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경찰대 출신이면 다 ‘만능수사관’이냐

강남경찰서에 집중 배치 논란 가열 … 97%의 非경찰대 출신들 “신중치 못한 처사”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8-16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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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전국 경찰서 중 요지로 알려진 강남경찰서(이하 강남서)에 경찰대 출신 간부를 집중 배치한 것과 관련, 온갖 잡음이 새어나오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이하 서울청)은 이에 대해 “경찰대 출신 젊은 수사관을 영입해 수사 전문성과 공정성을 키우고 대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비경찰대 출신들은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불만을 터뜨린다.

    강남서에 경찰대 출신을 집중 배치한 것은 출신별 화합을 중요시하는 경찰 인사의 이력과 특성을 고려해도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서울청은 7월 하반기 인사에서 강남서 수사과 경제팀 57명 중 팀장을 포함해 35명을 경찰대 출신으로 바꿨다. 서울청 소속 경찰대 출신 경찰이 629명으로 전체 2만4578명 중 2.5%에 그친 데 비해, 강남서 수사과 경제팀의 경찰대 출신 비율은 60% 이상인 것. ‘경찰대 출신 집중 배치’란 말이 나올 법하다. 7월 28일에는 조현오 서울청장(현 경찰청장 내정자)이 수사공정성 확보를 위해 시범운영 중인 강남서를 찾아 추진 경과를 보고받고 격려하기도 했다.

    주목받는 지역 유혹도 많은 곳

    강남서는 대한민국 경찰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경찰서 1번지’로 꼽힌다. 강남 8학군에 있어 자녀교육을 이유로 선호하는 경찰도 있지만, 그보다는 강남서에서 다루는 사건의 중요성이 다른 경찰서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강남지역은 유난히 고액 사기사건이 많고, 채무불이행 고소고발 사건의 액수도 그만큼 크다. 경찰이 잘만 하면 크게 ‘후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강남지역 경찰서의 한 경감은 “민사소송을 통해 받아내기 어려운 고액 사기사건이나 채무불이행 고소고발 사건은 수사관이 신경을 많이 써주면 돈을 빨리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강남서는 채무관계에 걸린 돈의 액수가 크고 건수도 많아서 경찰이 눈먼 돈의 유혹을 받기 쉬운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청이 강남서 수사과 경제팀에 경찰대 출신을 집중 배치한 것도 이런 관행을 해결해보겠다는 취지에서다.



    또 단순 교통사고나 폭행사건에도 세간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이 연루된 경우가 많아 이목이 집중된다. 쉽게 주목을 받는 자리인 만큼 강남서 형사과장, 수사과장직을 무탈하게 보내면 승진은 예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찰과 민원인의 유착 가능성이 높아서일까. 그동안 강남서는 경찰 내부에서도 비리 취약지역으로 꼽혔다. 강남지역 고급 유흥업소와 유착 의혹으로 여러 차례 언론의 된서리를 맞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서울지역 31개 경찰서의 자체 비리 감찰조사에서 꼴찌를 했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고자 서울청은 5월부터 ‘수사공정성 확보를 위한 토론회’ ‘국민에게 신뢰받는 수사경찰상 구현을 위한 합동토론회’ 등을 통해 대안을 논의해오다 결국 경찰대 집중 배치 실험을 시작했다.

    문제는 경찰 수뇌부가 수사공정성 확보를 위한 대안으로 특정 출신을 고집한 점이다. 경찰은 경찰대, 간부후보생, 경정 특채, 순경 공채 등 출신이 다양해 경찰조직 내부의 갈등요인이 돼왔다. 하반기 인사에서 자리를 옮긴 강남서 수사과 경제팀의 한 직원은 “공정성, 전문성을 구현하겠다는 서울청의 큰 틀에는 동의한다. 경찰대 출신이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별문제가 없음에도 경찰대 출신이 아니란 이유로 다른 경찰서나 다른 직위로 자리를 옮긴 직원들은 불만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찰대 출신이 수사를 잘한다’는 서울청의 생각에도 찬반이 갈린다. 경찰대 출신 강남지역 경찰서 수사과 소속의 한 팀장은 “경찰대 입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좋은 수재다. 4년간 대학에서 경찰 업무를 공부한 만큼 수사를 잘하고, 현장배치 한 달이면 베테랑 수사관을 능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A경찰서 수사과장은 “특정 출신이 수사를 잘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다. 수사 전문성은 출신이 아닌 적성의 문제다. 경찰대 출신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경찰대 출신 집중 배치가 경찰 전반의 전문성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 출신인 경찰행정학과 A교수는 “경찰대 출신 숫자는 한정돼 있어 수사 관련 분야를 경찰대 출신으로 모두 채울 수 없다.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하면 수사 관련 교육기관을 만들어 출신 구분 없이 교육하는 것이 옳다. 1990년대에도 경찰대, 간부후보생으로 조사계(현 경제팀) 직원들을 배치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또 서울청 생각이 옳다 해도 우수한 조사관을 모두 서울 특정 지역에만 두는 것도 지역차별이다”고 비판했다. 서울청 소속 경찰대 출신 경정도 “한마디로 보여주기 위한 쇼다”고 잘라 말했다.

    도리어 최소한 6개월간 경제팀의 수사력이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B경찰서 수사과장은 “수사 이론과 현장은 엄연히 다르다. 새로 배치된 경찰대 출신 경위들은 적어도 6개월은 지나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지금 경제팀은 수사하랴, 가르치랴 바빠 정신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경찰대 출신들이 현장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는 경찰 대부분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강남지역 민원인에게 돌아간다.

    비경찰대 출신 경찰의 더 큰 불만은 ‘경찰대 출신만 공정하다’는 경찰 지도부의 인식이다. 강남지역 경찰서 한 간부는 “젊은 경찰대 출신이 청렴하다는 논리는 언뜻 들으면 타당해 보여도 근거가 없다. 경찰대 출신이 비리에 덜 노출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느냐”고 말했다. 서울청 소속 한 경위도 “비경찰대 출신이 들으면 섭섭한 조치다. ‘비경찰대 출신은 똑똑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고 경찰이 외부에 공언한 꼴이다.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려다 97% 경찰의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달라

    불만이 이처럼 커지다 보니 경찰 내 경찰대 출신 사조직의 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서울지역 한 경사는 “실험이 제도로 굳어지면 강남서 출신 경찰대 모임도 생겨날 수 있다. 안팎에서 경찰 내부의 경찰대 파벌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고 밝혔다.

    강남지역 한 순경 출신 수사관은 경찰대 출신의 강남서 집중배치 실험을 추진한 조현오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 청장 내정자는 지난 2월 서울청장에 취임한 뒤 비리 근절을 명분으로 일선 경찰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며 통화기록을 조회하겠다고 해 사기를 떨어뜨렸다. 이번 조치에도 순경 출신 경찰에 대한 청장의 시각이 엿보인다. 이제는 청장답게 다양한 출신, 계급을 품어주었으면 한다. 모든 경찰의 수장으로 내정된 만큼 원칙도 좋지만 경찰조직의 통합에도 신경 써달라.”

    경찰대 출신이면 다 ‘만능수사관’이냐

    경찰대 출신 젊은 수사관이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슈퍼맨이 될지 강남서 실험에 대한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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