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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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명 정보에 달렸다?

정보 갈증에 언론-기업-사조직 등 접촉 ‘귀 쫑긋’… 잘못된 정보 피해도 만만찮다

  • 문 철 기자 fullmoon@donga.com

    입력2007-02-22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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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7층 총재실에서는 거의 매일 주요당직자회의가 열린다. 회의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물론 이회창총재다. 하지만 당 3역도 아닌 정형근기획위원장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그가 쏟아내는 ‘정보들’ 때문이다.

    “뜸하다 싶으면 정위원장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나온다. 개인적으론 정보의 신빙성이나 정보를 이용하는 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들을 때는 신기하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하는 한 인사의 얘기다.

    정가에서 정위원장은 ‘정보(또는 정보정치)의 대가’로 불린다. 최근 몇달 사이 그가 한 일만 보더라도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해교전사태 때 ‘신북풍설’ 제기(6월) △국가정보원의 언론단 및 정치단 신설 주장(6월) △국민회의가 97년 6·4경기지사선거에서 광주군에서만 억대 선거자금을 뿌렸다는 주장(7월) △이희호여사가 단골이라고 돼있다는 라스포사 홍보물 제시(8월) △소위 언론장악문건 폭로(10월).



    믿거나 말거나 폭탄발언?

    물론 그가 폭로한 내용 중 100% 사실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매번 정가에 커다란 파문을 불렀고 여권의 입장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진위야 어떻든 폭로정치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초선에 불과한 정의원 자신은 이런 정보정치 덕에 당 5역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늘 정국의 중심에 서있을 수 있었다. 국민회의에서 ‘정형근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이라는 논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치인 치고 여론에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남다른 정보력이 시선을 끌 수 있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정치인도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국회 본회의에서, 상임위에서, 국정감사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정보에 목말라한다. 하지만 고급 정보를 누리는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이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정 소식이나 정치권 동향 등 최고급 정치정보들은 대부분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서 흘러나온다. 따라서 이런 정보의 ‘수혜자’는 극소수 여권 핵심인사들일 수밖에 없다.

    구 여권에서 요직을 두루 맡았던 김윤환의원의 한 측근은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여당 대표나 사무총장, 원내총무 등 여당 핵심인사들이 얻는 정보의 80∼90%는 청와대 쪽에서 나왔다. 정보를 모아 청와대에 보고하는 것은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기관이지만 거기서 정보가 바로 새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청와대쪽 인사들로부터 정보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도 여당의 실세 정치인들이 고급 정보를 얻는 창구 중 하나였다. 이들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안가에서 청와대비서실장, 안기부장 등과 만나 정국현안 대처방안을 논의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급 정보들을 얻었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들 중 일부는 여야총무간 또는 여야총장간 접촉 등을 통해 야당으로도 ‘분배’됐다.

    그러나 DJ정부 들어서는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사정정국에서 국민회의 핵심부는 과거의 여당 실세들과는 달리 사정의 폭과 수위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조세형총재권한대행 등 당지도부는 검찰의 정대철부총재 구속방침을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 한화갑총무는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총무회담 도중 한나라당 이기택전총재권한대행의 검찰소환 소식을 전해듣고 당황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인해 국민회의 내부에선 “우리가 여당 맞느냐”라는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한총무가 DJ를 만난 자리에서 “총무로서 야당과 접촉해야 하는데 사정정보를 몰라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가 “알려고 하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이같은 여당의 정보부족 현상은 곧바로 야당의 정보부재로 이어졌다. 당시 대여교섭창구였던 신경식사무총장이나 박희태원내총무의 입에선 종종 “여당 핵심인사들조차 사정 등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언론은 예나 이제나 정치인들의 중요한 정보창구다. 정치인들은 청와대와 정부, 여야, 정보기관을 넘나들며 취재하는 기자들로부터 빠르고 생생한 정보를 얻는데 관심이 많다. 국민회의 박광태의원은 “언론의 정보가 빠르고, 또 언론이 그 정보에 얼마나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언론을 통해 민심의 추이도 알아볼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아 정치인들이 선호하게 된다”고 말했다.

    막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재벌기업으로부터 수시로 정보를 제공받는 정치인들도 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재정경제위 소속 일부 의원이나 대기업과 가까운 몇몇 의원 등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총선 낙선자나 정치지망생 등 정치권 주변에 포진한 인사들이 여기저기서 물고 와 유통시키는 정보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권력기관이나 정보기관, 언론, 기업 등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상임위활동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국민회의 김영환의원(과학기술정보통신위)이나 한나라당 김홍신의원(보건복지위)은 여기저기서 떠도는 얘기를 몇달씩 끈질기게 추적, ‘작품’을 만들어왔다. 김영환의원의 각종 원전관련 정보나 김홍신의원의 ‘장애인 강제불임시술 사건’ ‘영아원 백신임상실험 사건’ 등은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들. 정보력이 좋은 의원들 밑에는 늘 열심히 뛰는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제보자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엄청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다. 95년 10월 민주당 박계동의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고교 1년 후배로부터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에 대한 제보를 받아 국회에서 이를 폭로했고, 이는 전직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정치인들의 공통된 얘기다.

    이같은 ‘정보 갈증’ 탓에 속칭 ‘찌라시’라 불리는 정보지에 기대는 정치인들도 생겨났다. 정보원 출신이나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으로 구성된 사설정보팀들이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정보지를 월 20만∼ 30만원씩 주고 받아보는 의원회관내 방들이 여럿 목격되고 있다.

    하지만 사설정보지의 정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많아 자칫 낭패를 보기 쉽다. 국민회의 정한용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보지를 근거로 사실확인 작업도 거치지 않고 ‘김영삼전대통령(YS)의 비자금 1000억원 조성설’을 제기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한편 정보를 지극히 중시하는 정치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보에 지나치게 집착할수록 민심에서 멀어지는 우를 범하기 쉬우며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정보와 그것의 폭로로 인한 폐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비판론자 중에는 YS의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얘기를 요약정리하면 대강 이렇다.

    “YS는 오랜 세월 야당지도자로 있으면서 민심을 잘 읽는 정치를 해왔다. YS는 대통령이 된 뒤 안기부의 정치활동 간여 금지를 골자로 한 안기부법 개정을 단행하는 등 정보정치와 확실한 거리를 두는 듯했다. 하지만 1년쯤 지나면서 안기부 정보보고서를 찾는 빈도가 늘어났다. 마약과도 같다는 정보에 중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민심의 추이에는 둔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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