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생전에 “결혼하는 것이 좋은가, 안하는 것이 좋은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후회할 이다”고 설파했다. 한편 마거릿 미드, 루스 베네딕트 같은 인류학자들은 이미 2차세계대전 직후 머지않아 계약결혼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꿰뚫어 보았다. 미혼남녀가 일정 기간 실험기를 거쳐 결혼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이러한 예측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적중했다. 마침내 ‘계약동거’를 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와 다름없는 동등한 혜택과 보호를 약속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외신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당당한 ‘독신모’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자립능력을 가진 미혼여성 사이에 아이만 낳아 기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가 확산되고 있는 것. 미국에는 이미 수천명의 회원을 거느린 ‘자발적 독신모’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상 산업혁명 이후 최대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 형성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사회 근간을 지탱해오던 관습이나 도덕,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를 겪는 가운데 각종 생활양식이 변화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족관계나 결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는 다소 어지럽기까지 하다.
과거와 다른 이유로 계약동거 또는 계약결혼이 폭넓게 확산 중인가 하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개방성을 추구하는 세미오픈커플형 부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식없이 부부 두 사람만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싱크족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뿐만 아니라 독신모 급증 현상도 더이상 먼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 형태의 공동생활을 지향하는 공거족(共居族)이 이미 뿌리를 내린 실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남녀가 만나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다양한 욕구의 ‘더불어 사는 삶’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성생활 없는 결혼’을 중매하는 이색업체가 등장해 눈길을 끄는 한편 ‘동거알선’을 목적으로 회원을 모집 중인 업체까지 생겼다.
‘성’에 관한 한 결혼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세미오픈커플과 반대로 “부부지만 성관계는 갖기 싫다” 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성생활 없는 결혼을 주선하는 노빌리티 김형채사장은 “성관계에 자신이 없거나 성적 욕망이 거의 없는 경우 또는 성접촉이 싫어서, 아니면 일에 대한 열정이나 종교문제로 성생활에 중요성을 두지 않거나 기피하는 사람들이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귀띔한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연상이라도 상관없다. 대화가 통하고 인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를 아내로 맞고 싶다”며 회원으로 가입했다. 회원 대부분은 결혼하면 당연시되는 성적 관계보다 정신적 유대감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배우자를 찾고 있는 셈이다.
세미오픈커플형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더라도 성적으로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개방된 부부 유형을 일컫는다. 남편 또는 아내가 각자 애인을 두고 성관계를 갖더라도 서로 간섭하거나 문제삼지 않는 것. 이들 대부분은 고학력층으로 부부 각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지속적인 결혼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세미오픈커플형 부부다. 이승훈씨(가명·36)는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을 때 아내는 약간 들뜬 모습을 보인다. 평소와 다르게 신선하고 생기가 느껴져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씨는 또 “오히려 부부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생기고, 서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 주는 부담감이 별로 없다”고 덧붙인다.
‘여자가 감히?’(베스트셀러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산부인과 전문의 정경숙원장의 글에선 갈수록 늘고 있는 ‘무자식 상팔자’의 싱크족 심리가 고스란히 읽힌다. ‘애 낳아 기르는 일을 기피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모성애가 있어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섹스까지는 좋지만 임신하면 열달 동안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또 출산하고 나면 영락없이 ‘아줌마’ 소리를 듣는 데다 몸매도 망가진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못한다….’
요즘 30대 독신여성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있다. “결혼은 싫고 아이만 하나 있었으면….” 30대 중반의 독신녀 조윤경씨(가명·35)는 “결혼이나 남편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오래 혼자 살아봐서 느낀 것이지만 생활에 윤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조씨는 또 “큰 아파트 하나 구해서 영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처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강하게 든다. 물론 남자는 아니고 여자 세 명 정도. 아이는 나를 비롯해 동거인 누구의 자식이라도 상관없다. 마음이 통하는 여자들끼리 공동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한다.
조씨와 달리 생각에 그치지 않고 ‘독신모’의 희망을 실행에 옮긴 여성도 있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은밀히 인공수정을 받아 아이를 낳은 독신모들이 있어 왔던 것. 한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 병원만 해도 벌써 5년전부터 인공수정에 관해 문의해 오는 여성이 조금씩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병원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아이를 낳은 여성도 의외로 많다”고 귀띔한다.
