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의 주부 박모씨(충남 서산시 운산면)는 최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위해 컴퓨터 한 대를 장만했다.
생산직 근로자인 남편 김모씨와 애들이 없는 낮 시간 동안 그녀는 재미 삼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 ‘채팅사이트’에 들어가게 됐다. 그녀가 처음 만난 상대는 충남 온양시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남성 A씨.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마음이 이끌렸다. 박씨는 차츰 A씨와의 채팅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만 하다가 나중엔 저녁시간, 새벽 가릴 것 없이 A씨와 채팅을 했다. 남편이 화면을 들여다보려 하면서부터 그녀에겐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방문을 걸어잠그는 버릇까지 생겼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마침내 A씨를 만났다. 소위 ‘번개’를 한 것이다. 그동안의 대화로 이미 서로를 잘 알게 된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이후 그녀는 온양시로 외출이 잦아졌다. 택시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그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채팅은 외진 시골마을에서 10년을 하루같이 단조롭게 살아온 주부에게 뿌리치기 힘든 ‘일생일대의 사건’, 바로 ‘사랑’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가슴 뛰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A씨와의 만남을 즐겼고 남편 김씨도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2000년 7월2일 오전 9시.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박씨는 온양에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비 때문에 일감이 없어진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과 같이 있자고 말했다. 아내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은 정중히 무릎을 꿇고는 “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이 제의를 또 한번 거절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오후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서산경찰서에 온 김씨는 송낙인 형사계장에게 “채팅이 나의 가정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이용해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만나 성적 관계를 갖는 이른바 ‘사이버 외도’가 20, 30대 기혼자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여성의 전화’나 ‘남성의 전화’ 등 가족문제 상담단체엔 최근 배우자의 ‘사이버 외도’와 관련된 하소연이나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 요즘 직장인들이나 주부들 사이에서 접하게 되는 무궁무진한 ‘경험담’은 사이버 외도가 이제 하나의 사회문제로 ‘확실히’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접속 그 이후’ ‘관계’ 등 사이버 외도를 소재로 한 책도 자주 출판된다. 99년 5월 011리더스클럽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800여명의 28.5%는 유부남-유부녀의 사이버 결혼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응답해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여성의 전화’ 이문자 회장은 “인터넷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외도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일단 사이버 공간에서 기혼남녀의 만남이 이뤄진다. 그 다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실세계의 ‘데이트’로 연결되고 이중 일부가 ‘혼외정사’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씨의 경우처럼 부부간의 불신, 폭력, 별거, 이혼, 심지어 살인에 이르는 가정도 생겨나고 있다.
사이버 외도를 유발하는 일차적 인터넷 환경은 ‘음란물’이다.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포르노물은 여러 이성상대와의 관계를 원하는 성적 충동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게 한다”(캘리포니아대 마크 워더홀드 교수). 그러나 음란물보다 더 직접적인 외도의 ‘매개체’는 역시 ‘채팅’이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채팅’은 최근 들어 결혼한 중-장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950여개에 이르는 채팅사이트(검색사이트 ‘한미르’)에서 30대 채팅족을 만나는 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채팅사이트 ‘sayclub’ 한 곳에만 30대 이상 채팅회원이 무려 35만 명에 이른다(네오위즈 조사). 요즘엔 아예 ‘나이 30대’를 가입조건으로 단 채팅사이트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채팅사이트 ‘skylove’에서 만난 최모씨(여·31)는 기혼자 채팅인구의 증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채팅 붐을 일으킨 세대가 이제 가정을 꾸리는 나이가 됐다. 이들이 결혼했다고 채팅의 매력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10대나 20대 초반에 채팅을 시작한 사람이 결혼 후에도 채팅을 계속하게 될 가능성은 확실히 커 보인다. 또 결혼 후 채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물론 기혼자 채팅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skylove’의 김자경 차장은 “채팅은 여러 분야에 걸쳐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연령대를 초월한 인간적 만남의 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채팅은 실제로 인간적인 만남 중에서도 특히 ‘남녀간의 1대 1 만남’의 공간인 것 또한 사실이다.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배우자 외 이성과의 사적 대화-만남의 기회가 적었던 기혼남녀에게 채팅이 일종의 ‘신기원’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과거 주부들은 소위 ‘장바구니’를 들고 ‘나이트클럽’이나 ‘무도장’엘 가야 비슷한 또래의 남성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안방에서 클릭 한 번이면 수십명의 남자들이 한꺼번에 ‘프로포즈’해 온다는 것이다.
