 사고 이후 ‘재해위험지구’라는 팻말만 나붙은 채 집 구실을 못하고 있다. 부엌과 목욕탕, 방 모두 벽이 갈라져 기거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붕괴사고 이후 무안군청이 실시하기로 했던 무안읍 전체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은 군 예산이 없어 계속 연기되었다. 군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순찰활동을 강화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자체조사에 나선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 오준성 교수(환경공학과)는 “무너진 윤씨의 집 지하에서 석회동굴과 비슷한 큰 구멍 2개를 발견하고도 무안군청이 인명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이번 사고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며 군청의 ‘굼벵이식’ 대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당시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는 조사를 토대로 “성남리를 포함한 무안읍 전체 지하지반이 이격이 많은 단층구조인 데다, 이격을 메우고 있던 지하수가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지하구조가 텅 빈 상태일 확률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오교수는 마을 주민들에 대한 면담을 통해 이 지역 논밭에도 지반 함몰현상이 지난 10여년 동안 계속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만 함몰지역이 논밭인 관계로 주민들이 땅 꺼짐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흙 되메우기 작업만 계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간 땅 꺼짐 현상은 건물에도 이어졌다. 무안군청 소재지인 무안읍 성남리 지역에서만 9년간 8회의 지반함몰이 있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지난 92년 4월 성남리 이동수씨(64)의 국제기계 사무실 바닥이 꺼졌고, 8월에는 나기만씨(72)의 집 뒷마당이 6, 7m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 다음해인 93년 2월에는 윤형량씨의 집 안방에 일부 함몰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함몰된 부분을 자체 복구한 채 군청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
주민들이 지반함몰 현상의 심각성에 눈뜨기 시작한 시점은 95년 7월 윤형량씨의 집 안방이 깊이 7m 가량 내려앉으면서부터. 또 같은 시기 인근 나승봉씨(49) 집 안방 5평이 깊이 4m 정도로 함께 꺼져버리자 주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내 집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주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주민들은 그때서야 군청에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군청측은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달리 대책이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군에서 95년 당시에도 분명 무슨 조사란 걸 했지요. 몇 군데 땅을 파서 흙을 조사했는데 그 뒤에는 감감무소식이었어요.” 성남리 주민들이 무안군청의 ‘안전불감증’에 분통을 터뜨리는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예산 2000만원을 들여 지반함몰의 심각성을 밝혀내고도 군청이 이를 묵살해 버렸다는 것이다.
무안군청은 실제로 지난 95년 10월 전남대 공업기술연구소와 함께 지질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조사 결과는 “작은 규모의 단층운동 영향이 있고 지하수 개발과 이로 인한 석회암질의 용해가 사고원인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다. 전남대 환경연구소의 최근 조사 결과와 거의 흡사한 것이었다.
무안군청은 조사 결과에 아랑곳없이 지반 보강작업이나 정밀 안전진단 등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다만 주민들에게 가능한 한 지하수를 쓰지 말라고 부탁한 것이 전부였다.
물론, 군청의 이런 부탁을 들어주는 주민들도 없었다. 성남리 지반함몰 사고 인근 지역에 있는 중대형 지하수 관정은 모두 7개소. 주민들은 이 관정들을 통해 하루 최고 150톤의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지하수를 쓰지 말라는 것은 읍내 목욕탕이나 음식점 업주에게는 장사를 그만두라는 말과 같다. 업자들은 “정확한 근거자료나 대책도 없이 지하수를 사고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군청에 항의했다.
올 5월 들어 주민들의 대책 요구가 극에 달하자, 군청은 사태의 심각성을 겨우 인식하기 시작했다. 군청은 우선 성남리 지역을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한 뒤 뒤늦게 전남도청과 행정자치부에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전남대학교 환경연구소와 농업기반공사 전남지사도 정밀안전진단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군청은 우선 기초지반의 침하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성남리를 포함한 무안읍 전체 지역 200헥타아르(60여만평)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기로 하고, 10억2000만원의 진단비 지원을 행자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행자부 재해대책과는 지난 6월30일 회신을 통해 ‘2000년 예산은 이미 배정되어 지원이 불가능한 실정임’을 들어 군청의 예산지원 건의에 대해 즉시 ‘불가판정’을 내렸다.
행자부 재해대책과와 무안군 사이에 입씨름이 시작됐다. 무안군에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재해위험지구 정비비밖에 없는데, 정비비는 이미 1월에 모두 배분해서 한푼도 없다는 것이 행자부의 주장이다. 이에 무안군은 “실제 재해위험지구에 배당되어야 할 정비비가 당장 급할 때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박했다.
행자부와 무안군 간에 말싸움이 오가는 동안 또 한번의 지반 침하사고가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지난 95년 안방이 꺼진 성남리 나승봉씨 집이 이번에는 뒷마당 일부가 7월3일 3.5m 깊이로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자 행자부 재해대책과는 한발 양보해 “원인규명을 위한 안전진단비 지원의 시급함은 인정하나 당장은 지원이 불가능한 실정이니 사업비가 추가 확보되는 대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원 불가’가 ‘최대한 빠른 시기에 지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결국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낸 건 주민이었다. 나씨 집 지반 침하사고 이후 성남리 주민들은 안전진단비 지원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이를 행자부 교부세과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재해지원비 형식이 아닌 특별교부세 방식으로 10억원 중 5억원을 9월 말까지 지원키로 한 것이다. 무안군은 교부세가 도착하는 대로 무안읍 전체 200헥타아르 중 성남리 지역부터 정밀안전진단을 시작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고향을 떠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애매한 조사 결과를 받으려 값비싼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무안군청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이 그 어느 때보다 따갑다. 무안읍 주민들은 안전진단이 진행되는 내년까지 또 어느 집이 내려앉을지 초조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