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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을 넘어7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노인들, 가족 내 이방인으로 쓸쓸한 말년 … 자녀들 “귀찮은 존재” 인식, 부양 나 몰라라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나 어디 머물 만한 곳 없겠소? 아직까진 몸이 성해 일도 할 수 있는데…” 6월24일 서울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유모 할머니(78)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할머니는 4년째 낮에는 경로당에서 소일하고, 밤에는 교회에서 잠을 청하며 살아왔다. 전날 밤엔 새벽기도에 참석한 교인들 때문에 두 시간도 채 눈을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까운 건 그에게 버젓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과 며느리, 장성한 손자 1명과 손녀 2명이다. 1999년 아들 내외와 살기 위해 고향인 충남 보령에서 상경한 할머니는 그러나 아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이 도통 쉽지가 않았다. “방이 세 칸뿐인데, 내가 어디서 자겠어? 아들이 며느리를 방에 두고 거실에 나와 자는 것도 싫고. 새벽마다 화장실 들락날락하기도 눈치 보이고 말이지. 낮에 며느리랑 단둘이 있으면 전혀 대화도 없어. 그럴 바엔 교회당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는 편이 낫지.”

자식 눈치 보기 싫어 가출 경로당 떠돌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고향 사람들이 아들 내외를 흉볼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할머니의 팔뚝에 있는 멍과 상처에 대해 묻자 “원래 혈액순환이 안 되고 멍이 잘 드는 체질”이라고 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행여 자식을 욕보일까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뚱이가 짐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가족이 있는 그를 무료로 받아줄 시설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박모 할아버지(83)는 5월 중순 하루아침에 살 곳을 잃어버렸다. 함께 살던 딸 내외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야반도주해버렸기 때문이다. 홀로 살아오다 3년 전 전세금 1600만원을 빼 서울의 딸 내외에게 주고 살림을 합쳤던 박할아버지에게는 세 아들이 있으나 장남과 차남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래서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수원의 셋째아들 집에 얹혀살게 됐지만 갑자기 시아버지를 모시게 된 셋째 며느리가 늘 터뜨리는 불만은 그를 옥죄였고, 급기야 집을 나와 경로당을 떠돌아다녔다. ‘자식들에게 버려졌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던 그는 스카프와 노끈을 들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끊어버리겠다는 말을 하고 다니다 최근 소식이 끊겼다. 한 달여 전 그를 상담했던 상담센터 노인의 전화 김은주 소장은 그의 거처를 수소문하다 박할아버지의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시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나도 모르겠다”는 퉁명스러운 대답만 들었다.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2004년 한국 노인의 자화상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있지만 좀처럼 동화되지 못하는 이방인 같은 존재. 이것이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기여해온 자로서 존경받으며, 건전하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아야’ 할 우리 노인의 현주소다. 현재 65살이 넘은 노인 인구는 전체의 약 8.3%인 396만9000명으로 한국사회는 이미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했다. 2019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의 14.4%에 이르러 고령사회(Aged Society)로 들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끌어안기에는 개개인과 가족, 사회의 준비가 너무나 미흡하다. 남보다 못한 가족의 존재는 때로 노인의 삶에 굴레를 씌운다. 자식들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돈을 뜯기는 노인은 국가적 혜택도, 시설의 보호도 쉽게 받을 수가 없다.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유모 할머니(71)는 아들의 폭행을 피해 지하 단칸 셋방에 살고 있다. 나이 마흔에 재취로 시집을 간 유할머니는 남편이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애지중지 길러왔다. 그러나 유일한 혈육으로 여겼던 아들은 최근 신용불량자가 된 뒤 걸핏하면 “돈을 주지 않는다”며 마구 때리기 일쑤였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을 호소할 수조차 없었다. 할머니 스스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업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 몰래 숨어서 살아가고 있는 그는 호적에 올라 있는 아들 때문에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조차 될 수 없다. 경찰에 아들을 신고한다거나,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가끔 동사무소에서 반찬을 가져다주는 사회복지사가 할머니의 유일한 벗일 뿐이다.

부모에 대한 폭행은 비단 알코올중독자나 정신적 문제가 있는 자녀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해온 30대 초반의 회사원 김모씨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구타해왔다. 주위 사람들은 김씨의 폭행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정도였다. 65살의 노모는 폭행을 일삼는 아들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바로 마음에 걸려 고발을 취하해버렸다.

부모 구박하고 때리고 … 그래도 신고 꺼려

서울 까리따스 노인학대상담센터의 유선애 사회복지사는 “자녀에게 폭행을 당하는 노인은 ‘어떻게 자식을 고발하느냐’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섣불리 경찰에 연락하지 못한다. 설사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부모는 자식의 처벌을 원치 않고, 경찰은 미온적으로 대처하기 일쑤다”라고 지적한다. 노인에 대한 단순한 협박이 폭행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노인 학대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가족상담은 필수적이라는 게 유소장의 설명이다.