8월11일 ‘sayclub’에서 기자는 이 말의 의미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로그인 후 ‘여성’, ‘30대’, ‘거주지역 서울’ 등의 조건을 입력하자 그 조건에 해당되는 채팅 상대자의 ‘리스트’가 쏟아져 나왔다. 1000명은 훨씬 넘어 보였다. 리스트 내 한 여성 ID에 커서를 대고 클릭하자 ‘1대 1 대화신청’ 쪽지가 상대편에게 전달됐다(요즘 이런 방식으로 30대의 즉석 만남을 주선하는 인터넷 채팅이 늘고 있다).
31세 된 주부 윤모씨가 기자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도중 그녀는 “ ^^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 ^^” 이라고 말했다. 기자와의 채팅 도중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가 ‘1대 1 대화신청’ 쪽지를 그녀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번 ‘번개’를 했는데 “좋았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와 함께 만난 자리에 그 남자가 멋진 케이크를 사왔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이 자신의 생일인 줄 미리 알고….
그녀는 “채팅은 무척 낭만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이트의 대다수 30대 여성 이용자들은 특정한 대화상대를 정해 그 사람하고만 채팅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일 겁니다.” 윤씨는 “나의 이성 파트너는 나에게 언제나 ‘예스’라고만 말한다. 나는 그에게 속마음, 사생활을 털어놓으며 꽤 의지하고 있다. 가끔은 대담한 말을 하기도 한다. ‘뒤탈’이 없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볼티모어대학 심리학자인 셜리 그래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혼외정사가 없는 이 정도의 교감이라도 충분히 결혼생활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32세의 기혼남 회사원 김씨의 사례에서 사이버 외도는 훨씬 더 심각한 형태로 다가온다. 김씨는 채팅으로 알게 된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최근 데이트했다. 서로 마음이 이끌린 둘은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김씨는 아내에게 “지방출장 갔다 왔다”고 말했지만 결국 여러 가지 ‘거짓말의 흔적들’이 드러나는 바람에 실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씨의 아내는 최근 ‘여성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이제 믿지 못하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나 몰래 채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씨의 가정엔 불화가 생겨나고 있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는 “인터넷은 그 안에 외도를 이끄는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비밀스럽고 친밀한 데다 익명이 보장되며 무엇보다 비슷한 욕구를 가진 상대를 ‘매칭’시켜주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기혼 남성과 여성은 이 덕에 원하는 즉시, 들킬 염려 없이, ‘커피 값’마저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이성을 사귈 수 있게 됐다.
