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 입력2012-11-16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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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안도현

    내 눈 밑으로 열을 지어 유유히 없는 길을 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내려다본 적 있다. 16층이었다.

    기럭아, 기럭아



    나 통증도 없이 너의 등을 보아버렸구나

    내가 몹시 잘못했다

    등을 본다는 건 통증을 유발한다. 연인의 등, 아버지의 등, 중년남자의 등, 등등등. 등을 보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고독감이나, 이별의 고통을 떠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등을 응시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등은 익명의 타인이기도 하다. 오늘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고 시인이 보아버린 기러기를 생각한다. 저들의 등이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등과 뭐가 다르겠는가. 여배우의 뒤태가 아닌, 타인의 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의 시작이다. ─ 원재훈 시인



    詩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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