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5

2012.07.09

“남중국해 양보 못 해!”…중-베트남 일촉즉발 대치

중국 “주권 수호 무력 사용” vs 베트남 “해군력 강화, 미군과 협력”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07-09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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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중국해 양보 못 해!”…중-베트남 일촉즉발 대치

    남중국해로 출항하는 중국 해양유전 탐사선.

    베트남 곳곳에는 ‘해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쩐흥다오(1228∼1300) 장군의 크고 작은 동상이 있다. 쩐 장군은 중국 원나라의 세 차례에 걸친 침입을 물리친 인물이다. 특히 1287년 원나라의 3차 공격 때 지금의 하롱베이 부근 바익당 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전멸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하롱베이는 베트남 북부와 중국을 가르는 국경 근처에 있는 만으로, 남중국해에 면해 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를 동해라는 의미의 ‘비엔동’이라고 부른다.

    베트남은 과거부터 중국과 앙숙이었다. 지난 1000여 년간 중국 역대 왕조와의 전쟁에서 번번이 져 조공을 바치는 처지에 있었으나 복종하지 않고 정체성을 지켜왔다. 베트남 국민이 쩐 장군의 동상을 세워놓고 기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000년간 이어온 앙숙 관계

    중국과 베트남은 1979년 2월 17일부터 한 달간 국경지역에서 전쟁을 벌였다. 당시 베트남은 이웃 나라인 캄보디아를 침공해 친(親)중국 성향의 크메르루주 정권을 무너뜨렸다.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병력 10만 명을 동원해 베트남을 침공했지만, 베트남의 강력한 저항으로 국경에서 33km밖에 진격하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은 실질적인 목적을 달성했다며 철군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6000여 명이 전사하고, 베트남군은 2만여 명이 숨졌지만 사실상 베트남의 승리였다. 중국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건 캄보디아에 주둔한 베트남군의 철수였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넓이 350만km2인 남중국해에는 작은 섬 750여 개와 산호초, 암초, 모래톱이 있다. 이를 크게 구분하면 시사(西沙·Paracels), 난사(南沙·Spratlys), 둥사(東沙·Pratas), 중사(中沙·Macclesfield) 등 4개 군도로 나눌 수 있다. 이들 4개 군도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국가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 6개국이다. 그중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필리핀 간 영유권 다툼이 치열하다.



    중국과 베트남 간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는 곳은 시사군도(베트남명 호앙사)와 난사군도(쯔엉사)다. 시사군도는 섬 39개와 암초, 산호초, 모래톱으로 구성돼 있고 난사군도에도 섬 175개와 암초, 산호초, 모래톱이 있다. 남중국해에 있는 모든 섬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은 현재 시사군도의 모든 섬과 난사군도의 10개 섬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이에 맞서 베트남이 시사군도와 난사군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 베트남은 난사군도에 있는 24개 섬을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시사군도에선 실효지배하는 섬이 없다.

    베트남은 과거 시사군도의 3개 섬을 차지했지만, 1974년 1월 19∼20일 중국과 벌인 해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이 섬들을 빼앗겼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코르벳함 4척과 소해정 2척, 베트남 해군의 프리깃함 3척과 코르벳함 1척이 전투에 참가했는데 전투기 지원까지 받은 중국이 결국 승리했다. 베트남은 프리깃함 1척이 침몰했고, 나머지 함정 3척이 대파했지만 중국은 소해정 1척만 대파했다. 이 전쟁에서 베트남 장병 53명과 중국 장병 18명이 전사했다. 시사해전 이전에는 중국과 베트남이 각각 시사군도의 동쪽과 서쪽을 관할했으나 이후에는 중국이 시사군도를 모두 차지했다.

    두 나라는 1988년 3월 14일 난사해전을 벌였다. 난사군도에 있는 산호초에 해상 관측 기지를 건설하려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과 이를 막으려는 베트남 해군이 전투를 벌인 것이다. 베트남은 함정 2척이 침몰하고 장병 72명이 전사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당했지만, 중국은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

    석유 대량 매장에 전략 요충지

    “남중국해 양보 못 해!”…중-베트남 일촉즉발 대치

    (왼쪽) 시사해전 승리를 자랑하는 중국 포스터. (오른쪽) 시사군도와 난사군도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베트남 포스터.

