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서 정해 놓은 시설기준에 따라 새로 만들거나 수리한 장애인 편의시설들이 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거나 쓸모 없는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행정기관이나 공공기관 등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한 기관들은 문제의 시설물들이 법령이 정한 시설기준을 만족시키고 있어 책임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구-군청은 장애인이 사용하기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법에 저촉되지 않아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98년 4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령’이 시행, 공포됨에 따라 횡단보도를 비롯한 읍-면-동사무소, 청사, 복지시설, 공중화장실, 종합병원, 터미널, 공항 등 각종 공공시설에 대해 2년의 경과기간을 주고 각종 장애인편의시설을 법에서 정한 시설기준에 맞게 정비토록 했다. 이 법에 따르면 올 4월말까지 정비가 되지 않을 경우 위반기관에 시정명령을 내린 뒤, 내년 5월부터는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과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어 장애인을 위한 ‘혁신적 법안’이라는 평을 받았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법정 정비대상 의무시설 9만1123개 기관 중 82%인 7만4761개 기관이 올 4월말까지 정비를 마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뜨거운 관심과 높아진 시민의식이 한몫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던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많은 기관에 설치된 장애인화장실이 주 이용객인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법령의 설치기준에 따라 만든 장애인화장실을 실제로 사용해 본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사용불가 판정을 내렸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령’의 설치기준은 ‘양변기의 양측에 수평이나 수직손잡이를 설치하고, 양변기의 좌우측 한쪽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75cm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관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고정식 손잡이를 양변기 양쪽에 설치하는 대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측면공간을 확보하지 않았다. 법령에 나와 있는 ‘할 수 있다’는 부분은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같은 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것.
그 결과 장애인화장실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 돼 버렸다. 양변기 옆면에 휠체어를 붙인 뒤 손잡이를 의지해 측면으로 옮겨 앉는 것만이 가능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우선 측면의 공간이 없고, 설사 공간이 있더라도 고정식 손잡이에 막혀 몸을 양변기 위로 옮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손잡이가 오히려 장애물이 돼 버린 셈.
최첨단 장애인 편의시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과천 종합청사의 보건복지부 건물과 서울시청의 장애인 화장실조차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실제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일부 장애인복지시설과 대부분의 대학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모씨(36)는 “좌변기를 벽면 한쪽으로 최대한 붙여 설치하면 반대편에 충분한 휠체어 확보공간이 생길 수 있고, 여기에다 회전식(접이식)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한쪽 면에만 고정 손잡이를 설치해도 그런 대로 사용이 가능한데 왜 이렇게 설치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직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은 서울시 8000여 개소 등 전국 수만 개의 장애인화장실 정비대상 공공시설들이 이 기준을 따르게 될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2005년까지 편의시설을 정비해야 하는 지하철 화장실은 이미 이 기준에 따라 장애인화장실을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이다. 최근 설치된 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의 장애인화장실은 접이식 손잡이를 설치했으나 측면 공간이 없어 사용이 불가능하다. 결국 장애인화장실은 많은 예산만 투입된 채 정작 장애인들에게 외면받는 애물단지가 됐다.