3년전 독신모로 사내아이를 갖게 된 정유경씨(가명·39)는 그 때문에 부모와 인연을 끊어야 했다. 생리가 불규칙해 30대 초반 어느 날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던 정씨. 검사결과 정씨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30대 중반에 조기폐경이 올지 모른다는 것. “그 순간 여자로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는 정씨. 그녀는 영영 기회를 잃기 전에 자신의 분신을 낳기로 결심했고 고민 끝에 독신모의 길을 선택했다.
법률적 용어로 ‘사실혼관계’로 불리는 ‘동거’는 과거와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양상을 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상담위원에 따르면 일단 살아보고 결혼 또는 혼인신고를 하자는 커플이 늘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과거 남녀가 동거하게 되는 이유는 경제적 쪼들림이나 부모의 결혼반대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실리를 따져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99년 한해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서울본소에 접수된 이혼관련 상담건수는 총 5190건에 달했다. 이중 사실혼관계에서 발생한 상담건수는 19.7%인 264건을 차지했다. 여타의 이혼 관련 상담과 비교해 볼 때 사실혼관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선 상담자들의 연령층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이혼 상담자는 30, 40대가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사실혼관계인 상담자는 20, 30대 중반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동거 기간도 1년 미만인 경우가 60%에 육박해 1~3년 미만이 가장 많은 이혼과는 대조적이다.
박소현상담위원은 “20, 30대 젊은층 사이에 사실혼이 점차 증가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역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택이며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빨리 헤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쉽게 이별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 “여성들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사회제도와 남성들 의식은 여성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든 개인이든 의식의 차이를 좁히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고 지적한다.
지난 99년 5월 사회복지재단 ‘사랑의전화’가 조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동거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의식을 좀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남녀 네티즌 1104명을 대상으로 ‘혼전동거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9%가 동거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대의견은 41.7%로 찬성보다 그 수가 적었다. 그렇다면 혼전동거에 찬성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찬성 이유는 뭘까. 우선 “신중한 결정을 위해서” 라고 대답한 사람이 61.0%나 됐다. “결혼보다 자유로운 생활이므로”를 이유로 든 사람은 22.8%였다. 동거에 반대한 이유 중 43.6%는 “성적으로 무책임해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 “결혼의 신성함이 퇴색될 수 있다”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각각 29.0%, 22.4%를 차지했다.
실제 동거 중이거나 동거를 거쳐 이별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2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서로 합의하에 동거를 시작했던 박우영씨(가명·34)는 동거 한달만에 상대 여자와 헤어졌다.
“연애 때와는 달리 서로 프라이버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까 트러블이 많았다. 그래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는 박씨. 그는 “결혼후 이혼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이혼을 말리는 집안 눈치 안봐도 되고 혹시 아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하나. 또 사회적으로 이혼에 대한 불이익을 안받아도 되지 않나. 한번 경험을 거쳤으므로 다음에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이정민씨(가명·28세)는 동거 중인 남자가 얼마 전부터 한눈을 팔아 갈등을 겪고 있는 케이스. 직장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혼자 생활하다 동거를 결심했다. “둘다 각각의 집을 두고 밤에 헤어지는 것도 싫고 많이 외로웠다. 동거하면 생활비도 줄일 수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것 같았다”는 이씨. 때문에 두 사람은 호기롭게 동거각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둘 중 한쪽이 마음이 변하면 구차하게 발목 잡지 않는다’ ‘만일 임신됐을 경우 한쪽이 출산을 반대하면 아이를 지운다’ 등등. 그런데 이씨는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고 남자가 원치 않아 낙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트러블이 잦아지자 남자가 곁눈질을 하고 있다는 것. “솔직히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 먼저 짐을 싸긴 두렵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아직 감당하긴 힘들고… 이런 일을 겪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거했던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까 후회된다.”