    두 나라가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다시 격렬하게 분쟁을 벌이는 것은 무엇보다 해저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때문이다. 남중국해에는 석유 2130억 배럴(중국 주장 230억~300억t), 천연가스 3조8000억(중국 주장 16조)㎥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의 리쉬쉬안 연구원은 “남중국해는 ‘제2의 페르시아만’”이라며 “앞으로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요 생산지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 5개국은 남중국해에서 1380개 유정을 뚫어 석유와 가스를 개발한다. 그중 베트남이 가장 적극적으로 석유와 가스 탐사 및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현재 베트남의 전체 석유 생산에서 남중국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19∼30%에 이른다.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석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나 된다. 중국은 베트남이 석유와 가스를 개발 생산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비난한다.

    남중국해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중요한 해상루트로 매년 4만여 척의 선박이 통과한다.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대만의 석유 90%가 이곳을 통해 수입된다. 한마디로 말해 전략 요충지다. 이 때문에 중국은 남중국해의 자원을 다른 국가들에 빼앗기는 것을 막고 전략 요충지도 장악하기 위해 2010년부터 남중국해를 ‘핵심이익’으로 규정하고 자국의 내해로 만들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전략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실질적으로 맞서는 국가가 베트남이다. 실제로 베트남 의회는 6월 20일 남중국해의 시사군도와 난사군도를 포함한 해역을 자국의 주권 관할 범위라고 규정하는 해양법을 통과시켰다. 베트남 정부는 앞으로 해양법에 따라 해당 해역을 지나는 모든 외국 선박은 자국 해안경비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해양법을 통해 중국의 전략에 정면 도전한 셈이다. 베트남은 또 난사군도의 난웨이 섬에 타일을 까는 방식으로 대형 베트남 국기를 만들었으며, 완공 후 난사군도 각지에 주둔하는 군대를 동원해 대대적인 기념행사도 벌였다.

    중국은 이런 베트남에 대해 전방위적인 대응 조치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6월 21일 난사·시사·중사 등 3개 군도를 통합 관할하는 싼사(三沙)시를 새로 설립하고 하이난성에 소속시킨다면서 싼사시 청사는 시사군도에 속하는 융싱다오에 둔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가 각각 별도로 관리해오던 3개 군도를 통합 관리하겠다는 것은 영유권 분쟁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싼사시 설립은 실효지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밝힌 싼사시 넓이가 260만km2에 이른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전체 넓이와 마찬가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3개 군도의 육지 넓이를 모두 합해도 13km2에 불과하다. 융싱다오의 넓이도 2.1km2밖에 되지 않는다. 3개 군도의 전체 인구는 3500명이고 유동인구가 2만5000명 정도다. 중국 정부가 싼사시 넓이를 대내외에 강조한 이유는 남중국해의 주권은 중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중국은 세계 최초로 해저 7000m 잠수에 성공한 유인 심해잠수정 자오룽(蛟龍)호를 내년 3월 남중국해에 투입해 해저 지형조사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자오룽호가 남중국해 심해저의 지형이나 광물자원 등을 샅샅이 조사하면 중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정보우위를 바탕으로 영유권 분쟁에서 더욱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는 6월 23일 남중국해 9개 구역에서 유전을 함께 탐사 개발할 외국 기업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국제입찰 공고를 냈다. 9개 구역은 베트남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겹치는 해역이다. 베트남 국영 석유가스회사인 페트로베트남은 앞서 이들 9곳의 유전에 대해 미국 엑손모빌, 러시아 가즈프롬 등 4개 외국 기업과 합작 개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중국해양석유총공사에 개발구역이 중첩된다며 국제입찰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중국해양석유총공사는 이를 무시한다. 오히려 엑손모빌, 가즈프롬에 베트남과의 합의를 취소하고 자신들과 합작 개발하자는 압력을 넣는 상황이다.

    중, 싼사시 설립 3개 군도 관리

    “남중국해 양보 못 해!”…중-베트남 일촉즉발 대치

    난사군도에서 상륙훈련을 하는 베트남군.

