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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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 < 룩소르=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04-10-14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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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이집트로 떠나는 것, 그것은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며 친절함과 소박한 유머, 지혜와 마주치는 것이다.’

    파리 출신의 이집트학자 크리스티안 노블쿠르의 유혹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닌 이집트로 떠나는 여행은 생애 최상의 경험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외에도 수많은 볼거리가 널려 있다. 특히 나일강 유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중류의 룩소르(Luxor) 지역은 몇 년 전부터 한국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이곳은 고왕국·신왕국 시대(B.C.2207~ B.C. 1000년경) 수도로서 이전에는 테베(위대한 태양의 도시)로 불렸다. 현재는 나일강변을 따라 찬란한 유적과 호텔들이 들어서 있어 손꼽히는 휴양도시가 됐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유럽 등지에서 직항로가 개설돼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6월30일 카이로에서 아침 6시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걸려 룩소르 공항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지만 습기가 거의 없어 불쾌감은 크지 않았다. 작열하는 태양은 낮기온을 43도까지 올려놓았지만 4000년 전의 위대한 유산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분주하기만 했다.



    나일강은 룩소르를 동안(東岸)과 서안(西岸)으로 나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 그 주변에 모여 살았다. 태양이 지는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즉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 부르며 주로 묘지나 제전(祭殿) 등을 지었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먼저 들른 곳은 네크로폴리스 지역에 있는 ‘왕가의 계곡’(와디 알 물루크). 기원전 1580~1085년에 만들어진 왕들의 무덤 64기가 발견된 곳이다. 이중 11기가 공개되었다. 투트모세 3세, 람세스 3·6·9세 등 왕들은 자신들이 통치하는 동안 미리 무덤을 만들었는데,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아주 작은 구멍을 내고 그 안에 궁전 같은 거대한 동굴 무덤을 파놓았다. 무덤들은 한결같이 입구를 지나면 도굴을 방지하기 위한 함정, 부장품을 보관했던 수많은 전실과 복도, 미라가 보존되었던 석관 순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덤은 도굴당했고 유일하게 투탕카멘의 무덤만 원형 그대로 발견됐다. 투탕카멘 무덤은 도굴꾼들이 인접한 람세스 6세 무덤을 도굴할 때 파낸 흙더미에 입구가 묻혀 있다가 1922년 하워드 카터라는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됐다. 단지 10년간 재위한 젊은 파라오(‘큰 집’이라는 뜻으로 보통 이집트 왕을 지칭)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카터는 6년 동안 1700여 점의 보물을 발굴했고, 현재 이 유물은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무덤의 벽에선 정교한 신성문자(상형문자)와 사후세계를 그린 ‘사자(死者)의 서(書)’가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거기엔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과 정신세계, 신화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벽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을 알아야 한다. 벽화에는 온갖 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

    가장 일반적인 신화는 오시리스 이야기.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아몬 레를 섬겼다. 레에게는 큰아들 오시리스, 큰딸 이시스, 차남 세트, 차녀 네프티스가 있었다.

    사냥을 잘하고 용맹했던 세트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형이자 왕이 된 오시리스를 질투해 그의 몸을 14조각으로 나눠 나일강 곳곳에 흩뿌렸다. 그러자 오시리스의 아내가 된 이시스가 아버지에게 기도해 오시리스를 부활시키도록 한다. 깨어난 오시리스는 염라대왕(사자들의 신)이 되었고, 파라오의 보호자인 매의 신으로 추앙받는 아들 호루스(지상의 신)는 세트에게서 왕위를 빼앗아 오시리스의 복수를 한다는 권선징악 이야기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왕가의 계곡’을 나와 규모는 작지만 역시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귀족 무덤과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페르타리(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무덤이 있는 ‘왕비의 계곡’도 들를 만하다. 귀족 무덤에서 ‘왕가의 계곡’을 건설한 노동자 마을 ‘델 엘 메디나’를 지나면 이집트 최초의 여왕 하트셉수트의 장제전(葬祭殿·데이르 엘 바하리)을 만날 수 있다.

    하트셉수트는 남편 투트모세 2세가 죽은 뒤 나이 어린 투트모세 3세를 섭정했으며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됐다. 여왕 자신과 시아버지 투트모세 1세의 부활을 위해 건립된 장제전은 원근법을 이용해 만든 독특한 건축물로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제전이며, 여왕의 애인 세넴무트가 건설했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룩소르 동안의 카르나크 신전은 태양신 아몬 레의 신전으로 18만평에 이르는 거대 신전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폐허가 됐고 살림집들이 들어서 있지만, 아직도 그 규모는 이집트 최대다. 세티 1세와 그의 아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이 신전은 짓는 데만 80년, 장식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입구에는 양 머리를 한 스핑크스 44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30여m 높이의 거대한 탑문(pylon) 2곳을 지나면 각각 15m, 23m 높이의 거대한 기둥 134개가 늘어서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기둥실을 지나면 이집트를 67년간 다스린 ‘왕 중의 왕’ 람세스 2세의 거상(높이 약 20m)이 살아있는 것처럼 서 있다. 그는 100명의 부인 중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를 무릎 앞에 두고 보호하고 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2km 떨어진 룩소르 신전은 그가 네페르타리를 위해 세운 곳이다.

    신과 인간이 남긴 ‘문명의 지문’
    룩소르 신전으로 가는 참배길 가엔 스핑크스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지금은 민가 때문에 끊기고 일부만 남아 있다. 신전의 정면에는 람세스 2세의 좌상과 1개의 오벨리스크가 탑문을 배경으로 서 있다. 두 개의 거대한 탑문은 해가 떠오르는 산을 상징하며, 하나의 돌덩어리로 만든 25m 높이의 첨탑인 오벨리스크는 태양을 상징한다. 꼭대기는 금과 호박으로 도금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진 상태. 오벨리스크는 원래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서 있다. 가까운 룩소르 박물관에는 이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들 일부가 전시돼 있다.

    이집트인과 결혼한 한국 가이드 정성희씨는 이집트의 7000년 역사를 신·무덤·죽음·도굴의 역사로 묘사했다. 그러나 모든 일에 낙천적인 이집트인들과 한두 마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은 죽음을 지금 이곳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룩소르에서 동행했던, 고고학을 전공한 이집트인 가이드 아메드씨도 같은 느낌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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