동거와는 다르지만 형식상 동거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띄는 것이 바로 대학생 사이에 만연하는 ‘공거’다. IMF 사태 직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된 공거는 말 그대로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함을 의미한다. 단 동거와 달리 성생활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며 공거상대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다. 때문에 공거족의 관계는 애인이 아닌 룸메이트 성격을 띈다. “처음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생활하는 지방 대학생들 사이에 은밀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룸텔 등 고급 하숙촌이 형성되면서 월세와 하숙비가 뛰었고 이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아 전략상 공거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 대학생 정원식씨(26)의 설명이다. 물론 공거가 동거가 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지만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또래들의 시각은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개인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이다.
네티즌 수가 급격히 늘면서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해 룸메이트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룸메이트 구함’이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은 것. 지난 1월말 한 PC통신 게시판에 “저는 여자이고 지금 룸메이트를 급히 구합니다. 18평 아파트에 지하철역에서 5분 거리입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되고 월 30만원에 살 집을 마련하십시오”라는 글을 띄운 김혜영씨(가명·30). 김씨는 “혼자 살고 있는데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관리비를 혼자 부담하기 어려웠고 돈이 필요해서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이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또 “신원만 확실하다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낯선 사람과 생활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 덧붙인다.
결혼을 앞둔 박상희씨(33)는 “혼인신고만 하고 생활은 각자 따로 할까 고민 중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어른들이 빨리 시집가라고 성화하는데 지쳤다. 하지만 일도 바쁘고, 결혼생활에 얽매이고 싶진 않다. 결혼하더라도 거처를 따로 정해 자유롭게 살다 나이 들어서 외로워지면 그때 합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결혼을 앞둔 20, 30대 초반 젊은이들을 보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배우자상이 있다. 친근하고 활달하고 친구 같은 남편, 또는 아내가 그것. 기존의 결혼상대에 비추어볼 때 매우 달라진 배우자상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당연시돼 왔던 이성관계나 부부관계, 혹은 결혼형식이 사람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해체 또는 접합을 시도하며 지속적인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예측이 지난해 프랑스에서 적중했다. 마침내 ‘계약동거’를 법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와 다름없는 동등한 혜택과 보호를 약속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외신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당당한 ‘독신모’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라고 한다. 경제적-정신적으로 자립능력을 가진 미혼여성 사이에 아이만 낳아 기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가 확산되고 있는 것. 미국에는 이미 수천명의 회원을 거느린 ‘자발적 독신모’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활동 중이라고 한다.
인류 역사상 산업혁명 이후 최대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 형성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사회 근간을 지탱해오던 관습이나 도덕, 가치관이 급격히 변화를 겪는 가운데 각종 생활양식이 변화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족관계나 결혼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급격하고 다양한 변화는 다소 어지럽기까지 하다.
과거와 다른 이유로 계약동거 또는 계약결혼이 폭넓게 확산 중인가 하면,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개방성을 추구하는 세미오픈커플형 부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식없이 부부 두 사람만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싱크족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뿐만 아니라 독신모 급증 현상도 더이상 먼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따로 또 같이’ 형태의 공동생활을 지향하는 공거족(共居族)이 이미 뿌리를 내린 실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남녀가 만나 자연스럽게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다양한 욕구의 ‘더불어 사는 삶’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성생활 없는 결혼’을 중매하는 이색업체가 등장해 눈길을 끄는 한편 ‘동거알선’을 목적으로 회원을 모집 중인 업체까지 생겼다.
‘성’에 관한 한 결혼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세미오픈커플과 반대로 “부부지만 성관계는 갖기 싫다” 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성생활 없는 결혼을 주선하는 노빌리티 김형채사장은 “성관계에 자신이 없거나 성적 욕망이 거의 없는 경우 또는 성접촉이 싫어서, 아니면 일에 대한 열정이나 종교문제로 성생활에 중요성을 두지 않거나 기피하는 사람들이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귀띔한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연상이라도 상관없다. 대화가 통하고 인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를 아내로 맞고 싶다”며 회원으로 가입했다. 회원 대부분은 결혼하면 당연시되는 성적 관계보다 정신적 유대감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배우자를 찾고 있는 셈이다.