    중국 국방부는 남중국해에서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무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베트남에 경고했다. 겅옌성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6월 28일 “베트남이 앞으로 싼사시를 침범할 경우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수호할 책임이 있으며 관련 규정에 따라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겅 대변인은 또 “중국은 싼사시에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면서 “인민해방군은 중국이 관할하는 해역에서 이미 정상적으로 순찰 활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군부 일각에선 싼사시에 여단급 군구를 설치하고 공중식별구와 영공방위구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융싱다오에는 길이 2500m의 군용 활주로가 있다. 또 5000t급의 해군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도 갖췄다. 이 섬에는 기상대를 비롯해 우체국과 은행, 상점, 창고, 발전기, 병원 등이 있으며 군 장병을 포함해 240여 명이 산다. 중국 군부의 강경 발언은 베트남에 대한 일종의 협박이라고 볼 수 있다.

    베트남도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 대비해 러시아 등에서 무기를 구입하는가 하면, 자체적으로 함정을 건조하는 등 해군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입한 명세를 보면 지난해 말 사거리 130km의 대잠미사일을 탑재한 게파트급 미사일 탑재 프리깃 2척과 스베틀랴크급 미사일 초계정 2척을 도입했다. 또 킬로급 636형 잠수함 6척을 주문했다. 2014년 도입할 이 잠수함은 배수량이 2300t으로 최대 잠항 심도 350m이고 533mm 어뢰발사관 6기를 갖췄다. 수호이(Su)-30 전투기 12대를 도입할 계획도 있다. 베트남은 이미 Su-30 전투기 12대를 보유하고 있다.

    베트남은 또 인도와 초음속 순항미사일인 브라모스 구입, 잠수함 승무원과 조종사 훈련, 중남부 냐짱항의 항만시설 개선 등을 놓고 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다. 네덜란드와는 시그마급 코르벳함 4척을 도입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자체적으로는 길이 90m, 너비 14m 크기에 헬기를 탑재할 수 있고 급유 없이 40일간 단독작전이 가능한 다목적 대형 함정을 건조 중이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 승자는?

    특히 주목할 점은 베트남이 과거 전쟁을 벌였던 미국과도 군사 협력을 모색한다는 사실이다.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부 장관은 6월 3일 베트남을 방문해 풍꽝타잉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양국의 군사협력 확대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패네타 장관은 1975년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군 공군과 해군기지가 있던 깜라인만을 방문했다. 깜라인만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3대 핵심 전략기지 가운데 하나였다. 패네타 장관은 깜라인만 항구에 수리차 정박 중인 미 해군 군수품 수송선 리처드 버드호에 탑승해 “미 해군 함정들의 깜라인만 접근이 양국관계를 이루는 핵심요소”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미국에 무기 수출 금수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캄라인만에 미 해군 함정이 기항하는 것을 허용할 것도 검토하고 있다. 깜라인만은 수심이 깊은 데다, 남중국해의 왼쪽에 자리해 중국과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병참·발진 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베트남은 1979년 소련에 깜라인만을 해군기지로 빌려줬는데,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2002년 이곳에서 병력을 완전히 철수했다.

    미국이 다시 캄라인만을 사용하거나 함정의 기항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중국에는 상당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미 해군 함정들은 이미 다낭 등 베트남 항구들에 기항하지만 깜라인만에는 아직 접근할 수 없다. 베트남은 깜라인만이 지닌 민감한 전략적 가치를 의식해 현재 보급과 수리 목적으로만 외국 해군의 접근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하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양측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국과 아세안은 2002년 11월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 공동선언(Declaration on the Conduct of Parties in the South Chinese Sea·DOC)’을 체결하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이 선언의 주요 내용을 보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평화적 해결, 1982년 체결된 유엔해양법협약 준수, 남중국해 지역에서의 항해 자유 보장 등이다. 하지만 이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으며, 중국은 그동안 이 선언의 이행에 필요한 후속 절차를 미뤄왔다.

    아세안은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고위급 회의를 열고 이 선언의 행동수칙을 마련해 중국과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행동수칙은 7월 9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 각료급 회의에서 공식 추인된다. 행동수칙에는 분쟁을 해결하는 전담기구와 수칙 이행을 점검하는 별도 기구를 각각 설치하는 방안이 담겼다. 현재로서는 중국이 아세안의 중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

    베트남은 아세안을 비롯해 중국의 주변 국가 가운데 반중(反中) 정서가 가장 강한 국가다. 따라서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군사적으로 볼 때 다윗인 베트남은 골리앗인 중국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양국은 모두 공산당이 일당 지배하는 독재국가다. 이념이나 통치체제가 같아도 영토 문제에 있어선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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