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은어밥에 재첩회, 참게탕도 한 그릇

섬진강의 여름 먹을거리

  •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6-05-23 10: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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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의 젖줄 섬진강은 여전히 맑다. 난개발로 수많은 강이 모습이 바뀌었지만 섬진강은 용케 살아남았다. 섬진강의 하류 끝 광양이 개발되면서 하구 모습은 조금 변했어도 상류에선 이맘때면 은어가 나고 재첩의 살이 오르며 참게도 잡힌다.

    안타깝게도 자연산 은어는 극소수가 잡히는 탓에 식당에선 대개 양식 은어를 사용하지만 섬진강 은어는 여름철 최고 미식 재료다. 맑은 섬진강에서 자란 은어는 바위의 이끼를 먹고 자란 덕에 수박향이 난다. 섬진강변 은어는 구이나 회로 먹지만 은어를 얹어 지은 은어밥도 빠지지 않는 여름 별미다. 은어의 향이 쌀밥에 배어 감칠맛이 강하고 은근한 향도 일품이다.

    전남 곡성군 압록은 섬진강 은어 중에서도 가장 좋은 은어가 나는 지역이다. 은어 명가로 유명한 곡성군 ‘용궁산장’은 은어로 만든 음식으로 유명하다. 단맛이 도는 은어회, 석쇠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 은어 소금구이, 뼈째 먹을 수 있는 은어튀김까지…. 은어는 은은하고 깊은 맛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요리해도 제맛을 내는 귀한 식재료다.



    섬진강의 또 다른 명물로 참게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참게의 일종인 동남참게가 주로 잡힌다. 간장게장은 원래 꽃게가 아니라 민물게인 참게로 만든 음식이다. 전국적으로는 경기 파주 참게가 가장 유명하고 남쪽에선 섬진강 참게가 이름이 높다. 하동을 기점으로 섬진강 상류에는 참게가 많이 잡히고 밑으로는 재첩이 많다. 하동군 위쪽 섬진강변에 참게집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동읍 ‘섬진강재첩횟집’은 참게로 만든 탕이 맛있다. 들깨가루, 찹쌀가루, 콩가루 등 8가지 넘는 곡물을 넣어 걸쭉한 죽처럼 만든 국에 참게를 넣어주는 참게가리장국으로 이름난 집이다. 국물이 진하고 고소해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많다. 이 집에서는 쇠고기를 먹인 참게를 50일간 숙성시킨 참게 간장게장도 맛볼 수 있다. 원래 게장이란 낱말은 게를 간장에 담가 만들었다는 의미와 함께 게의 내장으로 담갔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간장게장은 살이 아니라 내장의 감칠맛과 간장의 달고 짭짤한 맛이 더해져 밥반찬의 절대강자가 된 음식이다.



    광양시 진월면 ‘청룡식당’은 섬진강변에 40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재첩 명가다. 재첩이 듬뿍 담긴 재첩국은 맑고 깊다. 강하지 않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청룡식당’이 유명해진 데는 재첩국과 더불어 재첩회가 일조했다. 재첩회라는 이름 때문에 생재첩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청룡식당’의 재첩회는 재첩을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밥이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호박과 재첩, 양념으로 버무린 재첩회를 참기름이 담긴 그릇에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음식이다. 하동과 남해 일대에서는 호박을 살짝만 데쳐 먹는데 아삭한 식감이 환상적이다. 호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재첩회 비빔밥은 남해가 고향인 나도 어릴 적 많이 먹었던 음식이다. 한 그릇 싹싹 비벼 먹다 보니 섬진강 맑은 물이 고맙고, 재첩 잡느라 허리 숙여 고생한 어머니들이 생각나며, 겨우내 익은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 정겹고, 섬진강변에서 자라는 호박, 마늘종 같은 이 땅의 식재료들이 사랑스러우며, 투박하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낸 할매들의 삶이 거룩하게 느껴진다. 섬진강변에서 밥을 먹다 보니 번뇌는 온데간데없고 맛있는 것들 덕에 몸만 불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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