세미오픈커플형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더라도 성적으로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개방된 부부 유형을 일컫는다. 남편 또는 아내가 각자 애인을 두고 성관계를 갖더라도 서로 간섭하거나 문제삼지 않는 것. 이들 대부분은 고학력층으로 부부 각자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는 특성을 지닌다. 특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지속적인 결혼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세미오픈커플형 부부다. 이승훈씨(가명·36)는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을 때 아내는 약간 들뜬 모습을 보인다. 평소와 다르게 신선하고 생기가 느껴져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이씨는 또 “오히려 부부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생기고, 서로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 주는 부담감이 별로 없다”고 덧붙인다.
‘여자가 감히?’(베스트셀러출판사)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산부인과 전문의 정경숙원장의 글에선 갈수록 늘고 있는 ‘무자식 상팔자’의 싱크족 심리가 고스란히 읽힌다. ‘애 낳아 기르는 일을 기피하는 여자들이 의외로 많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모성애가 있어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섹스까지는 좋지만 임신하면 열달 동안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들고 또 출산하고 나면 영락없이 ‘아줌마’ 소리를 듣는 데다 몸매도 망가진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하고 싶은 일도 마음대로 못한다….’
요즘 30대 독신여성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가 있다. “결혼은 싫고 아이만 하나 있었으면….” 30대 중반의 독신녀 조윤경씨(가명·35)는 “결혼이나 남편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오래 혼자 살아봐서 느낀 것이지만 생활에 윤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조씨는 또 “큰 아파트 하나 구해서 영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처럼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강하게 든다. 물론 남자는 아니고 여자 세 명 정도. 아이는 나를 비롯해 동거인 누구의 자식이라도 상관없다. 마음이 통하는 여자들끼리 공동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고백한다.
조씨와 달리 생각에 그치지 않고 ‘독신모’의 희망을 실행에 옮긴 여성도 있다.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은밀히 인공수정을 받아 아이를 낳은 독신모들이 있어 왔던 것. 한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 병원만 해도 벌써 5년전부터 인공수정에 관해 문의해 오는 여성이 조금씩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병원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아이를 낳은 여성도 의외로 많다”고 귀띔한다.
3년전 독신모로 사내아이를 갖게 된 정유경씨(가명·39)는 그 때문에 부모와 인연을 끊어야 했다. 생리가 불규칙해 30대 초반 어느 날 산부인과 병원을 찾았던 정씨. 검사결과 정씨는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30대 중반에 조기폐경이 올지 모른다는 것. “그 순간 여자로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는 정씨. 그녀는 영영 기회를 잃기 전에 자신의 분신을 낳기로 결심했고 고민 끝에 독신모의 길을 선택했다.
법률적 용어로 ‘사실혼관계’로 불리는 ‘동거’는 과거와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양상을 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상담위원에 따르면 일단 살아보고 결혼 또는 혼인신고를 하자는 커플이 늘고 있다는 것. 그에 따르면 “과거 남녀가 동거하게 되는 이유는 경제적 쪼들림이나 부모의 결혼반대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실리를 따져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추세가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99년 한해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서울본소에 접수된 이혼관련 상담건수는 총 5190건에 달했다. 이중 사실혼관계에서 발생한 상담건수는 19.7%인 264건을 차지했다. 여타의 이혼 관련 상담과 비교해 볼 때 사실혼관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선 상담자들의 연령층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이혼 상담자는 30, 40대가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사실혼관계인 상담자는 20, 30대 중반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동거 기간도 1년 미만인 경우가 60%에 육박해 1~3년 미만이 가장 많은 이혼과는 대조적이다.
박소현상담위원은 “20, 30대 젊은층 사이에 사실혼이 점차 증가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시각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역시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선택이며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빨리 헤어지는 것이 더 낫다는 식이다. 따라서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쉽게 이별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 “여성들의 의식은 하루가 다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사회제도와 남성들 의식은 여성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든 개인이든 의식의 차이를 좁히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고 지적한다.
지난 99년 5월 사회복지재단 ‘사랑의전화’가 조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동거에 대한 요즘 사람들의 의식을 좀더 선명하게 알 수 있다. 남녀 네티즌 1104명을 대상으로 ‘혼전동거에 관한 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4.9%가 동거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대의견은 41.7%로 찬성보다 그 수가 적었다. 그렇다면 혼전동거에 찬성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찬성 이유는 뭘까. 우선 “신중한 결정을 위해서” 라고 대답한 사람이 61.0%나 됐다. “결혼보다 자유로운 생활이므로”를 이유로 든 사람은 22.8%였다. 동거에 반대한 이유 중 43.6%는 “성적으로 무책임해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 “결혼의 신성함이 퇴색될 수 있다”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각각 29.0%, 22.4%를 차지했다.
