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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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털고 對北사업 동반자로

금강산 국제그룹 박경윤회장, 자신 감시하던 前 국정원간부와 인터넷사업

  • 입력2006-02-06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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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 털고 對北사업 동반자로
    땀을 뻘뻘 흘리며 북한의 묘향산 정상에 오른 개그맨 김국진씨가 핸드폰을 꺼내 중국요리집으로 전화를 건다. “여기 묘향산 정상인데 말이야… 자장면 좀 배달해 줘” 잠시 뒤 중국요리집 배달원 차림을 한 이창명씨가 철가방을 들고 묘향산 정상에 올라와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외친다.

    이때 이창명씨의 핸드폰이 울려 이씨가 핸드폰을 받는다. 그러자 김국진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말이야. 나 지금 칠보산으로 옮겼어.” 다시 칠보산 정상으로 배달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 이씨가 충격을 받아,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쓰러진다.

    이상은 기자가 모 텔레콤회사의 광고를 흉내내서 만들어본 가상 텔레비전 CF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CF를 찍은 곳이 한국이 아니라 북한 땅이라는 점이다. 북한 땅에서 한국 제품 광고를 찍겠다는 사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여러 명인데, 뜻밖에도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13년간 비밀리에 남북경제 접촉의 막후 인물로 활동하며 관계기관과 언론으로부터 주목받아온 박경윤 금강산국제그룹회장(66)이 그 주인공. 박회장은 89년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의 최초 방북과 김우중 전대우그룹회장의 방북, 문선명 세계평화연합(통일교)총재의 방북 등 남북경제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94년 박회장이 환갑을 맞았을 때, 김일성이 직접 환갑상을 차려주라고 명령할 만큼 박회장은 북한 지도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박회장이 이끄는 금강산 국제그룹 지분의 40%는 북한이 투자한 것이다. 이처럼 북한과 가까운 박회장이 ‘주간동아’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인터넷 벤처기업인 ‘유니온 커뮤니티’와 손잡고 새로운 방식의 남북 경협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회장의 카운터파트이자 유니온 커뮤니티의 대표인 정영철씨(57)도 의외의 인물이다. 정씨는 30여년 동안 국정원 직원으로 해외 활동을 해왔다. 그는 지난해 초 국정원의 해외 활동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둘도 없는 정통 국정원맨 출신이다. 남북관계가 한창 예민하게 돌아갈 때 정씨는 부하들을 시켜 박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자리에 있었다. 박회장이 이러한 정씨를 사업파트너로 삼았으니 ‘적과의 동침’중에도 이러한 동침은 없을 것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남북 사업은 인터넷을 이용한 ‘주문생산형’ 경제 교류다. 먼저 유니온 커뮤니티가 인터넷 사이트(www.unionzone.com)를 통해 남북 교류 품목을 모집한다. 예를 들어 A사가 이 인터넷 사이트로 북한의 묘향산에서 CF를 찍을 수 있겠느냐고 제의하면, 유니온 커뮤니티는 이 제안을 베이징에 있는 박회장을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것이다. 북한의 축구나 농구선수를 수입하고 싶은 프로구단이 있다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신청하면 된다. 남북한 당국이 운동선수의 한국 진출을 허락한다면 그는 한국 프로무대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가 있다.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가수 나훈아씨의 공연을 벌이고 싶은 기획사가 있다면 역시 유니온 커뮤니티의 인터넷 사이트로 신청하면 된다. 고향이 함흥인 실향민이 고향에 있는 이산가족을 찾고자 할 때도 역시 이 인터넷 사이트로 신청할 수 있다. 북한산 꽃게를 수입하고 싶은 사업가도 같은 방법으로 주문한다. 정씨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신청은, 무기나 마약 등 금지 품목이 아닌 한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유니온 커뮤니티는 이렇게 인터넷 사이트로 접수된 것들을 안건별로 정리해 박회장에게 보내고, 박회장은 이를 북한 당국에 보내 성사 여부를 결정케 한다. 북한 정책부서에서 OK 사인을 주면 이후부터는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 방식은 남쪽의 주문에 따라 북한이 대응하는 형식이라 ‘주문 생산형’ 남북 교류가 된다.

    현재 베이징에서는 사업이나 이산가족찾기 등을 위해 북한 당국과 접촉하고자 하는 한국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자 이들과 북한 당국을 연결시켜주는 중개인들도 따라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중개인들 중에는 사업 성사보다는 큰소리를 쳐서 거액의 구전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남북 교류는 사기극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영철씨는 “이러한 난맥상을 줄이기 위해 가장 깨끗한 통신수단인 인터넷을 통한 남북 교류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사업파트너도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박경윤회장이라는 거물을 선택하게 됐다” 고 말했다.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기자를 만난 박회장도 인터넷을 통한 남북 교류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박회장은 주로 베이징에 거주하지만 국적은 미국이다. 미국은 관계 법률로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 봉쇄를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시민인 박회장이 북한과 경제교류를 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 된다. 박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내가 하는 일은 경제 교류가 아니라 봉사할동”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적잖은 사람들은 북한이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북한이 한국과 달리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계획된 물품만 생산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주문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미리 주문해 준다면 북한도 충분히 납기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 신뢰를 쌓다 보면 통일을 하는 방법도 우리 힘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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