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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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과 갈등 십자가를 희망으로 바꾸소서

염수정 추기경 서임에 부쳐

  • 이동익 천주교 공항동 성당 주임신부·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

    입력2014-01-20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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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과 갈등 십자가를 희망으로 바꾸소서

    염수정 추기경(오른쪽)이 1월 15일 오전 서울 명동 천주교 서울대교구청에서 아돌포 니콜라스 가톨릭수도회 예수회 총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4년 1월 12일 정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가톨릭 신자를 향해 새로 임명하는 추기경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호명했다. ‘안드레 옘 수중!’이라는 이름도 들렸다. 정확한 우리말 발음은 아니었지만, 한국인 누가 들어도 이는 현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의 이름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 가톨릭교회 세 번째 추기경의 탄생을 알리는 낭보(朗報)였다.

    추기경 서임 발표 며칠 전부터 국내 언론이 ‘혹시나’ 하는 기대를 드러내긴 했지만, 당사자인 염 교구장조차 언론 발표를 듣고서야 알게 됐다니, 실상 어느 누구도 이 엄청난 경사를 축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야말로 추기경 임명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새 추기경 임명이 발표되자 한국 가톨릭교회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기뻐하고 관심을 갖는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가톨릭교회와 국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하튼 한국이 새 추기경을 갖게 됐다는 것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큰 경사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내린 신의 축복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 교회법은 추기경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추기경들은 특별법의 규범에 따라 교황 선거를 대비하는 소임이 있는 특수한 단체를 구성한다. 또한 추기경들은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함께 소집되는 때에 합의체적으로 행동해 교황을 보필하거나, 또는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직무로, 특히 보편 교회의 일상 사목에 교황을 도와드림으로써 교황을 보필한다.’(교회법 제349조)

    이처럼 추기경은 이 세상을 위한 교황의 영적 통치를 가장 가까이서 자문하는 교황의 최측근인 셈이다. 그러므로 추기경에 대한 교회법 규정에 따라, 이번에 새로 임명된 염 추기경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헤아리고 보필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거는 큰 기대

    그러나 새 추기경이 임명됐다는 발표가 있자 종교계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가톨릭교회 교회법에 나타난 정신이나 교황 뜻에 대한 헤아림보다 한목소리로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은 물론, 사회 갈등과 반목을 치유해줄 것을 새 추기경에게 주문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자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 전체의 숙원을 주문하니, 새 추기경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필자는 새 추기경을 임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년 가까이 교황직을 수행하며 보인 행보를 통해 이번 새 추기경 임명의 의도를 엿보면서, 한국 가톨릭교회 추기경이자 대한민국 추기경인 새 추기경에게 맡겨진 과제에 대해 다음 몇 가지를 진언(進言)하고자 한다.

    첫째, 가톨릭교회 내에서 대한민국의 아시아 지역에서의 비중과 역할이 큰 만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선교 임무가 새 추기경에게 주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과 중국 선교를 염두에 둔 교황 선택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염 추기경을 임명한 바로 다음 날 바티칸 외교사절단과의 신년 만남에서 “한반도에 화해 선물을 달라고 주님께 간청하고 싶다”며 “한국인을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끊임없이 합의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리라 믿는다”고 연설했다. 교황은 이 연설을 통해 다시 한 번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이는 대한민국 새 추기경에게 던지는 일종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바티칸과 중국의 관계가 종교적, 정치적 문제로 여전히 껄끄럽더라도 바티칸은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의 끈을 결코 놓지 않을 것이고, 그 연결 고리를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중국 신학생들이 서울 가톨릭대에서 사제로 양성되는 등 지원과 교류가 이뤄지는 점 역시 그러한 관심의 한 축이 아니겠는가.

    북한 역시 바티칸의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평양교구장을 겸하는 염 추기경의 이번 임명은 최근 일고 있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관심 내지는 예상될 수 있는 급격한 변화를 준비하라는 주문일 수 있다. 새 추기경은 “한반도에 화해 선물을 주십사고 청하는” 교황의 염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봉사 메시지로 이해된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추기경 19명 가운데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아이티 같은 가난한 국가 소속이 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라는 평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에게 최우선적으로 사목적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가진 자의 탐욕이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현대 자본주의의 병폐를 염려하고 비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임된 지 열 달 만에 처음 임명한 추기경 명단에서 그 의지를 고스란히 담았다.

    “나만 빼놓고 다들 좋아한다”

    분열과 갈등 십자가를 희망으로 바꾸소서

    세 번째 한국 추기경에 임명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가 1월 13일 오전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 주교관 앞마당에서 축하식을 마치고 밝게 웃고 있다. 서임식은 2월 22일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은 이제 경제 강국 대열에 합류했고, 수도 서울은 이미 세계적이고도 거대한 경제 도시다. 자본주의의 모든 모습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만들어왔고, 이러한 서울에 위치한 서울대교구 교구장을 새 추기경으로 임명하면서 교황은 자본주의 병폐로 고통 받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는 소명을 부여한 것이 아니겠는가.

    새 추기경에게 맡겨진 과제로 말하고 싶은 마지막은 염 추기경이 임명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사회 분열과 갈등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염 추기경이 일성(一聲)으로 분열과 갈등 치유를 언급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분열됐다는 반증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심각한 갈등과 분열이 있다는 것을 국민 누구나 인정하는 현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봉합하고 치유할지는 영원한 숙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자는 흩어진 양떼를 모으는 사람이니 목자인 염 추기경에게 거는 국민 기대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염 추기경은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주위 사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물론, 뛰어난 친화력으로 교구 내 모든 사제에게 아버지 같은 따스함을 보인다. 그러나 직무를 처리하는 데는 원칙에서 벗어나거나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다. 하느님에 대한 굳센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는 원칙주의자다. 아울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남기고 카카오톡으로 후배 사제들과 대화하는 염 추기경의 소통 노력과 방법은 가톨릭교회와 국민의 소통으로 발전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염 추기경이 우리 사회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희망이 자못 크다.

    염 추기경은 서임축하식에서 추기경 임명에 대한 첫 심정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 “너무 부족한 사람으로 더 두렵다” “나만 빼놓고 다들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추기경이 큰 부담이 되는 자리며, 결코 즐거워할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수락연설에서 “나를 교황으로 잘못 뽑으신 여러분을 주님께서 용서하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교황이나 추기경이 이 세상에서 최고 영예를 상징하는 자리일지는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그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인간적으로는 그 자리를 피해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새 추기경의 두려움과 떨림을 이해하지만, 성경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느님에게 불린 사람이 짊어질 십자가가 염 추기경 앞에 놓였다. 새 추기경에게 기대하는 과제가 십자가의 고통으로가 아닌, 희망을 주는 부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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