실제 동거 중이거나 동거를 거쳐 이별한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2년의 연애기간을 거쳐 서로 합의하에 동거를 시작했던 박우영씨(가명·34)는 동거 한달만에 상대 여자와 헤어졌다.
“연애 때와는 달리 서로 프라이버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까 트러블이 많았다. 그래서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었다”는 박씨. 그는 “결혼후 이혼하는 것보다 백번 낫다. 이혼을 말리는 집안 눈치 안봐도 되고 혹시 아이라도 있었으면 어떻게 하나. 또 사회적으로 이혼에 대한 불이익을 안받아도 되지 않나. 한번 경험을 거쳤으므로 다음에 결혼하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털어놓는다.
이정민씨(가명·28세)는 동거 중인 남자가 얼마 전부터 한눈을 팔아 갈등을 겪고 있는 케이스. 직장동료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혼자 생활하다 동거를 결심했다. “둘다 각각의 집을 두고 밤에 헤어지는 것도 싫고 많이 외로웠다. 동거하면 생활비도 줄일 수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것 같았다”는 이씨. 때문에 두 사람은 호기롭게 동거각서까지 작성했다고 한다. ‘둘 중 한쪽이 마음이 변하면 구차하게 발목 잡지 않는다’ ‘만일 임신됐을 경우 한쪽이 출산을 반대하면 아이를 지운다’ 등등. 그런데 이씨는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고 남자가 원치 않아 낙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로 트러블이 잦아지자 남자가 곁눈질을 하고 있다는 것. “솔직히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 먼저 짐을 싸긴 두렵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아직 감당하긴 힘들고… 이런 일을 겪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거했던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까 후회된다.”
동거와는 다르지만 형식상 동거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띄는 것이 바로 대학생 사이에 만연하는 ‘공거’다. IMF 사태 직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된 공거는 말 그대로 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함을 의미한다. 단 동거와 달리 성생활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특징이며 공거상대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다. 때문에 공거족의 관계는 애인이 아닌 룸메이트 성격을 띈다. “처음엔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생활하는 지방 대학생들 사이에 은밀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원룸텔 등 고급 하숙촌이 형성되면서 월세와 하숙비가 뛰었고 이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아 전략상 공거하는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 대학생 정원식씨(26)의 설명이다. 물론 공거가 동거가 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지만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또래들의 시각은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개인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이다.
네티즌 수가 급격히 늘면서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해 룸메이트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룸메이트 구함’이라는 문구가 낯설지 않은 것. 지난 1월말 한 PC통신 게시판에 “저는 여자이고 지금 룸메이트를 급히 구합니다. 18평 아파트에 지하철역에서 5분 거리입니다. 몸만 들어오시면 되고 월 30만원에 살 집을 마련하십시오”라는 글을 띄운 김혜영씨(가명·30). 김씨는 “혼자 살고 있는데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관리비를 혼자 부담하기 어려웠고 돈이 필요해서 룸메이트를 구하는 중이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또 “신원만 확실하다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낯선 사람과 생활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 덧붙인다.
결혼을 앞둔 박상희씨(33)는 “혼인신고만 하고 생활은 각자 따로 할까 고민 중이다.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어른들이 빨리 시집가라고 성화하는데 지쳤다. 하지만 일도 바쁘고, 결혼생활에 얽매이고 싶진 않다. 결혼하더라도 거처를 따로 정해 자유롭게 살다 나이 들어서 외로워지면 그때 합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결혼을 앞둔 20, 30대 초반 젊은이들을 보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배우자상이 있다. 친근하고 활달하고 친구 같은 남편, 또는 아내가 그것. 기존의 결혼상대에 비추어볼 때 매우 달라진 배우자상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당연시돼 왔던 이성관계나 부부관계, 혹은 결혼형식이 사람들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해체 또는 접합을 시도하며 지속적인 핵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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