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입점사·‘전단채’ 투자한 노인들 날벼락

평생 모은 돈 넣은 노인들 충격에 쓰러져… 국세청·금감원 대대적 조사 착수

  •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5-03-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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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없네.”

    3월 11일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한 고객이 비어 있는 음료 매대를 보며 불평한 말이다. 이날까지 홈플러스에 납품을 재개하지 않은 롯데칠성음료 매대는 상품이 대부분 품절된 상태였다.

    앞서 롯데칠성음료를 비롯한 기업들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홈플러스에 ‘납품 중단’을 통보했다. 이후 상당수가 합의 끝에 공급을 재개했으나 홈플러스의 대금 지급 능력을 우려하는 협력사 측 고민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홈플러스 월드컵점 내 LG전자 매장에서도 고객들에게 “제품 판매는 불가하며 구독 서비스만 신청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LG전자 또한 아직 홈플러스 납품을 재개하지 않았다.

    3월 11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의 롯데칠성음료 매대가 군데군데 비어 있다. [이슬아 기자]

    3월 11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의 롯데칠성음료 매대가 군데군데 비어 있다. [이슬아 기자]

    입점사 “정산금 안 나와 ‘영끌’ 운영 중”

    영세 입점사는 더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업체가 1~2월 매출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채 홈플러스 기업회생절차가 시작돼 ‘정산이 언제까지 지연될지’ ‘이대로 정산금을 떼이는 건 아닌지’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홈플러스 월드컵점 내 한 프랜차이즈 식당 가맹점주 A 씨는 “갖고 있던 현금과 대출을 닥치는 대로 끌어다가 직원 월급, 본사 발주금 등 유지비용을 계속 충당하고 있다”며 “(홈플러스 측이 정산금을) 주겠다고 하니 기다리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영업해야 하는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홈플러스는 이 같은 현장 불안을 누그러뜨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3월 동안 순현금 유입액 3000억 원을 포함해 6000억 원 넘는 가용자금이 확보되는 만큼 납품·정산 대금 등 누적된 일반 상거래채권 3457억 원을 모두 변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앞서 회생법원은 3월 7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이들 채권에 대한 조기 변제 허가를 결정했다. 홈플러스 측은 12일 입점사에 1월과 2월 일부(2월 11일까지) 정산 대금을 지불한 뒤 나머지를 순차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며, 14일까지 상세 대금 지급 계획을 수립해 전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획대로 대금 지급이 가능할지에 대한 불신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협력사, 입점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금융시장에는 더 큰 후폭풍이 불고 있다. 홈플러스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일으킨 약 6000억 원 규모의 단기금융채권 가운데 상당분이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형태로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됐는데(그래프 참조), 이들이 원금을 전액 날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ABSTB는 기업이 미래에 카드사로부터 받게 될 대금 등을 기초로 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사실상 무담보나 다름없으며, 만일 기업이 이를 갚지 못하면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특히 이번 홈플러스 사례처럼 기업이 회생절차를 밟는 경우 금융채권으로 구분되면서 상환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투자자들은 “ABSTB는 홈플러스가 물품 구매를 위해 결제한 카드 대금을 토대로 만들어진 채권”이라며 이를 정상 변제 여지가 큰 상거래채권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자자 중에는 수익률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평생 모은 돈 수억 원을 넣었다가 떼일 위기에 처해 충격을 받고 쓰러진 노인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홈플러스 “몰랐다” vs 증권사 “사기죄”

    홈플러스와 증권사는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기업회생절차 직전까지 단기채권을 판매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홈플러스 측은 “과거 테스코 시절부터 수년간 매달 약 6000억 ~7000억 원 규모의 단기대출자금을 활용해왔고 (이번 기업회생절차 계기가 된) 신용등급 강등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또 CP나 ABSTB 소매판매 주체는 증권사이기에 홈플러스는 판매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ABSTB 발행을 주관한 신영증권 등 증권사들은 홈플러스를 상대로 형사고발 등 강경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홈플러스가 사전에 기업회생절차 가능성을 알고도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는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금융당국도 홈플러스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가 홈플러스 단기채권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등이 없었는지를 살피고자 전수조사에 나섰다. 국세청은 특별 세무조사 담당 부서이자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주도로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에 대한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홈플러스가 결국에는 퇴출 수순을 밟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은 사실상 MBK파트너스의 ‘경영 포기’ 선언”이라며 “사모펀드 특성상 이번 회생절차는 위기를 적당히 봉합한 뒤 매각하는 쪽에 방점이 찍혔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그렇다면 홈플러스를 기존보다 비싼 가격에 사줄 인수자가 나타나야 (상환) 후순위에 있는 ABSTB 등의 변제가 가능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오프라인 유통업이 죽어가는 상황이고 홈플러스는 알짜 점포 등 주요 자산을 매각한 상태라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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