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또다시 최대 영업실적을 기록했다. 반도체 시장의 ‘슈퍼 호황’과 휴대전화 시장에서 갤럭시 노트8 등의 판매 호조로 영업이익 14조5000억 원을 달성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사사분기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1월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할 당시 총수가 없으면 그룹 경영에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이번 실적으로 그런 우려는 불식됐다. 총수부재(總帥不在) 리스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면 이 부회장을 삼성그룹 총수라고 부를 수도 없다. 와병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대신해 이 부회장이 이른바 ‘권한대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국민은 권한대행 체제에 익숙하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가 이뤄진 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헌법 제71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일했다. 문제는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였다. 단순히 국정을 관리(현상 유지)하는 수준에 그쳐야 하는지, 아니면 새로운 상태를 창출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가 논란이었다. 황 전 권한대행이 한국마사회장 등을 임명할 때, 사드(THAAD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강행하는 결정을 할 때 논란이 있었다.
헌법재판소(헌재)도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탄핵정국에서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임기 만료로 물러났다. 새 헌재소장을 임명할 겨를도 없었다. 결국 이정미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를 진행했고, 결정문도 직접 낭독했다. 이 때문에 헌재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탄핵심판 절차와 결정의 정당성에 대해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헌재는 여전히 권한대행 체제다. 이정미 재판관도 탄핵심판 후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그 뒤를 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김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그의 진보적 성향 및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한 시민에게 사형을 언도한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9월 11일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헌재 수장으로서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모를 당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에게 대통령으로서 정중하게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사건의 발단은 10월 13일 헌재 국감을 앞두고 야당 의원들이 김이수 권한대행에 대해 “국회가 부결한 인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옳으냐”며 국감을 거부한 일이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국회가 스스로 만든 국법질서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청와대가 김 권한대행 체제를 계속 끌고 가려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정치적 공방이 지속되자 헌법재판관들이 헌재소장과 재판관의 조속한 임명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의견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각 정파가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법적으로 해석하자면 임시처방에 불과한 권한대행이 오래갈 수도 없고 오래가서도 안 된다. 지금 같은 정치적 논란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헌재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다. 헌법기관은 총수가 없어도 되는 사적 경제공동체가 아니다. 청와대는 조속히 헌재소장을 임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