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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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피사체, 그것은 그림

  • < 전원경 기자 > winnie@ donga.com

    입력2004-10-14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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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진 피사체, 그것은 그림
    우연의 일치처럼 최근 여러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 미술의 한 부분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견과 논리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사진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이미지와 표현 방식에 집중하는 현대 미술은 가끔 관객을 황당하게 만드는 반면, 촬영 대상이 명확한 사진은 누구나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개중에는 언뜻 보기에 사진인지 회화인지 구별하기 힘든 작품들도 있지만 말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배병우 사진전(7월6~8월18일)과 가나아트센터, 토탈미술관에서 동시에 열리는 ‘지금, 사진은’(7월12~8월4일)의 전시작들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경향은 동양화와 서양화를 보듯 뚜렷하게 구분된다.

    배병우의 작품들은 일련의 수묵 담채화다. 산과 바다, 돌과 하늘이라는 네 가지 자연 주제를 촬영한 그의 사진들은 극도로 조용하고 그윽하다. 그동안 소나무를 촬영한 사진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의도적으로 소나무 사진을 배제했다. 대형 사진들을 세로로 인화한 후 나란히 건 연작은 8폭 병풍을 연상시킨다.

    100여 점에 이르는 출품작들은 대부분 흑백이다. 사진 속의 빛은 아주 미묘하게 움직인다. 작가는 일출과 일몰을 전후한 어스름을 택해 사진을 촬영했다. 바위와 산 같은 사물은 셔터를 3시간 이상 열어두는 장시간 노출로 퍼지는 듯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흑백의 톤은 투명하고도 깊다.



    멈춰진 피사체, 그것은 그림
    네 가지의 주제 중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다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 배병우에게 바다는 고향 같은 존재. 흑백의 화면에 담긴 바다는 그저 고요하기만 한데 그 속에서 미묘하게 파도가 일렁거리고 숭어떼의 윤곽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마치 사막에 남아 있는 낙타의 발자국 같다. 사진 속의 바다는 현실의 바다인 동시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상상의 바다다.

    배병우의 전시가 먹의 농담을 강조한 동양화라면 ‘지금, 사진은’전은 화려한 채색화의 페스티벌이다. 구본창, 김수자 등 국내 작가와 바네사 비크로프트, 안드레아스 거스키, 엘거 에서 등 해외 작가 18명의 근작 100여 점이 등장한 이 전시는 현대 사진의 트렌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주로 풍경, 민속 등 특정한 주제에 몰두하는 국내 작가들에 비해 해외 작가들은 한층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멈춰진 피사체, 그것은 그림
    ‘지금, 사진은’전은 세 가지 소주제로 나뉜다. 사진 본래의 의도, 즉 ‘순간 포착’에 충실한 작품들을 보여주는 ‘개념’과 갖가지 촬영과 인화기법으로 사진예술의 다양함을 증명하는 ‘아우라’, 그리고 사진과 영상의 결합 등을 통해 사진의 범위를 넓히는 작업의 결실인 ‘확장’이다. 이 주제들은 사실상 오늘날의 사진예술이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들을 모두 말해주는 듯하다.

    이것도 사진인가 싶은 작품들이 주로 등장한 ‘아우라’의 작업들은 흥미롭고도 새롭다. 예를 들면, 로버트 실버스는 작은 조각 사진들을 컴퓨터로 합성해 다이애나비, 마릴린 먼로 등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재현했다. 예술과 기술의 중간에 위치한 실버스의 사진은 ‘라이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흑백사진 위에 유화로 색채를 덧입힌 튠 훅스의 작품들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멈춰진 피사체, 그것은 그림
    이에 비해 ‘개념’은 우리가 보고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렌즈를 통해 조망했다. 작품 가격이 30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독일 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암스테르담’은 공중에서 바라본 축구장의 모습을 촬영한 작품이다. 넓은 녹색 그라운드에 흩어져 있는 선수들의 모습은 바다에 드문드문 떠 있는 작은 섬 같다. 환호와 열정이 가득한 그라운드가 실은 고독한 공간임을 거스키의 사진은 일깨워준다. ‘보그’지 모델들을 누드로 촬영한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시선은 에로틱하기보다 서늘하고도 예리하다.

    19세기 말, 사진이 등장하자 화가들은 더 이상 실물과 똑같이 그리기를 포기했다. 화가 마티스는 초상화에서 팔의 비율이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인, 이것은 팔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림입니다.” 사진의 탄생은 현대 미술의 등장을 촉발시켰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조금 지난 지금, 사진은 다시 회화의 분위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기묘한 순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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