‘아메리카 온라인’(AOL)에서 가정문제를 상담해온 페기 보갠 박사는 이를 두고 “인터넷이 ‘불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여성의 전화’ 이문자 회장은 “이성과의 ‘정서적인’ 사적 관계까지 ‘외도’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다. 배우자에게 사이버 이성 상대를 알리는 것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무리 부부간이지만 그렇게까지 사생활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대신 이회장은 ‘부부로서의 책임감과 절제력의 회복’을 강조한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수많은 ‘외도의 기회’가 지금 기혼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터넷이 불러온 ‘개방형 인간관계’를 전통적 결혼관계에 무리없이 접목시킬 수 있는 ‘매뉴얼’이 아직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생산직 근로자인 남편 김모씨와 애들이 없는 낮 시간 동안 그녀는 재미 삼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 ‘채팅사이트’에 들어가게 됐다. 그녀가 처음 만난 상대는 충남 온양시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남성 A씨.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마음이 이끌렸다. 박씨는 차츰 A씨와의 채팅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만 하다가 나중엔 저녁시간, 새벽 가릴 것 없이 A씨와 채팅을 했다. 남편이 화면을 들여다보려 하면서부터 그녀에겐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방문을 걸어잠그는 버릇까지 생겼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마침내 A씨를 만났다. 소위 ‘번개’를 한 것이다. 그동안의 대화로 이미 서로를 잘 알게 된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이후 그녀는 온양시로 외출이 잦아졌다. 택시로 1시간이 걸리는 거리도 그녀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채팅은 외진 시골마을에서 10년을 하루같이 단조롭게 살아온 주부에게 뿌리치기 힘든 ‘일생일대의 사건’, 바로 ‘사랑’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녀는 처음 느껴보는 ‘가슴 뛰는 설렘’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A씨와의 만남을 즐겼고 남편 김씨도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
2000년 7월2일 오전 9시.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박씨는 온양에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비 때문에 일감이 없어진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과 같이 있자고 말했다. 아내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남편은 정중히 무릎을 꿇고는 “가지 말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이 제의를 또 한번 거절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날 오후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서산경찰서에 온 김씨는 송낙인 형사계장에게 “채팅이 나의 가정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이용해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만나 성적 관계를 갖는 이른바 ‘사이버 외도’가 20, 30대 기혼자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 ‘여성의 전화’나 ‘남성의 전화’ 등 가족문제 상담단체엔 최근 배우자의 ‘사이버 외도’와 관련된 하소연이나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 요즘 직장인들이나 주부들 사이에서 접하게 되는 무궁무진한 ‘경험담’은 사이버 외도가 이제 하나의 사회문제로 ‘확실히’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접속 그 이후’ ‘관계’ 등 사이버 외도를 소재로 한 책도 자주 출판된다. 99년 5월 011리더스클럽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800여명의 28.5%는 유부남-유부녀의 사이버 결혼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응답해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
‘여성의 전화’ 이문자 회장은 “인터넷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외도와 연결된다”고 말한다. 일단 사이버 공간에서 기혼남녀의 만남이 이뤄진다. 그 다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실세계의 ‘데이트’로 연결되고 이중 일부가 ‘혼외정사’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씨의 경우처럼 부부간의 불신, 폭력, 별거, 이혼, 심지어 살인에 이르는 가정도 생겨나고 있다.
사이버 외도를 유발하는 일차적 인터넷 환경은 ‘음란물’이다.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포르노물은 여러 이성상대와의 관계를 원하는 성적 충동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게 한다”(캘리포니아대 마크 워더홀드 교수). 그러나 음란물보다 더 직접적인 외도의 ‘매개체’는 역시 ‘채팅’이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던 ‘채팅’은 최근 들어 결혼한 중-장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950여개에 이르는 채팅사이트(검색사이트 ‘한미르’)에서 30대 채팅족을 만나는 건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채팅사이트 ‘sayclub’ 한 곳에만 30대 이상 채팅회원이 무려 35만 명에 이른다(네오위즈 조사). 요즘엔 아예 ‘나이 30대’를 가입조건으로 단 채팅사이트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채팅사이트 ‘skylove’에서 만난 최모씨(여·31)는 기혼자 채팅인구의 증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90년대 중반 PC통신에서 채팅 붐을 일으킨 세대가 이제 가정을 꾸리는 나이가 됐다. 이들이 결혼했다고 채팅의 매력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10대나 20대 초반에 채팅을 시작한 사람이 결혼 후에도 채팅을 계속하게 될 가능성은 확실히 커 보인다. 또 결혼 후 채팅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물론 기혼자 채팅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skylove’의 김자경 차장은 “채팅은 여러 분야에 걸쳐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연령대를 초월한 인간적 만남의 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채팅은 실제로 인간적인 만남 중에서도 특히 ‘남녀간의 1대 1 만남’의 공간인 것 또한 사실이다.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배우자 외 이성과의 사적 대화-만남의 기회가 적었던 기혼남녀에게 채팅이 일종의 ‘신기원’을 열어줬다”고 말했다. 과거 주부들은 소위 ‘장바구니’를 들고 ‘나이트클럽’이나 ‘무도장’엘 가야 비슷한 또래의 남성을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안방에서 클릭 한 번이면 수십명의 남자들이 한꺼번에 ‘프로포즈’해 온다는 것이다.