실제 노인 학대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노인학대 상담센터에 따르면 올 1~4월 접수된 신고는 42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8건에 비해 2배가 넘었다. 또 노인학대 상담센터가 집계한 2003년 노인학대 2281건 중 언어•정서적 학대가 1004건으로 43.8%를 차지했고, 다음이 방임 631건(27.8%), 신체적 학대 377건(16.6%), 경제적 학대 268건(11.8%) 순이었다. 노인의 전화 김은주 상담센터 소장은 “언어•정서적 학대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신체•경제적 학대, 방임 등 다른 유형과 중복돼 조사됐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자녀들의 생각지 못한 말이나 행동도 어르신들에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 자식들에게는 몇 십만원이 넘는 학원비를 투자하면서, 부모에겐 몇 만원의 용돈을 쥐어주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자녀들의 태도에서 노인들은 ‘밀려났다’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보건복지부는 노인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 연말까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노인학대 예방센터 10곳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 센터는 노인학대 신고 전담전화를 설치하고 상담이나 현장 방문조사 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센터 수를 늘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인학대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고 사회복지사들은 입을 모은다. 노인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현재의 상황을 ‘효 가치관의 붕괴’로만 볼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의 노인 부양 의무를 민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절대 빈곤층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노인이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서 가족이란 울타리는 무력하기만 하다. 자녀가 겪는 노인 부양에 따른 스트레스는 가족의 관계를 왜곡하고, 결국 가족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불러오기도 한다. 15년째 홀로 살아온 양모 할아버지(75)가 올 3월 갑자기 중풍을 앓게 되면서 양씨의 다섯 자녀는 갈등과 반목을 겪어야 했다. 빠듯한 살림 탓에 자녀들은 아버지의 부양을 서로 미뤘다. 한 달에 몇 백만원씩 나오는 병원비를 분담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았다. 경비 일을 하면서 자녀들에게 손벌리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던 양할아버지는 결국 사회복지시설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 입원했지만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사회 차원에서 고령화 시대 준비해야 특히 ‘치매’는 가정 파괴의 결정적 구실을 한다. 치매에 걸린 팔순 노모로 인해 김모씨(61)는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팔순 노모를 모시던 남동생이 갑자기 실직하면서 김씨가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지만 김씨의 부인은 “시어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남동생이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내가 고통을 떠안아야 하느냐”며 시동생들과 갈등을 벌이다 결국 이혼을 택하고 말았다. 김씨에겐 장남 도리를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내와 헤어진 상처가, 다른 가족들에겐 미움과 고통이 쌓였을 뿐이다. 이 가족의 갈등은 노인의 소외와 고통이 비단 노인의 문제가 아니라 온 가족, 나아가 전 사회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바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노인 부양의 의무는 앞으로 사회가 점차 떠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 캐나다 등 서구사회는 국가가 노년의 생활에 대해 상당 부분 보조하고 있다.

사라지는 孝, 설움받는 老
그러나 한국의 노인복지시설은 열악하기만 하다. 국가기초생활수급 대상자만이 갈 수 있는 무료 양로원은 전국 280곳에 그친다. 더욱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시설은 27곳에 그쳐 노인들은 기약 없이 시설 입소를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급하는 유료 양로시설은 자리가 있어도 돈 없는 노인들은 입소를 꿈꿀 수조차 없다.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의 서혜경 교수는 노인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인 국가 정책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80, 90살이 넘도록 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노인들은 자신의 노후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고, 사회 또한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직업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면서 가정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졌고요. 현재의 중•장년층 역시 노후 대책이 없는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우느라 노후엔 무방비 상태죠. 향후 고령사회를 대비해 노인 부양에 따른 재정, 의료 부분은 점차 사회가 떠안아야 합니다. 또 노인이 느끼는 정서•심리적인 고통을 가족과 사회가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노인을 위한 시설

노인학대 상담

‘1588-9222’번을 누르면 전국 11곳 노인학대상담센터로 연결된다. 학대받고 있는 본인이나 친지 및 이웃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노인 단기보호센터 문의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회장 조성철, 02-2632-8738, www.kacold.or.kr) -한국사회복지관협회(회장 구철수, 02-719-8939, kaswc.or.kr) -노인종합복지관협회(회장 이성희, 02-2203-9411, kaswc.org)

노인 장기보호센터 문의

-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02-712-9763, www.elder.or.kr)



주간동아 442호 (p56~57)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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