건국대 건축과 강병근교수(장애인 건축 전공)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시설기준을 해석했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어진 환경에서 모든 장애인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만들자는 법 본래의 취지를 일선 기관의 담당자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화장실 시설기준이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면 휠체어 이용자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경사로 설치 기준은 공공기관의 현실을 무시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시설기준은 경사로의 기울기를 높이 1m에 밑바닥 길이 12m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 중 12m 이상의 입구 보도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법정정비대상 기관들은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하거나 흉내만 내고 마는 실정이다. 많은 경사로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무늬만 경사로’인 셈.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모씨(30)는 “서대문세무서나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이 대표적인 예로 경사로는 팔의 힘이 약한 중증장애인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이곳들은 경사가 너무 심해 올라가기에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한 실정”이라며 “현실에 맞지 않는 경사로 설치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수직형 리프트와 같은 보완설비를 의무사항으로 삽입하는 등 다양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시설기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 하반기부터 시설기준의 대대적인 손질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부터 편의시설시민촉진단과 편의시설 설치실태 평가조사단을 발족해 시설기준의 문제점들을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촉구 시민모임 배융호실장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98년 4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령’이 시행, 공포됨에 따라 횡단보도를 비롯한 읍-면-동사무소, 청사, 복지시설, 공중화장실, 종합병원, 터미널, 공항 등 각종 공공시설에 대해 2년의 경과기간을 주고 각종 장애인편의시설을 법에서 정한 시설기준에 맞게 정비토록 했다. 이 법에 따르면 올 4월말까지 정비가 되지 않을 경우 위반기관에 시정명령을 내린 뒤, 내년 5월부터는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과 벌금을 부과하도록 돼 있어 장애인을 위한 ‘혁신적 법안’이라는 평을 받았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법정 정비대상 의무시설 9만1123개 기관 중 82%인 7만4761개 기관이 올 4월말까지 정비를 마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는 민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뜨거운 관심과 높아진 시민의식이 한몫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던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 많은 기관에 설치된 장애인화장실이 주 이용객인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법령의 설치기준에 따라 만든 장애인화장실을 실제로 사용해 본 하반신 마비 장애인들은 한결같이 사용불가 판정을 내렸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령’의 설치기준은 ‘양변기의 양측에 수평이나 수직손잡이를 설치하고, 양변기의 좌우측 한쪽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75cm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관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고정식 손잡이를 양변기 양쪽에 설치하는 대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측면공간을 확보하지 않았다. 법령에 나와 있는 ‘할 수 있다’는 부분은 의무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같은 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것.
그 결과 장애인화장실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 돼 버렸다. 양변기 옆면에 휠체어를 붙인 뒤 손잡이를 의지해 측면으로 옮겨 앉는 것만이 가능한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우선 측면의 공간이 없고, 설사 공간이 있더라도 고정식 손잡이에 막혀 몸을 양변기 위로 옮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손잡이가 오히려 장애물이 돼 버린 셈.
최첨단 장애인 편의시설의 모범이 되고 있는 과천 종합청사의 보건복지부 건물과 서울시청의 장애인 화장실조차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실제 사용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일부 장애인복지시설과 대부분의 대학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하반신마비 장애인 이모씨(36)는 “좌변기를 벽면 한쪽으로 최대한 붙여 설치하면 반대편에 충분한 휠체어 확보공간이 생길 수 있고, 여기에다 회전식(접이식) 손잡이를 설치하거나 한쪽 면에만 고정 손잡이를 설치해도 그런 대로 사용이 가능한데 왜 이렇게 설치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아직 장애인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은 서울시 8000여 개소 등 전국 수만 개의 장애인화장실 정비대상 공공시설들이 이 기준을 따르게 될 것으로 보여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2005년까지 편의시설을 정비해야 하는 지하철 화장실은 이미 이 기준에 따라 장애인화장실을 만들었거나 만들 예정이다. 최근 설치된 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의 장애인화장실은 접이식 손잡이를 설치했으나 측면 공간이 없어 사용이 불가능하다. 결국 장애인화장실은 많은 예산만 투입된 채 정작 장애인들에게 외면받는 애물단지가 됐다.
건국대 건축과 강병근교수(장애인 건축 전공)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시설기준을 해석했다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어진 환경에서 모든 장애인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만들자는 법 본래의 취지를 일선 기관의 담당자들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화장실 시설기준이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면 휠체어 이용자가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경사로 설치 기준은 공공기관의 현실을 무시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시설기준은 경사로의 기울기를 높이 1m에 밑바닥 길이 12m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공공기관 중 12m 이상의 입구 보도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법정정비대상 기관들은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하거나 흉내만 내고 마는 실정이다. 많은 경사로가 장애인이 사용할 수 없는 ‘무늬만 경사로’인 셈.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모씨(30)는 “서대문세무서나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이 대표적인 예로 경사로는 팔의 힘이 약한 중증장애인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데 이곳들은 경사가 너무 심해 올라가기에 힘들고 위험하기까지 한 실정”이라며 “현실에 맞지 않는 경사로 설치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수직형 리프트와 같은 보완설비를 의무사항으로 삽입하는 등 다양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시설기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올 하반기부터 시설기준의 대대적인 손질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부터 편의시설시민촉진단과 편의시설 설치실태 평가조사단을 발족해 시설기준의 문제점들을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촉구 시민모임 배융호실장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