8월11일 ‘sayclub’에서 기자는 이 말의 의미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로그인 후 ‘여성’, ‘30대’, ‘거주지역 서울’ 등의 조건을 입력하자 그 조건에 해당되는 채팅 상대자의 ‘리스트’가 쏟아져 나왔다. 1000명은 훨씬 넘어 보였다. 리스트 내 한 여성 ID에 커서를 대고 클릭하자 ‘1대 1 대화신청’ 쪽지가 상대편에게 전달됐다(요즘 이런 방식으로 30대의 즉석 만남을 주선하는 인터넷 채팅이 늘고 있다).
31세 된 주부 윤모씨가 기자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도중 그녀는 “ ^^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 ^^” 이라고 말했다. 기자와의 채팅 도중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가 ‘1대 1 대화신청’ 쪽지를 그녀에게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 번 ‘번개’를 했는데 “좋았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친구와 함께 만난 자리에 그 남자가 멋진 케이크를 사왔다고 한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날이 자신의 생일인 줄 미리 알고….
그녀는 “채팅은 무척 낭만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이트의 대다수 30대 여성 이용자들은 특정한 대화상대를 정해 그 사람하고만 채팅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일 겁니다.” 윤씨는 “나의 이성 파트너는 나에게 언제나 ‘예스’라고만 말한다. 나는 그에게 속마음, 사생활을 털어놓으며 꽤 의지하고 있다. 가끔은 대담한 말을 하기도 한다. ‘뒤탈’이 없다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볼티모어대학 심리학자인 셜리 그래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혼외정사가 없는 이 정도의 교감이라도 충분히 결혼생활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32세의 기혼남 회사원 김씨의 사례에서 사이버 외도는 훨씬 더 심각한 형태로 다가온다. 김씨는 채팅으로 알게 된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최근 데이트했다. 서로 마음이 이끌린 둘은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김씨는 아내에게 “지방출장 갔다 왔다”고 말했지만 결국 여러 가지 ‘거짓말의 흔적들’이 드러나는 바람에 실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김씨의 아내는 최근 ‘여성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이제 믿지 못하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나 몰래 채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씨의 가정엔 불화가 생겨나고 있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는 “인터넷은 그 안에 외도를 이끄는 여러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비밀스럽고 친밀한 데다 익명이 보장되며 무엇보다 비슷한 욕구를 가진 상대를 ‘매칭’시켜주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기혼 남성과 여성은 이 덕에 원하는 즉시, 들킬 염려 없이, ‘커피 값’마저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이성을 사귈 수 있게 됐다.
‘아메리카 온라인’(AOL)에서 가정문제를 상담해온 페기 보갠 박사는 이를 두고 “인터넷이 ‘불륜’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여성의 전화’ 이문자 회장은 “이성과의 ‘정서적인’ 사적 관계까지 ‘외도’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시각이다. 배우자에게 사이버 이성 상대를 알리는 것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무리 부부간이지만 그렇게까지 사생활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대신 이회장은 ‘부부로서의 책임감과 절제력의 회복’을 강조한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을 수많은 ‘외도의 기회’가 지금 기혼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터넷이 불러온 ‘개방형 인간관계’를 전통적 결혼관계에 무리없이 접목시킬 수 있는 ‘매뉴얼’이 아직 우리 사회의 가치체계에는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